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도읍지 이야기>를 읽고

in #kr-book6 years ago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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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터질 듯 화가 나거나 두리번두리번 왔다갔다 에너지는 있는데 뭔가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읽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일종의 진정제가 되기도 하고 도피처가 되기도 하는 게 책이다. 재미있으면 재미있을수록 그 성능은 비례하여 높아진다. 최근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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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의 수천년 역사 가운데 도읍지의 지위를 차지했던 여섯 도시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국의 현재 수도 북경(베이징) 말고도 “장안의 화젯거리”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 장안(長安), 즉 오늘날의 서안과 ‘낙양의 지가를 올린다’는 관용어를 낳은 낙양 (뤄양), 마르코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찬양했다는 항주(항조우), 그리고 진시황 때부터 주목받았던 도시로서 중국 역사상 비극이 여럿 아로새겨진 남경(난징), 그리고 포청천이 활약하던 도시 개봉 (카이펑)의 여섯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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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섯 도시를 소개한 어느 장을 보아도 흥미진진한 사건과 인물의 연속이다. 자금성과 만리장성의 북경 이야기야 한국 사람들에게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사이 사이에 숨은 사연들은 “아니 그런 일이” 하며 귀를 쫑긋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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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보물이었다 할 원명원이 파괴된 사연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 ‘열하일기’를 본 사람들은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열하에 있었던 걸 알지만 옹정제부터 함풍제까지 청나라 황제들은 그 외의 시간 대부분을 자금성 아닌 원명원에서 보냈다고 했다. 건륭제 때에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식 건축물인 서양루(西洋樓 )를 세우는데 여기서는 서양식 분수가 아름답게 물을 뿜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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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물을 뿜어내는 조각상. 서양식이라면 원래 반나체 또는 나체의 미남미녀가 서 있어야 하지만 그건 수용이 안됐던가 보다. 그래서 서양루의 분수를 장식한 건 십이지신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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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의 황제를 거쳐 심혈을 기울여 가꾼 원명원에 위기가 닥친 건 애로우 호 사건(1856)으로 촉발된 제2차 아편전쟁 때였다. 청나라는 전쟁에 패했고 텐진 조약이 체결되지만 영국과 프랑스군은 베이징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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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충돌이 일어나 연합군 26명이 포로가 돼 베이징으로 압송되는데 영국과 프랑스군은 이 포로 송환을 요구하며 계속 베이징을 압박했다. 포로는 송환됐지만 그 와중에 사망자가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 군은 이에 대한 ‘응징’으로 원명원을 약탈하고 불태운다. 원명원이 잿더미가 됐다는 말에 함풍제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얼마 못가 세상을 떴고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분개했단다. “장차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두 강도. 영국과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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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촬영차 베이징에 들렀을 때 나는 먼발치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원명원의 폐허를 보았다. 돌더미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정도의 폐허였던 원명원에서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무심히 지났던 그날의 돌덩이들이 어제 본 영화처럼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건륭제가 변발 휘날리며 공사를 감독하고 함풍제가 피난을 가면서도 발을 떼지 못하던 모습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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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역시 진리에 가깝다. 사연이란 그런 것이다. 대학 시절 여행 중 친구 녀석이 이곳은 꼭 들렀다 가자 하여 한 시골마을을 찾았을 때 아무 볼 것도 없고 특이할 것도 없어 도대체 여길 왜 오자고 했냐고 으르대는데 녀석이 정지용의 <향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어 여기가 정지용 고향이야?” 외마디 비명과 더불어 그 마을 전체가 노래가 일렁이고 싯귀로 춤을 추는 듯한 환상에 빠졌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국의 많은 것을 '보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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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아니라 이 책에는 이런 짤막짤막하지만 굵디 굵은 사연들이 100개도 넘게 넘쳐 흐른다. 드라마로 봤던 포청천이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고급 중국집에서 기세 좋게 시켜 먹는 동파육은 어떤 사연으로 만들어진 음식인지, "관리가 되려면 증국번이 되고 상인이 되려면 호설암이 돼라.“는 말을 낳았던 항주의 거상(巨商) 호설암이 누구인지, 서안에서 발견된 경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유행비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하고 서안에 남아 있게 됐는지, 낙양에 묻힌 관우의 머리가 관림(官林)이 되는 사연이 무엇인지..... 얘기 하나 하나 씹어먹을 듯이 읽자면 몇 주를 읽어도 모자랄 정도다. 원래 ‘정독’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대충 여러 번 읽는 스타일인 내게는 꽤 짜증나는 책일 수 밖에. 볼 때마다 새로운 사연들이 솟아나고 이야기가 흘러넘치니 즐거워서 버거울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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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재미있는 사연을 꼽으라면 난징편에 등장하는 진회팔염(秦淮八艶)이다. 난징의 어머니 강(江)이라 할 진회하 주변에서 명나라 말 청나라 초 태어난 여덟 명의 기생들의 사연이다. 그 사연들은 여덟가지 색 여덟가지 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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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넷에 열 세 살 연상의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고 그의 아내가 되기를 바랐으나 30년 동안 그를 그저 ‘바라만 보았던’ 비운의 여자 마상란은 남자의 칠순 잔치를 차려 주고 몇 달 뒤 세상을 떠난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유여시라는 기생은 서른 여섯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문단의 거두였던 전겸익에게 첩으로나마 시집가는데 청나라 군대가 난징에 육박하자 남편에게 명나라를 위해 물에 빠져 순국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 못난 남편은 “물이 차다.”고 꽁무니를 뺀다. 동료들이 줄지어 순국하는 가운데 남편은 청나라의 벼슬까지 지내다가 감옥에 갇히는데 유여시는 이 남편을 빼내 명나라의 잔존 세력과 연결시켜 주지만 반청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 나이 여든 셋의 남편이 세상을 뜨자 유여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붉은 장미 같은 열정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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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의 반란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될 당시 남편과 함께 죽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기생 고미생은 슬픈 할미꽃,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으나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도 닦는 여인’으로 인생을 마감한 변옥경은 고결한 수선화꽃이다.

한편 애인 모벽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모백강이 등에 종기가 나서 바로 누울 수가 없게 되자 꼬박 백 일 동안 그 등을 받치며 앉아서 잠을 잤다는 헌신녀 동소완. 그녀는 불과 스물 여덟 살에 애인이 선물한 팔찌를 손에 쥐고 죽어갔다. 마치 포겟 미 낫을 외치는 물망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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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자신에게 쓰는 돈이 뜻밖에도 애인이 경멸하던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알고는 그 돈을 마련해 “다시 갖다 줘요!” 부르짖었고, 권력자의 첩이 되라는 강권을 받자 난간에 머리를 찧어 피 흘려 가며 거부한 고고한 모란 같은 여자 이항군도 있고, 시집은 갔으나 베이징에 잡혀간 남편이 몸값을 위해 집안의 여자를 다 팔아넘기려 하자 다시 기생이 되어 그 빚을 갚아 주었으나 다시 찾아온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모래땅 해당화 같은 구백문의 사연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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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진회팔염 가운데 역사를 바꾸었다고 할만한 여자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진원원이다. 그녀는 위에서 언급한 물망초같은 여자 동소완이 사랑했던 모벽강의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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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북경으로 끌려가면서 인연이 끝났고 그는 명나라의 장군 오삼계의 첩이 된다. 오삼계는 명나라의 마지막 용장이었다. 그는 50만 대군을 거느리고 만리장성의 동쪽 요새인 산해관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가 쳐들어올 틈도 없이 반란군 이자성이 베이징을 함락했고 명나라 황제는 자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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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이냐 청나라냐의 갈림길에서 오삼계의 선택은 청나라였다. 그는 산해관을 열었고 청나라의 앞잡이가 돼 북경을 들이친다. 그런데 그가 이런 역사적(?)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이 진원원이었다고 한다. 이자성의 부하 장수가 진원원을 차지했다는 말을 듣고 격노하여 산해관을 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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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 명의 헤어스타일을 변발로 만들면서 만주인들이 중국을 차지했던 가장 큰 계기가 한 여인이라는 게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런 우연들이 겹쳐 필연이 되는 것이니만큼 허투루 들을 수도 없다. 이 역사를 바꾼 사랑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진원원을 금새 버렸고 진원원은 불가에 귀의해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아아 이제는 돌아와 불상 앞에 선 국화꽃같은 진원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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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경과 서안, 낙양은 짧게나마 경험을 했다. 낙양 인근에 있는 ‘북망산’ (우리가 흔히 죽음과 등치시키는 표현인 북망산이 낙양 근처에 있다)에도 올라 봤고 용문 석굴의 장관도 구경했다.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는 모택동의 흰소리가 괜히 멋있어 보여 허용되는 한, 가장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 나는 대장부다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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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의 무지막지한 성벽 (17세기 서양 선교사들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말 타고 출발하면 하루 종일 걸려야 다시 만났다는 길이)을 걸으며 두보가 읊은 “나라는 깨어졌으나 산하는 여전하거니”를 유장하게 읊기도 했다. 당시 함께 했던 작가 최인호 선생이 “이야 그 다음 해 봐라.” 하시기에 “모르는데요.” 했다가 대대적인 웃음거리가 됐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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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박 겉핥기였으나마 혀 끝에 와 닿았던 도시들의 기억들을 새록새록 다시 곧추세웠을 뿐 아니라 가 보지 못한 세 도시, 항조우, 카이펑, 난징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을 구름처럼 일으켰다. 언제든 난징과 항조우와 카이펑에 가게 되면 이 책을 끼고 가리라. 특히 난징의 진회하에 가면 그 물가에 피었던 여덟 꽃들, 진회팔염을 기리며 빼갈 여덟 잔 기울이리라. 기다리시게 진회팔염들이여. 동방의 미남자가 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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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 역사에도 꽤 많은 도읍이 있었는데 그곳들에도 사연들이 무성하게 자라 온 땅을 뒤덮었을텐데,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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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백제 5백년 도읍지 위례성은 어느 아파트 밑에 묻혀 있는지 모르고, 평양과 개성은 아직 맘대로 가기엔 녹녹치 못한 곳에 있고 궁예의 도읍 철원은 비무장지대에 놓여 있으며 부여와 공주는 백제의 자취를 찾기 어렵다. 언젠가 누군가 ‘우리 도읍지 이야기’를 써 주기를.. 그에 앞서서 마음 편히 답사하고 자유롭게 누비며 우리 도읍지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기를.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의 집안현(국내성)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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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거 쓰기 바빠서 리블로그 잘 안하는데
완전 굿이에욤
제가 책을 읽은것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저 아주 조금씩이라도 보팅하려고 로봇임대 취소 했는데 빤낭 안돌려주네요

감사합니다 ^^

난징의 아픈역사가 먼저 생각나네용..

그 얘기도 나옵니다 난징대학살 얘기도....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넘쳐나네요
잘 봤습니다

네 재밌으실 겁니다.... 한 번 읽어 보시길

역사 좋아하는데, 이 책도 끌리네요. ^^

역사 좋아하신다면 나쁘지 않으실 겁니다..... 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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