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횡설수설)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치바이스 전을 보고

in #kr-art5 years ago

그동안 미루어왔던 치바이스 전을 보러갔다. 치바이스는 중국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예술가이다. 이미 작품가격이 피카소를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치아이스의 한자식 이름은 제백석이다. 그는 원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몸이 약해 농사를 짓기 힘들것 같아서 그의 부친이 그를 목공일을 시켰다. 그는 대목에서 소목으로그리고 나중에는 목세공으로 그 영역을 넓혀 가다가 나중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혼자 공부를 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다. 팔대산인과 오창석을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 이전 문인화에는 별로 다루지 않던 주변의 곤충이나 개구리 새우 같은 것들을 그리면서 중국 농민화의 수준을 높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치바이스가 인정을 받는 것은 농민화의 품격을 높혔다는 것 때문인 듯하다.

전시는 제일 먼저 팔대산인의 그림과 치바이스가 따라그린 그림. 그리고 오창석의 그림과 치바이스가 그린 그림. 마지막에 가서야 치바이스만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왜 치바이스의 그림이 피카소를 능가하는 평가를 받는지 잘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같이 구경을 한 사람들도 모두 전문가인데 나의 평가를 굳이 반박하려고하지는 않았다.

그중에 미술평론의 전문가인 선생님 한분이 내 생각에 동조를 해 주었다. 치바이스는 기존의 수묵화가와 달리 농민출신으로 신분이 다른 화가들 즉 문인 출신과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치바이스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문화굴기차원에서 키워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치바이스의 그림 중 내가 그래도 조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마지막 방에 전시되어 있던 산수화였다. 기존의 산수화와는 달리 매우 과감하게 생략하고 대상을 단순화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의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실험정신을 자신의 그림의 핵심으로 만들어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100년 가까지 살면서 80이 지나서야 겨우 제대로된 그림을 그렸다는 그의 그림을 어찌 몇점의 그림만 보고 알 수 있겠는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바이스를 피카소와 비교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국이 장난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만 느꼈다.

전문가들이 내 평을 보고 무식을 한탄하지 모르겠으나 그림은 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은 답이 없는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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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스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문화굴기차원에서 키워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짱퉁이 워낙 발달한 나라라서...

미술전도 좀 보러가야하는데... 마지막 가본게 꽤 되었네요ㅎ
오늘도 디클릭!

나중에 기회되면 치바이스 그림을 한 번 봐야겠네요~

그림을 혼자 공부했다니
관심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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