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룸 27. <명당>, 조악하지만 들여다볼만한 '군주의 조건'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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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room.27(film)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에서 제공한 <명당>시사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명당>은 9월 19일 개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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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에 비해 하는 게 별로 없는 박재상 *사진 : 다음 영화, <명당>(2018)

1.너무 빠른 템포와 조악한 내러티브


<명당>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관상>과는 달리 소재를 내러티브에 녹여내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관상>에서는 김내경(송강호)이 관상을 봐야하는 이유(관상으로 돈을 벌어 몰락한 집안을 살린다)도 명확하고, 그 관상을 이용해서 정계에 뛰어드는 과정(관상으로 잡은 범인이 수양의 사람)도 자연스럽다. 또한 관상이라는 것이 미신적이긴 해도 본질적으로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일이란 점에서 정치와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런 덕분인지 김내경은 확실히 처음에는 관상으로 조정에 뛰어들지만 후에는 관상이 아닌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지략으로 김종서(백윤식)를 보필하게 된다. 김내경의 안타고니스트인 한명회와의 보이지 않는 대립도 훌륭하고, 단종과 수양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낭비 없이 <관상> 속으로 들어온다.

헌데 <명당>이 주력으로 삼는 풍수지리설 소재 자체는 역사 속에 끌고 오기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겉돈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설의 미신적인 요소만 부각했기 때문인데, 조상의 묘를 잘 쓰면 후손이 발복한다는 것은 ‘사실’과 결부시키기엔 너무 막연하고 조악하다. <관상>에서 김내경이 역적의 얼굴을 찾아내기 위해 과거의 사례를 연구했듯이, 그래서 관상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거지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통계적 접근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근거’를 꺼냈듯이, 풍수지리설 또한 미신에 그치지 않게 만들 요소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처음에는 이 작품이 그런 풍수지리설의 그럴싸한 ‘근거’를 잘 찾아내다가 마지막에는 집중력을 놓치고 미신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박재상(조승우)의 풍수리지학적 지식을 드러내는 초반 시퀀스에서, 그는 장사가 안 되는 시장을 살리면서 지맥이나 산세 같은 막연함보다는 ‘왜 사람들이 상점을 찾지 않는가’ 와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상인들을 지휘해 흉지를 명당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본게임이 시작됐을 때는 이런 섬세한 풍수지리의 요체를 가져오지 않고 ‘조상의 복’ 같은 미신적 요소를 원동력으로 삼는다.

물론 추석을 겨냥한 영화고, 또한 성묘 분위기를 노린 상업 영화의 꼼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문이라면 너무 아쉽다. 풍수지리설에선 ‘배산임수(背山臨水)’와 같은 요소들이 명당의 조건으로 소개되는데, 역사적으로 따져 봐도 배산임수한 땅은 적의 침공을 방어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농지에 물을 대기도 좋아 경제적 풍요도 함께 불러왔었다. 그처럼 명당이 달리 명당이 아니라, 어떤 지리적 이점을 가진 곳이 곧 명당이며, 그 요지를 차지하는 자가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가하면 ‘군왕은 남면(南面)한다’는 유교 예법 같은 걸 끌고 와서 ‘남쪽을 내려다보는 북악산 기슭을 차지하려는 자들’ 같은 사건의 씨앗을 심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런 심도 있는 고찰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분명 <명당>은 초반부를 이렇게 끌고 가다가 놓아버렸다. 그러니 이 부분은 더 이해가 되질 않고 아쉽게 남는 것이다.

조상의 복을 차지해야만 왕이 된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져서, 이 작품은 결국 끈끈하게 사건을 이어붙이지 못하고 좋은 장면이나마 얻기 위해 서둘러 넘기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건의 유기적 결합은 느슨해지고 충분한 이유가 형성되지 않았는데도 사건은 넘어가버린다. 그런 까닭에 흥선(지성)과 박재상이 함께하게 되는 과정도 매끄럽지가 못하다. 아무래도 <관상>멤버들이 의기투합하다보니 이들의 이야기도 <관상>에서 김내경이 김종서를 만나게 되는 과정, 그들이 힘없는 왕을 도우며 권한을 위임받는 과정 등을 답습하지만, <관상>이 ‘관상’이라는 소재를 충분히 활용할 기반을 다지고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는 점에 비춰보면 <명당>은 풍수지리설을 ‘그럴싸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핵심인물인 박재상이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박재상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건 결국 이 영화의 이유가 함께 사라져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결말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군사적 요충지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게 아닌 ‘복’을 받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는 건 헛웃음마저 자아낸다. 조상의 공덕을 기리는 게 중요한 사회라고는 해도, 왕의 자리가 걸린 일까지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모습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완벽한 졸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주목할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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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늘 부작용을 낳는다. *사진 : 다음 영화, <명당>(2018)

2. 풍수지리설로 묘사하는 부정


이 작품에서 훌륭한 점 하나는, 그 주제가 땅을 다루다보니 ‘부가 부정해지는 과정’이 이미지로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짓’들은 어쩌면 ‘조상의 복’을 비는 것만큼 허무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런 파렴치한 행위들 때문에 정작 그런 혜택을 누려야할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거다.

이는 지금도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순환하지 않는 부와 그 자본이 삶의 필수요소로 투기되는 현상. 런던의 집값은 각국의 투기자본이 몰려 상상을 초월한다. 정작 런던 시민들은 멀쩡한 직장이 있음에도 집에 들어가질 못한다. 그래서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서울만 해도 이미 거주 비용으로 월급의 1/3을 써야하는 평범한 사회초년생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지는 꽤 오래됐다.

부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활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부가 순환되지 않으며 이용할 수 있기는커녕 소유하지 못한 자들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면, 성장은 멈추고 사회에 혼란이 야기된다.

깊이 있게 추적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이런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이미지로 드러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 부분 역시 중심과 따로 논다는 점이다. 결국 김좌근(백윤식)의 목표도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장이나 거주지 등이 아닌, 삶과는 접점이 떨어지는 ‘조상의 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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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 흥선. *사진 : 다음 영화, <명당>(2018)

3. 권력의 소용돌이를 견디는 흥선군


정치적 신념이나 조선 말기를 이끈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이 작품이 ‘상갓집 개’ 소리까지 참았던 젊은 날의 흥선군을 본격적으로 포착해낸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건 태어나자마자 권력의 암투 속에서 간계에 빠지거나 암살당할 위험에 내던져진다는 것이다. 어떤 세력이 지지하느냐, 세력의 승패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왕가의 일상이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어디에도 몸담지 않으면서 목숨을 보전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광인(狂人)이 되는 것이다. 보잘 것 없어서 도저히 왕권에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면, 왕을 추대하려는 세력들이나, 또 화근을 없애려는 세력들에게나 ‘예외’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적이 강성하고 내 세력이 볼품없더라도 구밀복검의 자세로 힘 기르기를 그만두지 않는 법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 그리고 손자병법의 요체처럼, 일단 싸움이 시작됐다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서 신속하게, 상대를 기망하는 속임수도 마다않고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싸움은 늘어질수록 누구에게나 막심한 피해를 입히는 법이니까. 조직의 수장이 어설프게 우왕좌왕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흥선이 겉으로 굴욕을 견디면서 적의 칼날을 피하고, 밑으로는 왕가의 법도를 지키면서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감흥을 준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그의 야망이 싹튼 운현궁을 ‘명당’과 어떻게 극적으로 엮었다면 어땠을지. 좋은 역사적 재료와 소재가 하나의 음식이 되질 못하고 따로 음미되는 건 여전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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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순수로 똘똘 뭉쳐선 안된다. *사진 : 다음 영화, <명당>(2018)

4. 지도자가 갖춰야할 필수 덕목.


<명당>의 백미라고 한다면 단연 헌종과 김좌근의 대립일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의 민낯은 익히 보아 진부한 감마저 있지만, 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무능한 왕에 대한 표현은 여전히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앞서 흥선군처럼 한 조직의 수장이 된다는 건 승리를 위해서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낮추고 사람이든 운명이든, ‘받아들이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용력은 고난을 견디게 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타인과 나의 실력을 쌓아두는 창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창고는 쌓이면 쌓일수록 외곽이 단단해져 어느 순간엔 나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단지 포용력뿐이라면 언젠가 기회를 노리는 자에게 잡아먹힐 따름이다. 그래서 군주는 시세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혜안을 갖추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부정한 현실에 탄식하며 마냥 목 놓아 울부짖는 것이 아닌, 그런 현실이 있다고 ‘인정’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는 게 군주다. 즉, 현실주의자적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한비자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법’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군주의 ‘술’도 강조했다. ‘술’이란 타인을 드러내면서 나는 숨기는 인술을 말한다. 예컨대 다 알아도 일부러 모른 체하며 신하의 조언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살고 조직이 굳건해야 비로소 선정이든 덕치든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군주가 정치를 펼치며 지나치게 이익을 추구해서도 안 되지만, 백성이 궁핍하고 혼란한 때에 질서를 바로잡지 못해도 문제다. 그러므로 군주라면, 늘 현실주의자의 눈으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들뜬 이상만으로 살아남은 지배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지나간 리뷰(최근 3편)

필룸 26. <서치>, 영화 속 현실의 진화
필룸 25. <너의 결혼식>,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필룸 24. <공작>, 한계와 장점이 명확한 영화


본 리뷰는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https://www.manamine.net)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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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오랜만에 영화한편 봐야겠습니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볼만한 부분도 있으니 관람도 괜찮겠습니다 :)

관상에 비해 명당이 가진 약점이 명확하군요. 결국 TV용 영화인가요. ^^

저는 좀 비판적인 시각이 강한데,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단점은 적절히 치워내고 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에도 언급돼있지만 볼만한 장면도 있기는 하니까요 :)
그래도 관상과 비교하라고 한다면 관상의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하고 싶습니다. 같은 제작진이라는데 전편의 향수에 너무 젖어있는 게 아닌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큰 성공의 기억이 새로운 성취에 발목을 잡기도 하지요. 무슨 무슨 제작진의 영화! 라고 홍보하는 작품 중에 만족스러운 영화가 드물더라구요.ㅎ

공감합니다 ㅎㅎ 저도 제작진이나 감독 이름을 강조하는 영화는 잘 안보게 되더라구요.

조승우와 지성이라니, 게다가 사극.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조승우는 연출의 조악함 문제도 있고해서 크게 활약을 못하는 편인데 지성은 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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