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일상 이야기 - 어버이날에

in #kr-gazua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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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썰 풀기


난 평소에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잘 하는 편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상관 없다. 행복했던 이야기, 불행했던 이야기, 평소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나의 가치관까지 방금 처음 본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면 서너시간은 너끈하게 풀어낼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혼자 계속 떠들기만 하는 건 아니다. 대화를 좋아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술이 없어도 해가 떨어지는 건 어렵지 않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몇 시간이 흐른 후에 이렇게 말했었다.

'솔직히 되게 안타깝고 불쌍하고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놓는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아마 이야기를 하는 나도 불쌍하게 보일 마음은 전혀 없었고, 어차피 지나간 날들이니까 '그냥 그랬노라'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내용을 전해서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이야기를 할 때 극적으로 높낮이를 조절하는 능력이 좀 있다. 영화를 전공한 게 괜한 건 아닌 거지.


나의 부모


제주도에 혼자 살고 있는 건 거의 다 알 텐데 가족이 없는 건 사실 잘 알리지 않았다. 대부분은 육지 어딘가에 나의 가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게 일반적이니까. 하지만 난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여동생은 아이를 키우며 서울에 산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65세를 넘기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벌써 가신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나를 낳기전 30여년 간의 부모의 인생은 그저 스쳐 지나가며 흘려들은 것 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를 아들을 앉혀 놓고 설교하듯 할리도 없고 한다고 해도 들을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렇게 흘겨 들은 것들이 오히려 귓전에 남아서 그 아버지와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다시 가슴을 팍팍 찌르며, 머리를 둥둥 울리며 되돌아 오는 건 무슨 경우인지...

나의 부모는 해방을 전후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었고, 공교롭게도 두분 모두 위아래 형제를 둔 둘째였다. 어려운 시절에 가운데 낀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평생을 형과 동생, 그리고 고모들에게 다 퍼주며 살았지만 막판에 돌려 받은 건 없었다. 우리 아버지의 인생 마무리는 내가 살면서 본 한 인간의 가장 불쌍한 마지막이었다. 나머지 5남매들은 우리 아버지가 살아서 퍼주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엄청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엄마의 평생의 한은 배움이었다. 자식들한테 창피해서 자식들이 다 자랄 때까지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던 엄마. 국민학교만 나왔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엄마.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실종되었고 전쟁 통에 3남매를 혼자 키워야 했던 외할머니는 외삼촌 고등학교 보내기도 버거웠을 테니 우리 엄마 몫은 줄래야 줄 수도 없었을 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여러가지 결핍 아래에서 자랐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나 선을 보고 결혼한 두분은 나와 2년 터울의 내 동생을 낳고 키웠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대표되던 시절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가진 네 식구 가정은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 했다. 모든 형제 중에 유일하게 번듯한 직장을 가졌던 아버지였고, 그래서 월수입이 넉넉했고, 또 그래서 형제들에게 다 퍼주면서 엄마와 부부싸움도 많이 했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두분은 사랑을 줄줄도 몰랐다. 아버지는 술이 취한 날이면 나와 내동생에게 평소에 하지도 못하던 행동을 하며 부담스럽게 애정을 표현했지만, 나와 내동생은 절대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는 그런 아버지의 애정 표현을 우린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엄마의 따뜻한 포옹 같은 걸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 안에서 난 엄마에게 안겨본 적이 없다. 아마도 젖떨어진 이후로 엄마는 우리를 안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가 우릴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저 너무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일뿐. 이 사실도 나이를 먹은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살아 생전 술 한 잔 올려드린 적이 없다.
어머니 살아 생전 좋은 말 한 마디 해본 적이 없다.

사랑받아 본 적 없어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부모 밑에 자란 나 역시
그런 건 너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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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에 개인 사진은 올리는 거 아니라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 사진은 여기다 박제해본다.

혹시 누군가 나의 기록을 발굴했을 때
내가 우리 엄마, 아빠를 사랑했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어버이날에


아버지가 가시던 날도, 엄마가 가시던 날도 참 많이 울었다.
왜 우는지 모르면서 계속 울었다. 자식은 그런 거였다.
아무리 싫어 했던 부모도
애정이 없다고 믿었던 부모도
떠나간 날은 그렇게 서럽더라.
2박 3일을 그렇게 울고
뼛가루 뿌리고
돌아와서 지쳐 쓰러져 자고 일어났는데
배가 고프더라.

그리고...

엄마가 없어도 나는 잠을 자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밥을 먹고
출근을 한다. 난 어른이었다.

그렇게 내가 이미 어른인 걸 깨달았다.

그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최소 일년에 세 번은 갑작스런 번개가 내리 꽂듯이
엄마, 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플 때가 있다. 그렇게 그리움은 갑자기 찾아왔다 떠나간다.

'살아 계실 때 잘해라'

너무 흔한 말이다.

난 앞으로도 부모가 될 일은 요원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누군가들에게 늘 당부하곤 한다.

건강하라고. 정말 많이 사랑하라고.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가 평생의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난 엄마가 돌아가시기 불과 6개월전에 '엄마가 나보다 오래 살걸'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어버이날 밥 한끼보다 중요한 건 평소에 나누는 한마디 대화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을 쏟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그대신 지금 자녀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그 자녀가 또 자기 자녀를 낳으면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자식이 당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 자리를 비우지 않도록
늘 건강했으면 한다.

울 엄마, 아빠는 저 세상에서 잘 계실 것 같다.
내가 잘 살고 있으니까.
좋아라 하시겠지.
부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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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날려고 함. 그럴수록 더 웃어야지. 가즈아 태그로도 엄청 진지한 얘기가 가능하구낭.

일반 태그로 쓰고 '죄송합니다 반말입니다'라고 다는 것보다 그냥 가즈아로 썼어 ㅎ

나도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면서 댓글을 보니까 진짜 가즈아 태그였네...ㅠ.ㅠㅋㅋ

가즈아의 신기원을 이룬건가 ㅋㅋㅋ

심금울림형 가즈아 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뭔가 큰 일을 해낸 거 같다

이렇게 사람 울리기 있기? ㅠㅠ
요새 툭 치면 왈칵하는 중이라 더하네 엉엉엉

우리 착한 픽형. 울지마. 토닥토닥. ^^

형글 읽으니깐 나도 더 잘해야겠다!! 고마워!

ㅇㅇ 잘해, 일년 365일 어버이날! ㅎ

오우! 너무 멋진 말 ㅎㅎ

찡한 이야기 잘들었다~~~~

힘내~~

부모님한테 다들 잘하길 바라고 썼어. 난 가신지 오래되서 이제 힘빠지고 그러진 않으니까 ㅎㅎ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비슷하다..
어머니는 외삼촌들, 아버지는 삼촌고모친척형들에게 퍼주며 살으셨어...
큰아버지가 일찍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사우디도 갔다오시고 땅도사고, 소도 키우시고,
가게도 차리시고 7남매와 그 자식들도 그 땅에서 나는것을 먹고 자랐지..
그 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께도..;
마을을 위해 엄청 애쓰셨거든...근데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하셨는데도 돌아오는게 없고, 마을분들한테 배신당하시고 그런게 슬프셨는지 술드시면서 그렇게 주정을....
어릴적 이해가 안됬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
아무리 결과가 그렇다고 해도 나도 그렇게 할거같거든..
비록 나한테 물질적으로 돌아온건 없지만...그래도 항상 제1로 존경하는건 어느 위인도 아니고 부모님이었어.

"살아계실때 잘해라"는 말 정말 흔하게 말하지만 지키기 어렵지...

나도 더 잘살고 더 잘해야겠다.
좋은글 고마워~

ㅎㅎ 드랍형하고는 통하는 게 많네. 나도 댓글 고마워. ^^ 잘 살자.

아쏴! 화이팅~

.... 조언 고마워 형

잘하자 잘하자 ㅎ

아론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내가 잘 살고 있으니까.
좋아라 하시겠지."
아론이 잘지내고 있으신거 잘아실꺼야!

ㅇㅇ 울엄마, 아빠도 잘 지내길. ㅎ

아아... 진짜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이 밀려드는군요..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감정이 너무 복잡하네요.... 그래도 잘 살아가고 계신거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네, 전 잘 살고 있습니다. 다 오래전에 지난 이야기라서 가볍게 풀어낼 수 있는 거죠. ^^

그래..ㅠㅠ 살아계실때 잘해야 겠어..ㅠㅠ
반성중...

ㅎㅎ 잘합시다, 잘하자구요 ㅎ

형 잘 읽고 가요.
난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으로 읽었지만

어버이날 밥 한끼보다 중요한 건 평소에 나누는 한마디 대화라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 말을 꼭 명심할께 고마워.

다들 잘하라고 쓴 글이야 ㅎㅎ 힘내! 이제 곧 아빠가 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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