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일기] 내안의 ‘못난이 허재현’에게 말을 걸어야만 한다

in #drug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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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26일 회복일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타사 선배 기자가 있습니다. 성품이 워낙 점잖고 배려심이 깊어 제가 참 좋아하던 분입니다. 저는 저와 관련한 지라시가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 이분에게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마약 한 적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이 저로 와전 된거라고요. 그때는 한겨레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 내가 허기자를 잘 아는데, 그런 거 할 사람이 아니지. 내가 주변에 잘 얘기해줄게요.” 저의 거짓 설명을 듣고 이 말씀을 해주셨을 때는 얼마나 죄스러웠는지요.

1년여가 흘러 저는 그 분을 뵈러 갔습니다. 이미 ‘죄송하다’고 여러차례 사죄는 드렸지만, 또 선배는 사과같은 거 받으려고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제가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1년이나 지난 뒤에나 찾아갔습니다. 제 스스로가 좀 죗값을 충분히 치르고 또 기자로서 어느정도 회복과정을 밟은 뒤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엉망진창일 때 찾아뵈면, 그것또한 선배를 가슴아프게 할 것 같았습니다.

선배는, 특유한 인자한 말투로 본인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2시간여 가까이 ‘작심한 듯’ 그간 제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라며 충고해주었습니다. 이 충고는 그러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저의 일기장에 씁니다. 마음의 병을 극복하는 방법은 많이 참고할수록 좋습니다.

“허기자. 우리 안에는 다양한 ‘나’가 존재해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을 걸어주어야 해요. 나를 가만이 지켜봐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은 결국 나예요. 허기자에 대해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 허기자를 얼마나 알고 글을 쓰겠어요? 하지만 허기자는 24시간 자신을 보고 살잖아요. 자신에 대해 가장 정확한 말을 해줄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동의합니다. 멍청하게도 저는 저 사실을 지난해에야 깨닳았습니다. ‘마약같은 건 절대 할리 없는 허재현’과 ‘마약을 갈구하던 허재현’. 이 둘 사이에서 저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약을 갈구하던 허재현을 도저히 제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건 내 본 모습이 아니라고 자위하고 억압하려고만 했었습니다. 중독의 무서움을 모르고 그냥 모른 채 하는게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마약하는 허재현’은 내가 아니라고 최면을 걸기만 했습니다. 저는 지금은 그런 방식은 결국 중독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잘못된 처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기자. 우린 때때로 일탈을 꿈꿔요. 그 일탈을 갈구하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줘야 해요. 나는 오늘 아침 정말 출근하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내게 말을 걸어주었어요. ‘아이고. 너 오늘 피곤하구나. 그러면 퇴근할 때 너가 좋아하는 조립 장난감을 선물해줄게.’ 그렇게 위로해주는 거예요. 부인에게는 미리 전화하고 퇴근 후 곧장 집에 가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지요.”

사실 그랬습니다. 저는 출근하기 싫은 날, ‘재현아. 너가 출근해야 오늘 하루도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줄이라도 더 알리지. 넌 한겨레신문기자야. 사명감을 가져.’ 라는 말 따위 해준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말고 한겨레신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에게 덜 미안하려면 일을 열심히 해야해.’ 이렇게 채근하고 몸이 쇳덩이같이 무거운 날도 회사로 발길을 옮겼었습니다. 저는 그게 제 스스로에게 ‘멋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언맨도 아니면서.

‘재현아. 힘들지? 일주일 정도 휴가 내보면 어때? 여행도 좀 가고. 너가 하기 싫은 일은 못하겠다고 하고 후배에게 좀 떠넘겨보면 어때?’ 라는 말을 11년간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허재현은 스스로를 위로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누군가를 위로하려고만 했었지요. 선배는, 제게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허기자. 동물원의 원숭이가 소리를 지르면 바나나라도 던져줘야 하잖아요. 내 안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고 바나나를 줘야 해요. 자신의 찌질함에 대해서도 인정을 해야 해요. 심해 속의 허재현을 찾아봐요. 어쩌면 그 허재현은 ‘외눈박이’일 수도 있고 팔이 하나 없을 수도 있어요. 보기 안좋을 수 있지만 그런 허재현도 맞닥뜨려서 ‘너가 참 고생이 많구나’ 하고 대화를 해줘야 해요.”

선배는 제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자신과 주변의 찌질함들을 기꺼이 설명해주었습니다. 불행한 가정사, 조직안에서의 인정욕구, 따돌림 당하는 것 같은 느낌, 아무도 따돌린 적 없는데 따돌림당한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두려했던 후배들 등등. 선배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대화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합니다. 선배도 우울할 때가 있지만 40대 중반이 되도록 큰 탈 없이 회사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었던 비결같았습니다.

저는 마약을 아직도 하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선배에게 말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대화하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허기자. ‘너 마약하지마.’ 이렇게 말하지 말고, ‘너 마약하고 싶구나. 참느라 얼마나 힘드니. 하지만 그 끝을 너도 알잖아. 마약 말고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자.’ 이렇게요.”

사실 지난 1년여의 시간동안 강제로 혼자 있어야 했던 시간이 많아, 인생을 살며 그 어느 때보다 제 자신을 관찰하며 보냈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를 유심히 관찰했던 이유는, ‘마약 허재현’은 제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대체 내가 어떻게 마약을 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인정하기가 어려워 저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관찰해야만 했습니다. 겉으로는 ‘반성하고 자숙하겠다’고 말하지만, ‘마약을 한 허재현’을 스스로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잘못에 대해 스스로 채찍질하기에 앞서 허재현을 허재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반성을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는 심정도 있습니다.

이제는 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회복의 일기장’을 통해 좀더 용기를 가져보렵니다.

‘찌질한 허재현아. 그간 많이 외로웠지? 이제 내가 말걸어줄게. 마약 다시 하고 싶은거 내가 너무 잘 알아. 수치심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을 못만나겠지? 그런데도 억지로 다시 사회생활 하느라 얼마나 힘드니. 이제 내가 말걸어줄게.’

우울증에 빠진, 우울증이 더 깊어져버린 허재현이라는 사람이, 언론인으로서 허재현이 어떻게 잘 회복해가는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저의 작은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마흔의 성장통’이 참 길고 깊습니다.

끝으로, 선배에게 저는 ‘왜 저를 용서하셨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제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허기자. 영화 <김복동>을 보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에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너희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반성만 하면 돼.’ 허기자는 내게 거짓말을 했었지만 나는 이미 용서했어요. 만약 허기자가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관계는 불편하겠지만 허기자는 이미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게 없지요. 가장 중요한건,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얼마나 반성을 하고 있는가예요.”

리포액트 http://repo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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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 번 해봐야겠어요.
조금 오글거리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하다보면 익숙해지겠죠 ^^

네. 어차피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게 아니고, 내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거잖아요. 부끄러워 말고 한번 해보시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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