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항하라(feat. 조던 피터슨)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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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시쟁이 시린입니다. 오랜만에 또 조던 님의 말씀을 들고 왔습니다. 별로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저번 조던 시리즈로부터 일주일가량이 지났네요..! ㅠㅠ 조던 시리즈를 올리면서 참 제가 생각하는 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큼(?)고통스럽습니다. 하하. 성장의 계기가 되는 고통입죠.. 아무튼..! 이번 주제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항하라'라는 주제입니다. 어떤 사상을 비판하는 글인 만큼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저는 항상 그래왔듯이 조던의 말을 옮겨 적고 제 생각을 기술하는 방식을 사용할 것이지만, 그 10%의 제 생각조차 조심스럽게 써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이야기 시작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모더니즘은 일찍이 우리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주의에 기반한 예술에 대한 반항 운동, 트렌드에 따르는 것, 근대화와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더니즘은 거의 예술에 관계된 것이다. 그런데 웬 저명한 심리학자가 나타나서는 왜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항하라!"고 말할까?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한 사실들을 나열해본 뒤 본격적으로, 조던의 말을 옮겨보도록 하겠다.


 모더니즘은 예술상의 여러 경향을 뜻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렇지 않다. 여성운동, 학생운동부터 시작해서 흑인 인권운동, 성 소수자들의 운동까지 여러 방면의 운동을 뜻하는데 두산백과에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과 관련된 한 시대의 이념'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단 모더니즘에 대해서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실주의적 예술과는 동떨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피카소와 앤디 워홀이 대표적인데 페인트를 흩뿌려 놓은 그림이라든지 변기와 통조림으로 창작을 해서 예술이라고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할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모더니즘을 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모더니즘이 형식적이라 비판하며 형식주의를 거부한다. 모더니즘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여러 방면으로의 운동으로도 나타나게 되었는데 위에 나열한 운동들이 그것이다. 모더니즘 안에서는 미술이 주가 되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에서는 행위예술, 공연예술, 실용예술 등으로 그 분야들도 확장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개성,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며 절대적인 것들을 거부한다. 그래서 왜 이것을 경계 해야할까? 뭐 이렇다 할 사회적으로 나쁜 점들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나무위키에서나 네이버 백과를 뒤져보면 말이다.)


 조던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만연한 치명적인 허무주의'라고 정의한다. 또 '지적으로 매력적인 학설'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인문학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점점 더 대학의 사회과학도 지배하려 든다고 한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언어가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는,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생각은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것임으로 생각과 언어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도 전한다.

생각과 언어의 힘에 대해서도 고찰을 해본 적이 있는데 생각을 통해서 말과 행동이 나타내어지고 그에 따라 우리는 주변인들과 관계를 맺기에, 예전부터 나는 생각의 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혼자서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았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얻는 것이 별로 없던 나였다. 조던이 말하는 것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실천하고 살아가려 노력할 것이다.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서구 문명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고 말한다. J.Derrida라는 사람을 두고 포스트모더니즘 사기꾼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말한 어떤 용어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Phallogocentric(남근이성중심주의)


 phallo는 phallus(남근)에서 유래했다. 이 주장은, 서구 문명은 남성에 의한 지배의 결과이고 억압적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집단이라고 한다. 모든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려는 경향이 있지만 '경향'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또 우리가 이 사회를 조직한 방식에는 결점이 없다고 말하는데, 다른 국가들과 사회들의 비교를 통해 주장한다. 자신들이 정말 잘하고 있고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 내가 사는 나라는 서구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나라도 잘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지 않을까. 아, 조던의 이 발언에 대해 내 견해를 말하자면 나는 결점이 없는 사회나 국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개인에서부터 출발하는데 물론 어떠한 비교를 통해 비율적으로 정말 높은 수치를 자랑하는 나라는 있다. 그렇지만, 그게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조던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우리가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감사함'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가능한 세계 중에 최고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감사해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병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감사해하지 않는다면, 분개함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분개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최악이라고 말한다. ('분개, 오만, 기만'이 악의 3인조라고 한다.)미국 흑인 사회는 지구상에서 18번째로 부유한 집단이라고 한다. 조던은, 물론 상대적 빈곤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절대적 부유함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데에 있어서 서구 문화는 아주 발달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믿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열한다.

 그는, "그들은, '개인'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logos'의 부분이다. (서구 사회는 phal 'logo' centric이다.)logos는 logic(논리)의 어원이다. 그들은, '논리(logic)'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논리를, 서구의 가부장적 제도가 지배를 이어가고, 그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 믿었다. 그들은, 대화(dialogue)를 믿지 않는다. 대화의 어원은 또 logos이다. 그들은 호의적인 사람들이 생각의 교환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 개념이 지배문화의 철학적 하부구조와 관습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캠퍼스에서 '얘기'하는 것을 못 하게 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던의 말에 제가 첨가할 것이 없다고 판단되어 번역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번역 출처 : YouTube - 피터슨 바라기)



 조던은, 그것은 ethos(인격)의 부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들은 개인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의 근본적인 정체성은 집단에 의해 조성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는, 그들이 감히 결과의 평등을 이룩하려 하고,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념을 기본구조로 가졌던 좋지 않은 모든 나라에서 그 실패가 증명되었다고 말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그들은 그저 소집단만 바꿔 철학적인 움직임은 계속해서 이어가자고 말하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뭐, 가난한 자 대 부유한 자가 아니라면 억압자 대 피억압자겠지" 이 부분이 있었는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생각을 비판하며 사용한 말입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그들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내용으로써 사용한 듯 보입니다.


 또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게 세상이란, 정체성 집단의 홉수주의적(Hobbesian)인 전쟁터이다. 그들은 서로 의사소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못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위한 투쟁만이 있다. 당신이 만약 포식자 집단에 속한다면, 당신은 억압자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당신의 사상 또한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 대항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사과를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여긴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사죄하지 말고 절대 굽히지도 말라고 전한다.


 조던은, 인문학과 대부분의 사회 과학계는 포스트 모더니즘/신마르크스주의로 물들어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대학 간의 서로의 도서 팔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친다. 그들이 논문을 쓰면 다른 대학들에 서로 팔고 사면서 이익을 챙긴다고 한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다 거기로 가니, 그들을 후원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증거를 원한다면 웹사이트를 찾아보라고 말하면서 특히 '여성학'을 보라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부분들에 있어 대학은 속속들이 병들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여성학계뿐만이 아니라, 윤리학계도 그렇고 인류학, 사회학, 사회사업계도 물들어 있다고 한다. 그 무엇보다 교육계가 심하다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과 급진 좌익 얘기가 나오는데 그는 급진 좌익에게 흐르는 돈의 물살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후의 말들은 자유와 책임에 관한 내용인데 글의 목적과는 다른 이야기라 생략하겠다.

그가 여성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정확히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신마르크스주의에 물들었다고 하는 점은 동의한다. 물론, 조심스럽게 짐작하건대 그도 현재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잘 보셨나요?! 아마 너무 길어서.. 흑흑.. 그래도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썼습니다. 기다리시는 분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주 시험이라 이제 피터슨 시리즈는 일주일 뒤에야 또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보시는 분이 많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봐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포스팅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공부가 많이 된다는 것입니다. 쓰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찾아보고 공부하게 되는 정말 저에게 유익한 포스팅입니다. 하하. 그래서 관심 어린 지적도 해주시면 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두 시간이.. 그럼 다음에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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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은 동의할 수 있지만, 페미니즘이나 네오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피터슨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의 범위가 넓기는 하지만, 과학성을 기각하는 경향이 주류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페미니즘의 경우에도 생물학(진화론)과의 논쟁 속에서 이 높아지는 상황에 있다는 연구자도 있고요.
어쨌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하, 피터슨이 네오마르크스주의를 '과학성을 기각하는 경향이 주류'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는 제가 전부터 포스팅하긴 했는데 어떤 건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귀찮으시면 알려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당. ㅠㅠ)

저는 피터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본문에서 sirin418님이 언급하셨듯이 피터슨은 인문학과 사회과학계가 포스트모더니즘/신[네오]마르크스주의로 물들어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네오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에는 '정통'마르크스주의 오류와 결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연구자들이 다수 포함됩니다. 정통마르크스주의, 특히 스탈린주의의 경우 마르크스의 과학성을 사상한 채 철학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복원하는 것이 네오마르크스주의자에게 과제가 되었고, 과학철학에서도 '비판적 실재론'을 주창하고 인과성에 대한 논의를 제기한 것도 마르크스주의였습니다.

페미니즘의 경우에도,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제기했던 성평등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라는 쟁점 앞에서 딜레마에 빠진 것을 지적합니다.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은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포함한 새로운 권리의 형성을 주장합니다. 즉, 페미니즘을 '성평등주의'라고만 보는 것은 단견이라는 것이지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의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은 페미니즘의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는 데 그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피터슨의 언급이 현저히 적어서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걸 또 배워가는군요.. 그렇지만,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피터슨의 의견은 확고합니다. 남녀가 실제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주장하면서(이에 따른 미국 심리학회의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45가지 특성에 따라 연구한 결과 남녀는 그 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그렇지만, 인원을 늘려 측정해보면 조금씩 차이나는 것들이 더욱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에 따른 부가 설명은 제 전 피터슨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현상을 놓고 보자는 의견을 내놓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칸디나비아를 예로 들면서 말이죠. 음.. 어찌보면 이것도 남녀 간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차이와 관련한 아주 단순한 사례를 들어보자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임신과 출산과 관련한 권리는 평등의 권리가 아니라 차이의 권리인 셈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페미니즘에서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기' 위해 투쟁했던 역사는 남성의 지배하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남성 동일성' 자체에 대해서는 맹목적이라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더 많은 논의를 여기서 하기는 어렵겠지만, 결론만 얘기하자면 (1)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여성에 대한 차별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고, (2) 따라서 (인간이라는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3) 각각의 성에 대한 성별화된 권리를 발명하고 정의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하 생물학적 차이에 따른 권리를 말씀하시는군요. 남성적인 특성이 필요한 분야가 있죠. 예를 들면, 기업을 운영한다든지 경찰, 군인만 봐도요. 분명히 여성 차별적인 역사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 지배적인 구조 때문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그게 큰 이유이긴 하지만요. 할리우드가 여성 성적 대상화에 한 몫했던 것처럼 여성도 분명 일부분,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여성은 말이죠. 차이에 따른 권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배울 점이 많네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남성에게 잘 보이려고'하는 측면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만 하더라도, 본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치 미녀'로서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어떠한 불평등한 관계에서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노동자 중에서도 일부는 '간부'로 승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방해하는 노동자가 나타나게 되지요.

음.. 그렇죠.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러한 여성도 존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측면이 좀 더 강했겠지만요! 오해가 될 수 있는 말이네요. 제 능력 부족입니다. 하하.. 겸손히 배워가겠습니다.

한편, 피터슨이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지점은 (주류)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결과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획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이는 피터슨이 역사적 고찰 없이 임금격차를 오로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직군에 분포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데 기인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남녀의 임금격차가 발생하게 된 것은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합니다. '남성 생계 부양자'의 관념은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남성 '가장'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이에 따라 여성은 정리해고에 더 쉽게 노출되고, 경력단절이 쉽게 일어나며, 통계를 보면 동일 직종에서 근무한 경우에도 임금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직종 분리보다는 직종 내의 차별이 더 크게 나타나고 중요하게 간주되며, 최근 수년 동안 유럽에서는 '동일직종'에서의 남여 임금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남녀의 임금차이에서 주의할 점은, 자본주의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노동에만 임금을 지급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재생산노동(가사, 육아, 간병 등)은 대부분 무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생산노동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평가절하한다는 것입니다.

즉, 남녀간의 임금 격차를 고려할 때에는 다양한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을 검토해야 하는데, 피터슨은 자신의 결론에 유리한 통계를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긴 저도 피터슨이 지금에만 너무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물론, 저는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 그런가에 대한 문제도 충분히 고려를 해봐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저도 남녀 임금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이 주장하는 것은, 남성이 더 많이 일하고, 더 힘든 일을 하고, 더 밖에서 일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에 대한 부분은 일부분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임금을 많이 받는 곳에서 필요한 특성들도 고려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것들에 대한 일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인지 능력이나 창의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 경영같은 경우에는 매번 바뀌는 일들에 대한 처리 능력을 요구하죠. 또 높은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일을 더 빨리 배웁니다. 음.. 제가 하는 말보다는 이 영상이 조금 더 도움이 많이 될 수 있겠네요!

복잡한 직업에서의 성공을 예측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들도 나오고 다른 부분들도 고려를 하는 영상이라서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여 올려봅니다. 아, 그리고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선호한다는 표현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상황을 고려한다면요.

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저는 인지 능력이나 창의력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이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더 힘든 일' 역시 이윤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의 측면에서 정의됩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하는 여성노동자의 경우, 열기로 가득찬 급식실에서 하루에 드는 무게가 남성 육체노동자보다 더 많지만 급여는 훨씬 더 적습니다. 만약 더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임금이 높아야 한다면, 급식을 담당하는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높아야 할 것입니다.

요컨대, 피터슨의 지적이 일부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요인들을 너무 무시하기 때문에 그 '일리 있는' 부분을 스스로 갉아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터슨의 분석에 다양한 요인들이 추가된다면 엄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요.

오.. 그렇군요. 그것도 그렇네요. 어딜가나 예외는 존재하나봅니다.. 근데 저런 자료들이나 연구들은 어디서 찾아봐야할까요? 저도 치우쳐지고 싶지 않은데 피터슨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런지 저 분이 하는 말이 다 옳은 말 같다는.. 제 지식의 한계이겠지요. 다양한 견해들도 듣고 보고 싶어서요. 보통 이런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한 공부를 하실 때 데이터를 보시는 곳이 따로 있나요?

이 이후의 말들은 자유와 책임에 관한 내용인데 글의 목적과는 다른 이야기라 생략하겠다.

이 글의 목적과는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아마 저 사람의 코어(?)를 이해하는데는 핵심인 이야기일거라 생각이 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링크가 필요하시면 드릴까요?? 저는 저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잘 보았답니다. 하하.

아 괜찮아요. 찾아볼 수도 있겠고, 또 이런 큼직한 주제들에 대한 견해는 흐름상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p.s. 보팅을 주시는 바람에 새 댓글 안 쓰고 수정+추가합니다. ㅋㅋ 저 분은 짤을 보아하니, 이미지 작업을 중시하는 "부지런한" 활동가 같아서 그 점을 높이 사고 싶군요. 가령 비슷한 주장을 할법한 정통 학자라 해봤자 그냥 대부분 혼자 끄적이게 될 수도 있는 시대이니까요.

넵! 제이미님이 읽으셨다고 그래서 그런지 뭔가 부끄러워지네요. 앞으로는 좀 더 공부하고 더 잘 적으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으앗.

그렇죠..? 아무래도 집 안에서만 끄적이는 사람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힘드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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