의지와 힘



아마도 쿠바의 바라데로의 해변, 캐리비안 해변 예쁘긴 한데 그 정도 장시간으로 신혼여행까지 갈만한지는 물음표라고 했던 대답을 취소해야 할 것 같네요. 저야 갔다왔으니 그렇게 느끼는 거지. 살면서 한 번은 볼만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기에도 꽤나 멋진 선택 같습니다. 사진첩 정리하다가 캐리비안 바다를 보니 너무 너무 너무 예쁜 거 있죠. 그래서 뜬금 업로드!



요즘 생활은 꽤나 불량하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은 만큼 먹는다. 점심을 먹고 Suit를 보다가 쇼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1시 30분이 좀 넘어서 화들짝 놀라서 깼는데 나도 모르게 '아냐 오늘도 이럴 순 없어! 나가자!'란 마음이 먹어졌다.

L은 아침 일찍 일어나 처리해줄 일이 있어서 회사도 출근했다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부지런하게 친구들과 캠핑을 갔다. 어제 저녁에도 물 먹어 축축 늘어진 걸레처럼 쇼파에 누워있다가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니 L이 익숙한 듯 엉덩이를 콕콕 찔렀다.

나는 말했다. '난 정말이지 네가 참 좋아...(쥬얼리 노래도 생각났다)' 이제 나를 많이 알게 되서 그런 건지 티가 나는 건지 빨래를 같이 널다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L은 쇼파로 나를 부르고 아빠 다리로 근엄하게 앉았다. 대체 뭔데 그래?

아.... 주절주절 정리 되지 않은 고민이라 부르기도 이상한 고민을 듣고는 해결책을 처방해주었다.

시간이 필요하네. 정리 되려면. 마음껏 미드 보고 영상 보고 마음껏 군것질 하고 놀아.
힝 근데 왜 이렇게 날 괴롭힌거야. 네가 더 못 보게 했잖아!
말을 해야 알지. 몰랐지.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이렇게 게으르고 방탕하게 지내도 된다는 면죄부를 얻은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어제는 일찍 잠이 들었다.



날씨도 좋은데 오늘도 이렇게 보낼 수 없어! 더 이상 생각은 멈쳤고 바로 씻고 설거지하고 짐을 챙겼다. 아침까지만해도 도서관에 책도 반납할 겸 가볼까 싶었는데 도서관까지는 너무 멀었다. 갑자기 예전에 가볼까 찾아보던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곳에서 결제할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다 뒤져봤는데도 그 카드 빼고는 다 나와서 희안했다.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30분쯤 카드를 찾다가 포기하고 집 앞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다행히 사람은 크게 많지 않았다. 아이스라떼는 맛있었고 처음 먹어본 파운드 케이크는 생각보다 양이 거대했다. 앉아서 테드창의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첫 단편인 바벨론의 탑은 결말이 오기 전까지 느리게 천천히 읽었는데 결말 부분이 꽤 충격적이어서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다음 단편인 '이해'는... 너무나 재밌는데다가 심각하게 내 스타일이고 이런 건 처음이라서 엄청 몰입해서 읽었다. 그것을 읽다가 아무 것도 안 하고 테드 창 소설만 읽어야겠다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가서 그의 다른 책을 빌려올까 고민까지 했다.

그러다 진정을 하고 오랜만에 맑고 푸른 하늘과 땡볕을 즐기기 위해 산책을 나갔다.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서 2시간이나 머물렀기 때문에 견딜만했다. 아 여름엔 너무 더워서 사람이 없구나. 혼자 산책로를 전세낸 것 같은 기분이란 꽤 괜찮다.

산책로를 걸으면서는 대체 왜 오늘은 어떻게 여기까지 나올 마음이 들었을까 도저히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테드 창의 소설에서도 그렇고 최근 A에게도 그렇고. 일단 위대한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전에 자기 자신부터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단 말을 들었는데.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통제하는 건 도무지 불가능하단 생각을 내내 했다.

땀 범벅으로 돌아왔고 평소와 달리 물도 챙겨가지 않았다. 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는 왠일인지 대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분명 아침까지도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왜 의도는 바로 실현되지 못하는지 무언가를 계획하는 순간과 실행하는 순간의 간격은 부조리하다고 말이다. 그걸 그 순간 바로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테드창의 소설에 나온 갑자기 지능이 비상해진 그 사람처럼 똑똑하거나 잘나긴 커녕 나를 통제하는 데 꽤나 애를 먹기 때문인지. 내일 여행을 가기로 했고 분명 엄청 가고 싶었던 여행인데 조금의 에너지도 없었다. 뭐. 상황이 닥치면 알아서 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꽤나 아쉬웠다.

그런데 갑자기 대청소를 한다고?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던 게 불과 3시간 반 전 상황인데.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3개월 넘게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던 잔뜩 짐을 쌓아둔 방을 구석구석 치우고 종이도 버리고 유효 기간이 지난 카드도 분류해서 버리고. 와...우.. 그러다 보니 그 종이 밑에 깔려 있는 아까 찾지 못한 카드를 찾았다. 세상에 너 거기 있었구나.

그리고나서도 피클을 만들어볼까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나는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체 이 힘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가 말인가? 하고자 하는 충동, 하고 싶은 의지, 하고 싶은 마음.. 나는 여전히 이게 뭔지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제도 L에게 말했지만 나란 인간은 꽤나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데에 흔히 말하는 열정이란 게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고장이 나 버린다. 일단 무언가 중요한 목표가 있는 일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필요하고 그게 있어야만 열정이란 게 생긴다. 그것이 없을 때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는 순간엔 질문의 무게에 질식해서 일상적 생활조차 영위가 안 되는 퍽...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인간이다. I got it.

이렇게 몇 가지 특수한 상황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있다. 이건 그저 넛지나 습관의 경향 만은 아니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뭐 상황에 몰아 넣으면 마지못해 하긴 하지만 기꺼이 하는 것과는 차이가 너무나 크다. 분명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고.

어쨌든 다행히 여행 가기 전 집 나간 에너지와 하고자 하는 마음이 돌아와서 집을 말끔히 싸악 청소한 건 다행이다. 산뜻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겠군 : )


2022년 7월 15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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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수행기는 이제 끝난건가요?

네엡 끝났습니다 :)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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