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머슴이 만든, 투박한 칡 냄비 받침대

in #busy5 years ago (edited)

도시 살다가 시골 살려고 할 때 보통 여자들이 적응하는 데 더 힘들어한다. 남자들도 도시에서 힘쓰던 일을 한 해본 것은 마찬가지만 여자들이 더 힘든 데는 소비구조와 관련이 크다.

도시는 빈부격차가 극심하기는 하지만 돈만 있으면 물건을 사고 버리는 데 아주 익숙하다. 이런 소비를 주로 주부들이 한다. 근데 시골은 그렇지가 않다.

돈 벌이도 어렵지만 돈이 있더라도 쓰는 게 쉽지 않는 구조다. 시장이 멀기도 하고, 값도 대부분 도시보다 비싸다. 사실 우리가 마트에서 돈 주고 사는, 웬만한 것은 본인들이 손수 길러 먹거나 손수 만들면 다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습관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며, 손재주 역시 그렇다. 그러니 주부들은 마님 행세를 하고 싶어 한다.

남편이 상머슴이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안 해보던 시골 살이, 뭐든 손수 만들어 자급을 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남편이 꼴머슴 수준의 실력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자꾸 해 보다보면 실력이 는다. 마님 역시 돈 쓰는 재미를 포기하고, 남편이 해 주는 꼴머슴 수준의 생활품들을 즐겨야한다. 꼴머슴 솜씨를 구박했다가는 마님 되기는 틀렸다고 보면 된다.

현대판 머슴과 마님은 이렇게 새로이 태어나는 거다. 근데 내가 머슴 노릇을 해 보니 그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든 꼴머슴이라 그런가. 안 해보던 낫질 톱질도 하게 되고 겨울이면 도끼질로 나무를 가르다 보면 나무가 갖는 아름다움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

옛날 마님들이야 일이 서툰 꼴머슴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현대판 마님들은 꼴머슴의 서툰 솜씨를 예쁘다 한다. 겉보기는 허룩해도 보기 나름이다. 세월의 강을 넘어,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생활 공예가 주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야 마님 자격이 생긴다.

이번에 만든 건 칡 냄비 받침대다. 꼴머슴 눈으로 봐도 엉성하다. 요즘 냄비 받침대는 종류가 엄청 많다. 이 가운데 나무 받침대라고 해서 나무 조각을 본드로 붙인 싸구려 것들이 있는 데 여기에다가 뜨거운 냄비를 얹으면 아주 독한 냄새가 난다. 입맛이 달아나고 밥상이 싫어질 정도다.

결국 집에서 손수 만들어 쓰는 수밖에. 시장에서 사다 쓰던 받침대가 망가진 걸 눈여겨보니 손수 만들 수 있지 싶다. 우리 집 둘레에는 칡이 아주 흔하다. 이걸로 만들자. 근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칡 줄기를 어찌어찌 하라는 정보가 없다.

나 혼자서 가느다란 칡 줄기를 끊어와, 망가진 받침대를 보고 따라 엮는다. 머릿속 생각에는 꿈이 야무졌다. 상머슴처럼 잘 만들어 마님한테도 사랑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선물도 하고, 점차 인기가 좋으면 나중에는 팔 생각까지 했었다. 근데 첫 시작부터 뜻대로 안 된다. 상머슴이 있다면 따라 서라도 하겠지만 내 솜씨는 꼴머슴 수준도 안 된다.

받침대1.jpg

근데 계속 해보니 중심에서부터 두어 바퀴 돌린 다음에는 조금씩 요령이 생긴다. 뭐든 해 보면 된다.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이렇게 냄비 받침대를 절반 정도 엮었을 때 마님이 보고야 말았다.
“어, 아주 좋은 데요!”
“그래요.”
받침대2.jpg
마님의 너그러운 마음 씀씀이로 용기 백배. 마무리를 했다. 이제 칡으로 받침대를 엮는 거 자체는 어느 정도 하겠다. 이 받침대를 쓴지, 열흘 가량 되어 오는 데 그 나름 튼튼하고 좋다. 말라가면서 아주 볼품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무엇보다 마님이 날마다 쓴다.

"다음에는 이거보다 조금만 더 크게 만들어주구려. 큰 냄비도 올리게.”
받침대3.jpg
새로운 꿈을 가져본다. 상머슴을 넘어, 칡 공예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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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최고네요. 어찌 배우지도 않고 만들수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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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물딱 쭈물딱 하다보니^^

솜씨가 좋으시네요

고맙습니다

칡 공예가 꿈 꼭 이루세요 ^^ 잘 만드시는데요 ㅎ

그냥 꿈으로만^^

아주 좋습니다.

아주 고맙습니다.

오.... 멋져요. 산에 널린 게 칙넝쿨이니 우리도 하니 만들어 볼까하는데 원체 솜씨가 없어서....

만들어보세요. 어디 팔 거 아니고. 냄새가 참 좋습니다.

멋져요~ 작품도, 칡 공예가의 꿈도 ^^

댓글도 멋져요^^

공방에 내놓고 팔아도 되겠습니다. 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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