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공부

in #bus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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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영·자기계발서로 여성운동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오리지널스」의 단락 하나가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사태를 보면서 계속 그 책의 그 부분만 읽게 되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 과거의 사례를 비추어보면 지금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루시 스톤, 수전 앤서니, 엘리자베스 스탠튼의 세 사람이다. 다만, 이들은 단일 대오로 행동하지 못했다. 온건적 성향인 스톤, 그리고 급진 성향인 앤서니와 스탠튼의 두 파가 따로 또 같이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해 나아갔다. 같은 여성 참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던 사람들이 어째서 갈라졌을까?

스톤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 공감한다면 남성도 참여시킬 정도로 개방적이었고, 다른 소수자들의 인권운동과 연계해나갔으며, 반대자들과 비판자들을 차근차근 설득해가면서 여론을 움직이는 식으로 나아갔다. 특히, 기독교여성금주동맹과의 연대는 강한 힘이 되어주었다. 이들의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참정권 획득 등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권익 신장이 가정 내의 문제 해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발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앤서니와 스탠튼은 자신들의 조직에 여성만을 참여시켰고, 여성 참정권 획득이라는 하나의 대의로만 움직였으며, 여성 참정권에 찬성한다는 이유로 흑인 인종 차별주의자같은 인사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집단의 대표 의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집단 내부와 외부의 인식이 다른데, 집단 내부에서는 집단의 목표 의견이 대표 의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외부에서는 집단에서 가장 극단적인 언사를 한 사람의 의견을 대표 의견이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앤서니와 스탠튼은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내부의 인종차별적 의견이나 사회의 일반적 도덕에서 벗어난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그들의 대표 의견으로 인식되었고, 사람들은 앤서니와 스탠튼의 운동에 쉬이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 두 파벌이 대립한 역사는 20여 년에 달한다고 한다. 역사가 손을 들어준 것은 스톤이었다. 이들의 다음 세대 운동가인 캐리 채프먼 캣은 스톤의 온건한 길을 따랐고, 그 결과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다.

궁금한 것은 지금보다도 더욱 엄혹했던 시대에 여성 참정권 쟁취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나갔던 사람들이 2018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무슨 의견을 낼까이다. 그 대답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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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진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권력의 본질이 누구에게 있냐죠.
http://realnews.co.kr/archives/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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