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평(時代漫評) - 246. 쌀이 넘쳐나도 밥을 잘 먹지 않는 시대의 자화상

in #bus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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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조선문단>에 발표된 염상섭의 단편소설 중에는 '밥' 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의 내용중에는,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창수라는 집 주인과 하숙비조로 18원을 내고서 이 집에 잠시 기숙하고 있는 나(김군)가 나누는 대화를 중심으로 하여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주인 창수와 겸상으로 아침밥을 먹고 있다.
곁에는 다섯 살 난 창수 아들과 아내가 상 나기를 기다린다.
나는 너무 쪼들리는 생활이 보기에 딱해 창수에게 시골로 내려가
남의 마름이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권한다.
창수는 마름이란 소작인들을 이중으로 착취하는
짓이라 자기는 못 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때 밖에서 대문을 열려고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왜 문을
잠궈 놓았느냐고 창수가 아내에게 핀잔을 준다.
그의 아내가 문을 잠근 까닭은 밥을 얻어 먹으러 오는 불청객
원삼이 불쑥 들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가 와서 한 끼를
먹고 가면 자신이 굶어야 하는 창수 아내로서는 끼니 때 찾아오는
그가 반가울 리가 없다.

문을 열어주러 간 창수는 그런 눈치를 채고 원삼이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려 하지만, 원삼은 막무가내로 밥상이 놓여 있는
안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나는 원삼의 궁상스런
모습을 보고 저렇게 사는 것도 인간인가 하는 미운 생각까지 든다.
원삼은 그래도 어디서 돈을 구하는지 담배만은 사서 피운다.
인심 사나운 남의 집 험담을 하는 데도 열을 올린다.

주인 아낙은 그래도 원삼이 안되어 보였는지,
내가 남긴 밥 반 그릇과 주인이 남긴 반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아갔다가 자기 먹을 밥과 또 한 그릇의 밥을 섞어 새로 2그릇에
담아 갖고 들어와 원삼에게 먹으라고 권한다. 사양하는 척 하다가
밥상머리로 다가 앉아 허겁지겁 밥을 떠 먹는 원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층 쓸쓸해지고 비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산골에서 올라와 구경꾼의 입장에 있는 나에게는
이런 모습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밥을 먹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원삼에게 창수는 처음
내가 그에게 했던 말, 즉 시골로 내려가 농사라도 지으라고 한다.
자기는 한 사람, 아니 열 사람, 백 사람의 불합리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무산자(無産者)들을
위해 투쟁하기 때문에 시골로 내려갈 수 없지만,
원삼이는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건너방으로 돌아온 나는 누워 있는 친구를 본다.
그의 발치에는 떨어진 양복에 외투도 없이 시퍼렇게
얼어 있는 그의 친구가 앉아 있다
.
나와 동거하는 친구는 잠만 이 집에서 자고 밥은 같은 동네에
사는 삼촌 집에서 해결한다. 자신도 얻어먹는 처지에 친구까지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친구가 밉살스러운
생각도 들어 자기까지 굶으면서 일부러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짐작한다
.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는 세음인가?"하며 나는 혼자 한숨을 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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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이 단편소설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야 농업생산량이 부족하였을 것이고, 빈궁기가 해마다 찾아오기도 하던 시대였으니, 쌀이 귀하기도 하고 쌀이 주식이 되는 나라에서 쌀로 하루세끼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 큰 축복 중의 하나였던 시대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가난한 일반 백성들이야 하루세끼 밥을 꼬박꼬박 잘 챙겨먹는 자체가 하나의 인생살이의 기준이라고도 할 정도였겠다.

염상섭의 쌀이라는 단편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쌀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빈궁기가 잦았던 시대에는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시대를 과거의 시대와 견주어서 풍성하게 잘 먹는다는 둥, 현세대와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당찮은 비유같기도 하지만, 세상이 발전하고 좋아진 만큼 쌀을 주식으로 하는 밥문화가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이 약해졌음은 분명하다.

얼마전 경제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쌀소비량이 역대 최저수준임에도 쌀 생산공급물량은 과잉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연안 61.18kg으로 80년대보다 절반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평균적인 공기밥 그릇을 기준으로 할 때에, 국민 1인당 하루에 두 공기도 먹지 않는 수치라고 한다. 과거부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이지만,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서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을 하고, 건강을 위한 더 질좋은 음식들을 선호하려는 미식가 문화가 발전하다보니, 쌀로 밥을 해먹기만 하는 식문화는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것이야 당연하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쌀이 남아돌고 있는 상황이지만, 쌀값이 내려가지도 않고, 일부 소외계층에서는 쌀이 없어서 베를 곪는다는 소식이 간혹 들려오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생산과 소비의 문제이거나 혹은 시대에 따른 식문화 변천의 문제만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분배의 시스템적인 문제임이 더 정확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0년 전에 염상섭이 쌀이라는 단편소설을 지을 때의 시대적 상황에서는 쌀을 생산하여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방해가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소작농제도와 착취구조가 문제였다고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쌀의 생산과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쌀값 가격안정을 시키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과 남아도는 쌀들을 빈민층에게까지 무상으로 지급되도록 관리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의 문제가 더 심각하지만 말이다.

어쨋든 예전이나 지금이나 쌀은 한국인의 주식으로서 당연히 매일 먹어야하는 것이지만, 쌀농사 짓는 사람과 쌀로 밥을 지어먹는 사람간의 괴리가 생기고 있는 것은 100년의 시대가 흘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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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양목님의 의미 있는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먹거리가 다양하고 탄수화물 중독 또는 흰쌀밥이 좋지 않다는 정보가 있다보니 쌀소비는 점점 줄어드는것 같습니다~

세계는 이미 전 인류가 충분히 먹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굶어 죽는 이들이 많다는 점은 우리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지나
이젠 안 먹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이미 커피잔이 밥 그릇 보다 더 크고
밥보다 빵을 선호하는 세대를 두고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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