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이 되는 비결

in #christianity5 years ago

성령의 사람이란 성령이 내주하셔서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꿈만 꾸고 있다. 주변에 아무도 그런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접기도를 하고 교회에 나오면 성령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라고 다그치지만, 성령이 안에 있는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를 보여주는 이들은 없다. 말하자면 실재는 없고 거품만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허구적인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이는 우리네 교회가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이자, 그 누구도 들쳐 내기 꺼려하는 금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면 그냥 믿는다고 말하면 되고, 믿고 있으면 그런 날도 오겠지 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성경말씀이, 오히려 무능하고 무기력한 우리네 교회의 발등을 찍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혜성처럼 등장하기 때문이다. 모세는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고, 소년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간단하게 쓰러뜨린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보여주었던 입이 떡 벌어지는 기적은 그렇다 치고, 베드로와 바울조차 죽은 자를 살리고 불구를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기적을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눈이 확 뜨이는 이야기가 성경에 실감나게 그려져 있기에, 우리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호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성경을 덮으면 희망도 사라지고 마는 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강요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심시키고, 이 땅에서 증명할 수 없는 천국의 자격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영성학교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네 주변의 교회처럼 예배의식을 거행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통해 자기만족으로 채우는 종교인을 양산시키는 곳이 아니다. 말하자면 성경의 위인과 똑같은 성령의 사람으로 양육시키는 것이다. 이런 말이야 성경적이며 거창하지만, 우리네 주변에 아무도 그런 길을 걸어간 교회가 없다. 그러나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서 그런 엄청난 사역을 한다고 해봤자, 10원짜리 관심조차 던져주는 이들이 없어 보인다. 다만 정신질환과 고질병, 귀신들린 현상과 세상에서 해결할 없는 문제를 가진 이들이, 한낱 희망을 가지고 고단한 발걸음으로 찾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의 얘기를 듣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과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신앙의 방식을 확 바꾸라.

당신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한 세월이 십수년 아니, 수십 년이 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을 앞으로도 반복한다면 미래의 결과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네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이 지금의 신앙방식이 성경적이라고 거품을 물고 말하겠지만, 판단은 오로지 여러분의 몫이다. 아니라면 아닌 것이고 없다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대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당신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육체의 탐욕과 쾌락을 쫓던 육체의 사람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었는가? 성경대로 옮기자면, 여러분이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이 교회마당을 밟는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육체의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이 당신 안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인정한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하냐고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신앙방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에 삶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이다. 왜 삶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냐면,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이시므로,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종을 찾고 계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성령을 만나서, 그분과 손을 잡고 일생을 살게 되느냐고?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의 방식은 전심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종말이 가까울수록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게 죄라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죄다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였던 사람들일 것이 틀림없으며, 성령의 능력을 보여준 성경의 위인들이다. 여기까지 인정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든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돌아가 버리든지 말이다. 거의 모든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성경말씀을, 그냥 열심히 기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1,20분 기도하는 사람들을 칭찬해주고 손뼉을 쳐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런 기도의 모습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아무도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삶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영성학교를 찾아온 분들은 필자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권면을 받아들이는 자들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당연히 기도를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현재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쉬지 않고 일하고 있거나, 쉬지 않고 돈을 벌고 있는가? 아니면 쉬지 않고 공부하거나 쉬지 않고 놀고 있는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적당히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이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삶의 패러다임을 확 바꾸어야 한다.

적당히 기도해서는 하나님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 기도하는 일에 삶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일하면서 짬짬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공부하면서 틈을 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집안일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기도하면서 시간을 내어 일을 하는 것이고, 기도하면서 틈나는 대로 공부하는 것이고, 기도하면서 틈을 내어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버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둔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고 자영업을 하면서 시간을 내어 기도하려고 한다. 전업주부라면 집안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안일을 하다가 틈을 내어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몇 시간 기도했는지, 어디에서 언제 기도했는지 보는 분이 아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찾아오는 일에 삶의 모든 것을 걸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직업을 내팽개치고 자영업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며, 주부의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다가 시간이 되면 출근을 하고, 직장에 가서도 일을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기도하는 일에 두어야 한다. 퇴근을 하면 집에 돌아와 기도하면서 집안일을 하고 휴식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하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적당한 휴식을 하고나면 기도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침과 밤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낮에 삶의 현장에 있어도 자주 기도하게 된다. 마음이 기도하는 것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물리적인 기도의 양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찾아가는 기도에 마음을 쏟아 넣는 것은 똑같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찾아오셔서 떠나지 않고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며 걱정하고 우려할 것이다. 적당히 직장생활하고 자영업을 한다면 해고 1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학생이 그렇게 대충 공부해서 어떻게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을 잡겠냐며 하소연할 것이다. 필자가 기도에 우선순위에 두라고 했다고 다른 일을 게으르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가면 직장에 있는 시간은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점심시간이나 혼자 있는 시간에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시간을 초시계로 재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보는 것이다. 첫사랑에 빠진 청춘남녀가 바빠서 오래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이 서로에게 가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면 수시로 애인을 떠올리며 행복해하지 않은가? 그리고 틈만 나면 전화나 문자, 카톡으로 서로 대화하며 퇴근 후나 주말이면 만나지 않은가? 즉 당신도 하나님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

당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지 못했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신앙의 방식과 삶의 방식을 확 바꾸지 않는다면 성령과 동행하는 삶은 꿈도 꾸지 마시라. 하나님은 당신의 주인이시며, 주인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며 찾아오는 자들을 종으로 여기시고 만나주시며, 그 종을 사랑하시고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자신의 사역을 맡기실 것이다. 그런 종이 바로 성령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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