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

in #bus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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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to. @mipha

이른 새벽, 미처 달아나지 못한 비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머리 위에 머문 구름이 비가 올 듯하면서도 오지 않는 우중충한 날을 만들어내고 있다.

방에서 뒤척이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뒤척임이 고요함으로 바뀌기를 마음 속으로 바란다. 그 어느 때 보다 간절하다.

바스락 거림이 사라진 주변은 고요하고,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낭만을 생각한다.
커다란 창을 가린 블라인드 사이로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지금이 그러기에 적당한 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이십대는 벼랑 끝에 매달린 낙엽같았다.
그대로 떨어진다 해도 아쉬워할 이 없는, 처절하게 뛰어내리고 싶어도 살랑거리는 바람을 따라 목적없이 흔들리고 마는...

눈을 뜨면 씻고 옷을 갈아입고 무조건 길을 나섰다.
딱히 갈 곳은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기에 마냥 걸었다.
나에게 주어진 건,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 같은 무한의 시간 뿐이었다.

걸으며 눈에 닿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물에 부여하는 의미가 나에게 투영되어 나 또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찾을 수 없는 자존감에 억지로 우겨넣은 무의미의 의미가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해가 비치면 해가 비쳐서 눈물이 났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눈물이 났다. 괴로운 일이 있으면 괴로워서 울었고, 그저 아무렇지 않은 날에는 지루해서 울었다.

낭만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할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낭만은 아름다워야 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중시한표출되는 인간의 감정을 진정한 '낭만'이라고 정의하며, 주관적 감성을 지극히 '낭만'스럽게 바라보고자 할 뿐이다.

나의 이십대는 '낭만적'이어야만 하기에......

어린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출장이 잦았다.
긴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늘 책을 담은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와 책을 기다렸다. 책 속에는 소녀가 꿈꾸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어른이 되면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줄로 믿었다.

낭만은 꿈꾸던 소녀는 벼랑 끝에 매달린 낙엽같은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낭만은 갈망이란 옷을 얻었다.

그럼에도 '낙엽같은 어른이 된 소녀'는 생각한다.
내 인생에 낭만이 가득했으며, 가득하고, 앞으로도 가득하리라고

오늘도 나는 낭만을 꿈꾼다.
꿈이 아닌 현실의 낭만을 기다린다.


이 포스팅은 @garden.park님 주최, 한여름 밤의 도라지 위스키 글쓰기 공모전에 출품하고자 작성된 글입니다.

보잘 것 없다고 느낀 시절이었어도 낭만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이십대의 날들입니다.
그 시절, 그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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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끝은
그 소녀가 왕자님을 만나 쌍둥이를 낳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이래야 진짜 낭만이네요.

테일님 댓글에서 비로소 제 낭만이 완성되었습니다!!!
^-^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로 급변경? ㅋㅋㅋ

삑! 환승입니다! ㅎㅎㅎ

9호선 무료환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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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벼랑 끝네 매달린 낙엽'..
전 생각지도 못한 화면이네요. 디디엘엘님의 20대는 어땠을까 싶어요. 매우 궁금하네요. 저의 20대를 뒤돌아보니 정말 아무렇치도 않게 지나간 것 같아요. 10대도요.. 사실 그렇치는 않았을텐데 제 기억은 저장하기 전에 심하게 필터링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벼랑 끝에 매달린 낙엽같은 어른', 낭만을 갈망하는 어른은 이미 낭만거인것 같아요. 낙엽이라니~~

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이 드는 글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이십대를 되돌아보면, 정말 낭만적이면서 서글프고 아련함도 참 많았었네요.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을 왜 그리 암울하게 보냈나 후회도 조금은 되지만...그 조차도 낭만이다! 할 수 있겠죠?!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편한 밤되세요

손에 잡고 싶은 아련한 추억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인

물줄기처럼 흔적도 없이 흘러가버리면 좋으련만 마치 모래알처럼 손가락 마디에 찝찝하게 남아있네요
억지로 털어내도 뽀얀 먼지를 남겨 놓은 채로요.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어떤 단어로 추억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톡톡
털어내도
남아있는 얼룩들이
미소로,
설렘으로,
행복으로,
남아있기를 바래봅니다
지금의 얼룩들도
누군가의 한끼, 또 누군가의 여유, 다시 또 누군가의 추억이였기를

낭만이여 영원하라~^^ 발도장 꾸욱~

뒤척임이 고요함으로 바뀌기를
ㅠㅠ
도라님 20대는 낭민적이였을거에요
왜? 20대잖아요~ ㅎ

20대때가 그나마 낭만적인것 같은데... 요즘은 너무 현실적인 삶이 되어 버렸네요^^;

지난 날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때 힘들었던 순간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래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고 하면 전 싫어요. ㅎㅎ)
그러니 오늘 힘든 것도 먼 훗날 생각하면
또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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