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대학 은사님께 도움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니 가슴이 무너진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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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20일 마약일기

“허기자님. 솔직히 내가 외국에 나가면 대마초 한번 안해볼까요? 저는 그거 죄라고도 생각 안해요. 탄원서에 제 이름 쓰셔도 돼요.”

모 변호사 단체의 회장이 나를 위로하며 해준 말이다. 법을 잘 아는 법조인들일 수록 마약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같다고 느낀다. 마약 관련 사법처리를 받는 사람들의 변호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테고, 마약이 그렇게 별세계의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돼서 그럴 것이다. 마약 피의자들의 변호를 많이 맡는 한 변호사는 한겨레에 제출할 탄원서에 들어갈 내용들을 함께 검토해주었다. 그 변호사는 나의 해고에 대해 “부당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없는 범죄인데, 그걸 갖고 해고까지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마약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일까. 일단, 연예인이 떠오른다. 신해철,김부선,싸이,전인권... 그리고 부유층 자제들, 성매매자들, 조폭, 클럽 업소 관계자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 등등이 하지 않을까? 내가 가져왔던 마약에 대한 이미지와 우리 사회 일반이 가져온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마약을 했다. 나는 저 마약을 할 것 같은 그룹 속에 들어가는 사람일까? 기자와 마약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의 마약 투약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이겠지. 충분히 이해 된다.

하지만 마약은 정말 우연하게, 자신도 모르는 새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니 그렇다. 바람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의 피부만 골라서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듯, 마약도 그렇다. 다만, 좀 허약한 사람들은 거센 바람에 잠시 휘청인다. 쓰러진다. 마약도 심신이 허약한 사람들 앞에선 강한 바람이다. 이 바람같은 물질에 단한번 단호하게 맞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인생을 절단낸다는게 말이 되는가. 우울증은 정말 나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갉아먹고 있었단 말인가. 난 매우 강한 사람이었는데.

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탄원서 동참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모 영화감독에게 탄원서를 받아준 경순 감독은 OO 감독이 “그래도 필로폰은 좀 심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대마초까지는 이해좀 해보겠는데, 필로폰은 좀 너무하다는 편견이겠지. OO 선생(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회학자)도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자신과 <한겨레>의 특수 관계 탓에, 뭐라 입장을 표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나를 평소 많이 아껴주신 중앙대 사회학과 은사이신 OOO 교수님도 참여를 거부하셨다. “내가 잘 모르는 일이라 함부로 참여하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은사님에게 ‘나 마약 해서 회사 잘리게 생겼으니 도와달라’고 연락하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못할짓을 한번 용기내서 해봤는데 거절당하니, 가슴이 걸레 쥐어 짜는것처럼 꼬이는 것같다.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앞으로 이런 반응들을 계속 견뎌야 할텐데 이를 어찌해야 하나.

대학 은사님께 거절당하자, 더 이상 탄원서에 참여해달라고 연락 못돌리겠다. 거절당함을 견뎌내기엔 내 마음에 아직 굳은살이 자라지 못했다. 그냥 나영정씨가 취합해주는 것만 갖고 대충 회사에 제출해야겠다. 그래도 이틀새 수십여명이다. 이게 어디인가.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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