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booksteem]

in #jjm5 years ago (edited)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1. 이청준과 당신들의 천국
  2. 서술자의 특징 - 복합적 시선
  3. 줄거리분석
  4. 당신의 천국을 위하여
  5. 불가능한 천국 그 이후
  1. 이청준과 당신들의 천국

1년전 @kimlee 님이 "왜 이청준인가? "라는 글을 보고 [소문의 벽]에 빠졌습니다. 그 때 함께 빌려왔던 책인데 1년 만에 정리해 봅니다. 그만큼 후다닥 읽히지는 않은 책입니다. 소문의 벽은 정말 흥미롭고 하룻밤에 손에 놓지 못했지만, 이 책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李淸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는 관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적절한 기법과 역량을 보여줍니다. 그 분의 주요 작품이 바로 '소문의 벽', '줄',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과연 우리들만의 천국의 건설이 가능한가?"라는 철학적이고 이상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모색하는 관념적인 소설입니다.
'소록도 나환자촌'을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현실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현실과 격리된 공간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조명해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제시함으로써 '현실 속에서의 천국(이상적 사회) 건설 가능성 탐색', 구체적으로는 '그 건설을 돕는 행위의 가능성'에 대한 주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소록도에서의 새로운 삶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조 원장을 중심으로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치밀하게 그려 냄으로써

  • 자유와 사랑, 신뢰에 기반한 이상향 건설이라는 주제 의식을 우의적으로 그리고 있다.
  1. 서술자의 특징 - 복합적 시선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복합적 시선을 취하고 있다. 작품 표면상의 주인공은 조백헌이지만, 서술자는 그를 단순하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
조백헌 원장은 나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소록도 병원장으로, 간척사업을 통해 천국을 건설하려 하지만, 전출 명령으로 섬을 떠난다.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섬에 돌아와 진정한 이상향의 건설을 위해 노력한다. 소설은 내내 외부자인 그의 배신을 암시하지만 소설은 마지막에 ‘미침’이라는 설정으로 그의 본심을 승화해서보여 줍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원장을 실제 살아있는 인물을 소재로 삼고 있다 보니 저자가 작품의 결말에 대해 순수한 소설적 구성에서 벗어나버린 느낌입니다. ^^

'당신들의 천국'에서 천국의 모습에 대한 언급은 이상욱에 의해 단적으로 제시됩니다. 이상욱은 소록도 환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육지에서 성장하여 다시 소록도로 들어온다. 조백헌 원장을 비판하고 감시하면서 진정한 천국 건설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그에 의하면

진정한 천국은 '그것의 설계나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는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행위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본질을 보여 줍니다.

소설은 내내 갑자기 부임한 조백헌 보다는 섬의 역사를 함께한 이상욱의 판단에 무게를 실어 줍니다.

소설에 지속적으로 팽팽한 긴장을 유발하는 갈등의 중심은 두 가지 사실 입니다. 문둥이들의 헌신을 요구하는 열정적 인물인 조원장의 마음 속에 개인적 우상에 대한 욕구가 있는냐 없느냐? 그 점에 대한 의심입니다. 이용당하고 말 수 있다는 불안입니다. 그리고 이어 그건 바로 운명을 함께 하지 않고서는 조 원장과 소록도 사람들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조 원장은 언젠가는 이 섬을 떠날 건강인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섬에 뼈를 묻을 존재들이었기에 문둥이들이 그런 조원장의 언제까지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소설의 막바지에 조원장은 소록도를 떠나게 됩니다. 원생들이 마음속에 우상을 지닐지라도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의 자유로운 희망을 위해 우상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 2부 마지막 사건이 이 소설의 갈등이 완전하게 다듬어지는 완결부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3부에서 조 원장은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옵니다.
조원장의 노력을 성스럽게 그렸던 기자 이정태는 조원장의 천국이 가능한 것인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당신들의 천국일 뿐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다시 섬을 찾습니다.

조 원장도 시간이 흐른 후 열정으로 살짝 맛이 간 상태에서 작으나마 섬을 위해 헌신하는 신념을 이어갑니다. 천국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배신도 하지 않았다는 다소 어정쩡한 결말로 끝을 맺은 셈입니다. 긴장은 결국 터지거나 해소되지 않고 부정되지도 완결되지도 못합니다. 이점이 살아있는 장소와 현존하는 사람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서의 제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차피 소설은 희망과 사랑으로 맺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상징적 사실주의는 갑자기 계몽주의소설이 된 듯 합니다만, 이미 소설의 백미는 충분히 빛을 발했고 에필로그를 읽는 느낌입니다. 좋은 소설입니다.

  1. 줄거리 분석

소 소록도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인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 사람들이다.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속되어온 배반의 역사로 인해 소록도 원생들은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살아왔다. 오랜 세월 배반의 역사로 고통받아온 이들은 소록도를 개척하려 하는 조 원장을 불신의 눈길로 대한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전 원장들과 마찬가지로 조 원장 역시 소록도의 개발과 발전을 명분 삼아 눈부신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자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는 경계한다.

군부 독재시절을 배경으로 권총을 차고 있는 권위적인 조원장의 추구는 숭고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상욱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통해 뒤쫓는다.
원장의 뜻대로 소록도 축구팀이 승리를 통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때 첫 이질감 혹은 한계가 드러난다. 조 원장은 높다랗게 버티어 서서 그들을 희미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선수와 섬사람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다시 [소록도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합창했다. .... 그는 아직도 섬사람들의 기분에는 격동되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 웃음띤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오싹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제 진짜 뭔가 시작될 모양이군. 도데체 어느새 이렇게 되고 말았지?” p 153
바로 운명을 함께 하지 않고서는 조 원장과 소록도 사람들이 결코 하나가 되지 않는 암시적 첫 장면이다.

조 원장은 어차피 이 섬을 떠날 건강인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 섬에 뼈를 묻을 존재들이었기에 그들이 느꼈던 감정의 폭도 그만큼 달랐을 것이리라.

상욱의 우상에 대한 논리는 어쩌면 이 책의 주제이다.
원장이 오기 전 소록도는 유령의 섬이었다. 원장은 유령들을 걸아다니는 인간으로 만들고 희망과 신뢰까지 심어 주었다. 모처럼의 희망과 신뢰가 동상이 세워지게 된다면 또 다른 속박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섬사람들은 동상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동상이 섬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진실한 동상이라면 값진 것일 수 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원장이 아닌 오천 원생들 자신을 위한 동상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상욱이 말하는 바는 원장이 섬에 남아있는 한, 나환자들은 그 동상을 결코 자신을 위한 것으로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2부 마지막 노인의 웅얼거림이 이 소설의 사실상 대미로 여겨진다. 상욱도 섬을 떠나고 원장도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은 문둥이들의 ‘자유를 행하기’ 위해서다. 황장로는 처음부터 원장이 오직 ‘사랑’으로 행해 왔음을 인정한다. 다만 우상의 기억일 지배하는 사람들의 기억이 문제였을까.

▶ “그건 아마도 모처럼 이 섬에 남겨진 사랑의 동상이 될게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제 손으로 지어 지니게 될 그런 동상. 아무도 목을 매어 끌어내릴리 없는, 이섬이 우리 문둥이의 것으로 남아있는 한 오래도록 이 섬에 남아 있어야 할 단 하나의 사랑의 동상으로 말이야. p 351

  1. 당신의 천국을 위하여

궁극적으로 ´당신들의 천국´과 ´우리들의 천국´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천국을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 그들을 이끄는 ‘우상’ 즉 천국을 제시하는 사람을 둔 상태에서 자신들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딜레마의 이야기이다.

이 시대, 즉, 이 사회의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지배층이 내세운 허울 좋은 명분에 의해 희생될 위험성이 산재한 시대이다. 주정수 시대의 소록도는 바로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했다. 그들은 미래의 어느 불확실한 시점에서 만날 축복을 기대하며 현재를 고통스러운 노동의 시간으로 보낸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생을 마감하거나, 자신이 만들어온 천국의 공간에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갖지 못하고 소외된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나환자들의 희생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천국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조백헌과 같은 다른 어떤 ‘신이 보낸 그 분’이 이끄는 길. 그 길은 항상 ‘우리’가 아닌 당신의 천국의 위험과 의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 ´

3부에 등장하는 기자 이정태는 소록도에서 원장을 거대한 거인으로 그린 바 있다. 그의 시선은 자발적 자유와 권리가 부족한 섬에서의 천국은 불가능한 사기극이 아닌가하는 의심 때문에 부채의식에 시달린다.

천국이란,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노정 자체가 천국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는 이들은 미래의 어느 시점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매순간을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천국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자유’이다. 섬에서는 그게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뒤늦게 섬에 들어와 광기로 미쳐가는 원장의 모습을 보고 이정태는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는 느낌이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소. 이런 식으로 미쳐 지내기라도 하지 않은면 난 이 섬을 참을 수가 없어요. 미치기나 해야 견딥니다 이 섬은 미치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가 없단 말요“ p 369

황 장로가 조백헌에게 말했듯이 여기에서 빠져선 안 되는 것은 ´자유´와 ´사랑´이다. ´자유´의 정신은 우리가 그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은 조창원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 이청준도 말했듯이 조창원의 삶은 어쩌면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의 앞으로의 행로를 궁금히 여기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속편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소설의 결말은 어쩌면 저자의 조창원과 소록도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소록도를 담고 있으니 온전한 허무나 배신의 결말이 처음부터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소록도. 후손의 미래를 빌미로 현실이 다스려지는 섬. 아니면 현실의 실패 때문에 섬의 현실이 더 이상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반항하는, 그래서 혼전 단종 수술을 요구하는 윤해원의 협박에 조원장은 수술을 거부한다. 현실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이어져 온 무모한 탈출들은 강요된 천국에 대한 통쾌한 배반, 스스로 자기 삶을 짊어지려는 갸륵한 모험이었다. 원장의 노력은 그에 비해 한 지배자가 다수의 인간집단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통치술에 불과했다. 통치자와 피지배자를 가둔 그 울타리에 대한 각성이 없는 한 어떤 선한 의도도 강요당한 괴로운 봉사일 뿐이다.
원장은 사랑으로만 행하고 원생들은 옳은 자유로만 행할 때에만 조화를 이룰 수 있는데 결국 양쪽 모두 그것을 감내 하지 못했기에 원장은 섬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태의 분석이다. 천국 건설에 필요한 원장의 힘, 그리고 나약한 문둥이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의 동질감, 이 둘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모순된다. 그 천국은 불가능하다.

  1. 불가능한 천국 그 이후

개인적으로 나는 조백헌 원장이 스스로 타인임을 인정하고 섬을 떠나던 그날, 그것이 소설의 결말이라고 여긴다. 이후의 내용은 훈훈한 다큐요, 휴먼드라마로 섬과 섬사람과 조원장에게 저자가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조창원의 실제 삶이 소록도 환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은 훈훈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설의 주제는 속 조백헌 원장의 헌신이 될 수는 없다.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물질로 헌신하고자 할 때, 즉, “당신들의 천국을 내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나서고자 할 때 그 헌신자가 자신의 삶과 시간을 걸었을지라도 자시의 좌절이나 배신이 낳을 수도 있는 ‘그들의 절망과 상실감’까지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는 깊은 배려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배반의 역사는 악인보다는 ‘미숙한 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불신으로 점철된 마음을 녹이고자 한다면 당신들의 자유와 사랑을 위해, 나 역시 온전한 삶을 걸고 자유와 사랑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그럴 때에만 모두의 천국을 위한 걸음이 될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 사회와 인간의 관계망에 대한 이 소설은 지배자와 순응하고 또는 반항하는 인간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와 인간의 기본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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