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두 부류 죄인이 있다…자신의 죄를 들킨 죄인, 들키지 않은 죄인”

in #drug5 years ago (edited)

#2018년 5월7일 (월) 마약 중독자의 일기

혜문 스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아무래도 스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뭔가 삶의 방향을 찾아야겠다. 혜문 스님은 내게 인생의 조력자 같은 분이다. 스님은 늘 그렇듯 내가 찾아가자마자 따뜻한 차를 내오셨다. 뜨거운 차를 차분하게 마셔야 하는데 내 마음이 더 뜨겁다.

적막을 가르고 입을 열었다. 그간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걸 왜 들키고 그래요?”

스님은 내가 힘겹게 쏟아낸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중간에 말을 자르고 이렇게 말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하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스님이 유쾌한 표정으로 웃어버리니 나도 그만 따라서 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 웃음이 터져나오는게 맞나? 그런데 스님은 나를 웃게 만들어버렸다. 난 스님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비명처럼 쏟아낸 고백이었다. 내 비명을 듣고 스님도 함께 비명을 지르실까봐 겁이 났는데. 그만 웃어버리시다니. 심지어 내게 하시는 첫 마디가 “왜 들켰냐”니.

스님은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힘내라고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마약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허 기자님. 석가모니도 비틀즈도 다 마약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연 사람들이에요. 이제 그 반열에 들어선 거네. 고대부터 지금까지 마약은 어디에나 존재했고 사람들은 그걸 해왔어요. 다만 국가가 언제부터인가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게 마약이 되었던 것뿐이지. 허기자님이 누구한테 마약을 중독시킨 것도 아니고 피해를 입힌 게 없으니까 너무 죄책감 갖지 말아요.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마약 한번 한건데 그게 무슨 죽을 죄라구.”

9257_5705_3010.jpg

난 정말 죽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얼마전 만난 우성이랑 비슷한 얘기를 스님도 하시는구나. 고통없이 죽는 법만 검색된다면 난 당장에라도 이 수치스러움에 대한 대가로 자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우성이도, 혜문 스님도 모두 죽을 죄는 아니라고 하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기자가 마약을 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가 아닌가.

“허 기자님. 이 세상에 죄인은 두 부류가 있어요. 자신의 죄를 들킨 죄인, 자신의 죄를 들키지 않은 죄인. 마약은 남들에게 들켜서 수치스러운 것일 뿐, 그렇게 크게 나쁜 짓 한 것 아니니까 그냥 이 기회에 인생 삼막에 접어들었다 생각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봐요. 오히려 사람들이 허 기자를 좋아할걸? 너무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은 재미가 없어. 하하하”

스님이 또한번 크게 웃자, 나도 그만 또 따라서 웃어버렸다. 스님은 계속 나를 웃게 만들었다. 일부러 그러시는걸까. 힘내라는 말보다는, 실제로 그냥 웃게 만드는 쪽을 택하시는 건가. 스님은 내가 이 상황에 웃어도 되나 고민을 할 새도 없이 계속 웃게 만들었다. 종교의 힘인가. 도력과 철학의 힘인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의 충고를 듣자니 정신을 못차리겠다. 아무튼 죽을 생각이 담배 연기 사라지듯 공중으로 흩어지는 듯 하다.

“허 기자님은 제가 볼 때 너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만 했어요. 사명감과 정의감은 좋은데 조금의 일탈도 하고 살지 않은 허재현을 두고 ‘마음속의 허재현’이 참고참다가 거대한 반란을 일으킨 거예요.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마’라고 하는 몸부림같은 거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 좀 쾌락도 좀 즐기면서 살고 그래요. 마약을 다시 하면 안되지만 술이나 담배, 여자 같은 것도 좀 즐기시고. 인생 삼막을 제대로 열라는 운명이니까 그걸 거부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살수 있어요.”

그렇다. 나는 우리 사회 도덕적 지식인의 최정점에 서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스스로 짊어지고 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업무상의 술자리 외에 개인적인 유흥을 위한 술자리는 절대 만들지 않았고, 담배같은 기호품도 멀리했다. 우리 사회가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는게 도덕적인 삶이라고 믿었다. 그냥 우리 사회를 좀더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에 작은 시민의 밀알로서 살아가는 게 삶의 기쁨이자 전부였다.

내가 생각해도 난 좀 이상한 놈이다. 나는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부모님께 큰절 드리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활동을 하면서 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없어서 답답하다. 평소 난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이상한 놈이다. 하지만, 적어도 십만명의 한명쯤은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나는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지루한 삶을 버텼다. 개인의 삶은 심심하기 짝이 없어도, 그래도 보람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내게 최면을 걸었다. ‘마음속 허재현’은 ‘시발새끼야 니가 무슨 성인군자냐’고 계속 소리질렀을텐데 그 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 외면해왔다.

마약이라는 극단적인 일탈을 군자가 저질렀다. 나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 허재현은 ‘그동안 나를 이렇게 고생시켰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당해보라’며 쿠데타같은 반란을 저질렀던 거 같다. 스님이 제대로 보았다. 난 제대로 당했다.

이날 저녁 스님은 몇몇 사람들과 다도를 겸한 명상 모임이 예정돼 있었다. 나도 함께 끼어도 좋다고 하여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가부좌를 틀며 명상을 하는 한시간 내내 내 한숨 소리가 방안을 뒤덮었다고 한다. 다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소개는 했지만 앞으로 이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른 사람인지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스님은 다도 모임에 계속 참석하라고 했지만, 나는 웬지 못나갈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두렵다. 스님처럼 ‘왜 들켰냐’며 호탕하게 웃어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Sort:  

Congratulations @repoactivist!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received more than 500 upvote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1000 upvotes.

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Coin Marketplace

STEEM 0.26
TRX 0.11
JST 0.033
BTC 63869.25
ETH 3055.04
USDT 1.00
SBD 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