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뢰군 연혁) 14, 강동정치학원steemCreated with Sketch.

(괴뢰군 연혁) 14, 강동정치학원
<괴뢰군연혁>은 북한의 유격부대를 양성한 강동정치학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4280(1947)년 5월 제주도 사건 동년 11월의 여수 순천반란 사건을 기회로 이와 호응하여 조직적인 후방요란을 목적으로 남한 일대에 침투시킬 유격대를 양성하는 기관을 강동에 설치하고 이를 강동정치 학원이라고 호칭. 남한에서 월북한 좌익 극열 분자 혹은 남한에서 유인 월북당한 좌경적 남녀 청소년들은 이학원에 강제 입교시켜 3-6개우러간 유격전수을 습득시킨 후 주로 동해안 태백산맥을 이용하여 남침시킨 거승로 이학원에서 파견된 유격대는 개전까지 10차에 걸쳐서 총병력 약2,385명의 훈련된 유격대를 남침시켰던 것이다.”(46)

강동정치학원을 이끈 것은 박병률이라고 소련파였다. 1990년대 한소수교를 하고 나서 소련에 있던 한인들 중에서 북한의 정부수립이나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993-4년쯤에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에서 박병률을 위시해 소련에 있던 북한인민군 고위직들을 초청해서 세미나와 증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박병률을 보았다. 인물도 훤하게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자신이 강동정치학원을 수립해서 유격대를 양성했다는 것을 증언했다. 그러면서 남한에 와서 지형을 살펴보니 자신이 잘못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소련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격대원들 교육을 시켰는데 한국의 자연조건은 소련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유격대원들이 생존하기 어려운 자연조건이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남으로 보낸 유격대원들이 모두다 죽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한국전쟁을 개전이전에 유격대가 많이 파견되었으나 그리 중요한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박병률도 이후 숙청 대상이 되어 다시 소련으로 망명을 해서 여생을 소련에서 살았다.

당시 박병률과 같이 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도 했는데 사진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괴뢰군 연혁>에서 강동정치학원에 대한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아마도 유군본부 정보국이 이책을 작성할때 까지만 해도 강동정치학원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9년 10월 7일

Coin Marketplace

STEEM 0.35
TRX 0.12
JST 0.040
BTC 70733.96
ETH 3563.16
USDT 1.00
SBD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