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힘'이 무서워지는 하루

in #kr-art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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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난 대구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난 이번 주 서울여성공예센터를 매일 ‘출근’하다 보니 포스팅을 하지 못했다. 오늘부터 대구에서 본 전시들을 짬나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포스팅 해 보도록 하겠다.

지난 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 대구 중구 명덕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펄에 도착했다. 박형진 개인전 <유기적 조각>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11시 정각이 되자 아트스페이스 펄의 정명주 큐레이터가 도착했다. 정 큐레이터는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난 일단 전시공간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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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겠다. 난 박형진 작품들에 완전 반했다. 조각의 '맛'과 '멋'이 함께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눈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로 한 걸음 더 들어가니 콧등이 찡하다 못해 눈물이 울컥 나왔다.

박형진의 개인전에는 조각들과 평면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면작업들은 3점으로 이루어진 마가린을 바른 얼굴을 찍은 얼굴사진 연작과 비정형의 골판지에 마가린을 손가락으로 그린 작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난 이곳에서 조각 두 점에 관해서만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골판지를 찢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인상을 조각한 <노블(Noble)>이고, 다른 하나는 골판지를 찢어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남자상을 조각한 <혀의 힘>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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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진의 <혀의 힘>은 마치 엎드려뻗쳐 동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거대한 남자는 두 팔이 없다. 물론 엎드려뻗쳐 동작에 두 팔은 등 뒤로 하고 머리로 박는 형태라는 점에서 두 팔은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거대한 남자는 머리 대신 얼굴 밑 부분에서 마치 거대한 줄기처럼 뻗어 나온 혀로 벌린 두 다리와 팽팽한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 하나의 혀와 두 다리로 지지하고 있는 그 거대한 남자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찢어진 골판지들을 이어 붙여 조각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골판지맨’에 가까이 접근해 본다면, 박형진의 ‘손 맛’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남성 인체의 근육을 골판지의 골로 기똥차게 표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체 조각 안은 텅 비워있다. 따라서 난 그의 조각적 테크닉과 감각을 한방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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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은 박형진의 <노블>에서도 볼 수 있다. 그의 <노블>은 골판지들을 작게 찍어 조각한 <혀의 힘>과는 달리 대담하게 골판지를 큼직하게 찢어 아름다운 드레스를 조각해 놓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노블> 역시 골판지의 골을 교묘하게 이용해 드레스의 주름을 표현해 놓았다.

머시라?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얼굴에 발라진 것이 무엇이냐고요? 그건 마가린이다. 뭬야? 온도에 민감한 마가린이 흘러내리지 않겠느샤고요? 그 마가린은 녹아내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형진은 그 마가린 뿐만 아니라 골판지 조각 전체에 (흔히 건물 바닥공사에 사용하는) 투명 에폭시(epoxy)로 코팅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생적' 골판지 컬러가 '고상한' 초콜릿 컬러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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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노블(noble)’은 고결한, 고귀한, 숭고한, 웅장한 등 귀족적인 것을 뜻한다. 그런데 박형진은 그 고상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얼굴에 마가린으로 ‘떡칠’을 해놓았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에 떡칠하다 떨어진 듯 여인의 가슴에도 마가린이 부분 묻혀있다.

물론 여인이 두 손에 걸친 숄(shawl)에도 부분 마가린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근데 그 숄에 표현된 마가린은 얼굴에 ‘떡칠’한 것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그는 골판지로 조각된 숄의 느낌을 내기위해 마가린으로 ‘표현’한 것인 반면, 그는 마치 여인의 얼굴에 손상을 가하듯 여인의 얼굴에 마가린으로 ‘떡칠’을 해놓았다고 말이다.

와이? 왜 박형진은 고상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얼굴에 마가린으로 ‘떡칠’한 것일까? 문득 크리스티나 노블(Christina Noble)이 떠오른다. 사실 난 크리스티나 노블을 영화로 먼저 만났다. 스티븐 브래들리(Stephen Bradley) 감독 영화 <노블(Noble)>(2014)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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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영화 <노블>은 아일랜드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참혹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세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는 실존 인물 크리스티나 노블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크리스틴 노블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고상한 이름(노블)을 지어주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고아원으로 향한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탈출해 갖가지 고난을 겪는다.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과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로 점점 삶은 피폐해져 가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을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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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은 꿈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아이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베트남의 호치민으로 향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베트남에 도착했지만, 그녀에게 마주한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해맑은 미소를 지어야 할 아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어둠이 그늘져 있었다. 그런데 노블은 그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정한다. 노블의 끈질긴 노력으로 베트남 아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내리듯 도움의 손길이 닿는다.

난 박형진의 <노블>을 보면서 고상한 모습은 아름다운 드레스나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고통을 겪은 크리스티나 노블은 그녀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처럼 절망적인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고상한’ 여인이 되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 잠언 18:21

난 박형진의 <혀의 힘>을 보면서 ‘세치혀’를 떠올렸다. 다 꺼내봤자 세치 밖에 안 되는 것이지만 혀의 힘은 강하다. 두 팔을 잃은 남자는 두 다리와 긴 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문자 그대로 ‘혀의 힘’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우리는 ‘세치혀’로 밥벌이를 한다. 어느 날은 쓰고, 어느 날은 시큼하고, 어느 날은 달 것이다. 그런데 그 혀는 (노블처럼) 남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혀는 남을 해코지하기도 한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쓰는 ‘혀의 힘’은 일종의 ‘적폐’이다.

그러나 잠언에서 말하듯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혀의 힘’이 ‘혀의 권력’으로 사용될 경우 혹자는 그 혀에 감동하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 혀로 인해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문득 ‘손의 힘’이 무서워지는 하루이다.

아트스페이스 펄의 박형진 개인전 <유기적 조각>은 11월 12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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