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 현대사" 4 - 제2장 (2/2) 5.16 군사쿠데타

in #kr-history6 years ago

지난 시간에 이어 제2장의 두번째 '5.16 군사쿠데타'이다.

오늘의 포스팅에서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였다.
혹시라도 박정희를 존경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나머지 내용을 읽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나와 반대되는 의견에 대한 글도 상당히 편안하게 읽는 사람이지만
혹시라도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주장을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말씀드리는 것이다.

제2장 4·19와 5·16

: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아래의 나무위키 자료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번 포스팅에 사용한 그림이나 사진들은 아래 링크에서 가져온 것이다.

5.16 군사정변 - 나무위키
https://namu.wiki/w/5.16%20%EA%B5%B0%EC%82%AC%EC%A0%95%EB%B3%80

아직도 5.16을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박정희가 과연 대한민국을 구원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던 '진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구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은 생각보다 매우 '강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구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래와 같이 한번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박정희가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박정희의 '고난'을 기어코 이겨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망쳐놓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 '적'에 해당하는
(잘 모르는 분은 이 '적'이란 단어가 아군 적군의 그 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더라.
이 '적'은 그 '적'이 아니고 누적되어 차곡차곡 쌓인다는 의미의 '적'이다.)
최초의 '적폐'의 시작이 바로 박정희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뻘짓을 이겨내고 정권을 무너뜨린 위대한 국민에게
박정희는 도저히 씻어낼수 없는 좌절을 안겨준 것이다.

당시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서 박정희를 찬양했을 것이다.
그가 굶어가던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해준
영웅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아직 많으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박정희는 '영웅'인가 '반역자'인가?
전두환은 '영웅'인가 '반역자'인가?

성공한 쿠데타 5·16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인 박정희 소장이 3,500여 명의 무장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서울에 들어와 정부청사와 언론기관 등 주요 시설을 점령했다.

언론에 대한 통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4.16의 성공도 언론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당시의 상황을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모든 가정에 TV도 라디오도 사실 없는게 없는 세대이고,
길거리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네트웍에 온라인 되어있는
컴퓨터를 한대씩 들고 다니는 세상이다.

하지만 1961년은 어땠을까?
TV는 커녕 라디오도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다.
많은 무지한 백성들은 라디오나 신문에서 얘기하는 것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의 말을 전달받아
자신의 생각을 규정하고 쇄뇌당하는 그런 수준이었다.

언론기관을 장악해서 무지한 백성을 통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발전한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신문과 방송의 얘기를 전적으로 바보같이 신뢰한다.

그렇다. '바보같이'가 아니라 그냥 '바보'다.
다만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만 모를뿐...

신문과 방송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우리는 진정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조정당하지 않는, 강한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개인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역할'을 해내는 시대,
거대한 장비의 하나의 부품이 아니라
개개인이 하나의 '장비'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시대인 것이다.

1인 미디어 시대, 1인 방송국 시대,
1인 출판사 시대, 1인 제작자 시대,
1인 생산자 시대이다.

반공, 한미동맹, 사회적 부패와 정치적 구악舊惡 일소 등을 열거한 혁명공약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국가 자립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여 기아선상에 방황하는 민생고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4항), 혁명의 과업을 이루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6항)는 것이다. 혁명에 성공하려면 적을 최소화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마치 순수한 애국심에서 거사한 것처럼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정권을 이양하고 본연의 임무에 복귀한다"
이 말보다 더 새빨간 거짓말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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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쿠데타 직후 서울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 소장>

박정희가 진정 어떤 생각을 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실제로 혁명의 과업을 완수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려고 했었을 수도 있다.
그랬던 아니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쿠데타는 결코 혼자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력'이 모여야 하고 '세력'이 함께 이루어내는 일이다.

만약 박정희가 그런 순진한 생각으로 물러났다면
아마도 그 세력 내에서 다른 사람이 박정희의 자리를 대신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는 완전히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의 생리'라는 것이 그러하다.
세력이 한번 권력을 잡게 되면 그 권력의 논리와
연속선 상의 '관성의 힘'이 작동한다.
이때부터 어떤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

국회에서 자신을 보위할 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다음 헌법을 바꾸어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했다. 그런 다음 병영으로 복귀한다는 혁명공약 제6조를 폐기하고 196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제5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시계열적 정당 지도.jpg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역사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EC%9D%98_%EB%B3%B4%EC%88%98%EC%A0%95%EB%8B%B9%EC%9D%98_%EC%97%AD%EC%82%AC

현재의 '자유한국당'이 바로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이 그 뿌리인 것이다.
과거를 단 한번도 반성하지 않았던 그들이다.
아니 오히려 과거를 찬양하고 왜곡하고 철저하게 미화한다.
그들은 권력을 가졌고, 아직 한번도 뺏긴 적이 없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국회의 다수당 등을 잠시 빼앗긴 적이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작고 힘없는 것들이었다.

언론, 재벌, 사학, 종교, 등등... 그들의 권력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
그곳의 권력은 '투표'도 하지 않는다.

이들 권력의 시작은 물론 일제시대,
아니 그 이전의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난 그 시작이 바로 '박정희'라고 생각한다.

모든 곳이 파괴된 바로 그곳에서 새롭게 피어난 '악의 꽃'
그 꽃은 아직도 지지않고 피어서 계속 악취를 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걸어갔던 독재와 장기집권 경로를 그대로 따라 걸었다. 헌법의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하고 1971년 금권·관권을 동원한 부정선거로 제7대 대통령이 되었다. 1972년 10월에는 또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시대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수중에 넣은 다음 대통령 긴급조치를 아홉 번이나 발동해 야당과 비판세력을 목졸랐으며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해 죽이려 했다. 5·16은 단순히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4·19가 만든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4.19는 국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승리를 짖밟아버린 것이 바로 5.16이었다.

이승만의 악행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4.19 혁명을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뒤이어 권좌에 오른 박정희는 결코 이승만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보다 지독해져서 더 진화해서 사람들이
그 악행을 모르게 만들었다는 점만 달랐을뿐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계속 박정희 정권이었다.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의 업적을 교육받았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신화적 성공이라는 이름하에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주입시켰다.
그것이 얼마나 헛소리였는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그따위로 짖밟아 놓은 범죄는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나의 청소년기를 또 다시한번 짖밟아 놓은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4·19가 만든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딱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형수들은 '나는 깡패입니다'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플래카드를 들고 덕수궁에서 출발해 서울 시내 중심가를 행진해야 했다. 야만행위였지만, 헌법과 법률의 절차를 제대로 지키느라 재판 절차를 지지부진하게 끌어가던 장면 정부와 비교하면 당시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한결 속 시원한 응징이었다.

5.16은 당시 국민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 그것은 바로 '복수심'이다.

나는 깡패입니다..jpg

미워하고 증오하고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희열을 준다.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재로 사용되는 것은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어렵다.
원래 노예였던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앞으로 민주주의를 해라 하면 될 것 같지만 절대로 안된다.
당시의 대한민국이 그랬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었다.

21세기 2018년인 지금도 '민주주의'는 어렵다.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자유'라는 말을 덛붙여 놓고 뭔가를 의도하다가
이제는 그 '자유'라는 말을 뺀다니 또 길길이 날뛴다.

지금도 이럴진데 1961년의 대한민국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5.16은 그래서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는 일으켰을 일이었고, 대한민국의 운명이었다.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데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중흥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 또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하나의 역사인물이 이처럼 극단적인 호오好惡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는 복잡하고 상충되는 특성을 가진 사람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커다란 선과 지독한 악을 행했다.

"커다란 선"... 그런건 없다.
유시민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커다란 선"을 행했다 말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놓고, 일 시킨 후에
달콤한 저녁과 휴식을 주면 그것을 '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오로지 '약간 지독한 악'과 '더 지독한 악'을 행사했을 뿐이다.

아내를 밤마다 패는 남편이 있다.
낮에는 아내에게 엄청나게 잘해주지만 밤에는 팬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가정이었는데 돈을 잘 벌어다 준다.

이 남편이 '낮에 잘해주는 행동'은 '선'인가? 절대로 아니다.
돈을 잘 벌어다 주는 것은 '선'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는 그냥 '악'일 뿐이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서 잡아 가두고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범죄자일 뿐이다.

어쩌면 '욕망'이라는 유시민의 분석이 맞을지도 모른다.
밤마다 맞고 살더라도 돈을 잘 벌어다주는 남편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1948년 11월, 박정희 소령은 여수순천반란사건(여순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숙군작업에 걸려들었다. 둘째 형 박상희의 친구이며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였던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그는 알고 있는 모든 남로당 인맥을 털 어놓고 수사에 협조한 끝에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유일하게 풀려났다.

결국 이 일이 계속 그의 마음에 '열등감'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 더 지독하게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고 북한을 적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전쟁의 상처가 물리적으로도 아물지 않았고
정권을 연장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기에 적대한 것이겠지만
난 그 내면에 이 깊은 '열등감'이 존재했을 것이라 판단한다.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유일하게 풀려났다"

image.png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박정희의 남로당 시절에 대한 기록>

그는 또한 극단적인 기회주의자 였다.

박정희/일생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B0%95%EC%A0%95%ED%9D%AC/%EC%9D%BC%EC%83%9D

교사로 재직하던 중, 어린 시절부터 군인에 대한 동경과 한국인 교사 차별 문제, 가족 문제 등의 이유로 1938년 11월, 만주국육군군관학교 1기에 1차로 지원했지만 나이 제한으로 거절당한다. 동료 유증선 선생의 권유로 탈락 재고하기 위해 면도칼로 새끼손가락에 피를 내 '혈서'를 학생시험 용지에 써서 보낸다. (동료선생 유증선의 증언)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박정희 혈서(血書)전문

박정희가 극단적인 기회주의자라는 것은 위 혈서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난 아래의 5.16 당시의 상황에 더 분노가 일어난다.

박정희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장도영을 내세워 장도영의 이름으로 일으켰다. 박정희는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산을 했는데 성공하면 자기가 먹을 생각이었고 실패하면 장도영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어찌 흘러가든 매는 결국 장도영이 다 맞을 것이므로 박정희에게 일절 손해가 없는 장사였던 셈이다.

이보다 더 비열할 수 있을까?

5·16과 관련해 두 사람을 미리 거론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 정치 신인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8년 동안 세 번이나 낙선한 끝에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불과 이틀 후 5·16이 터져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국회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하고 의원직을 잃었다. 또 한 사람은 청년 장교 전두환이다. 5·16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군단 교관이었던 전두환 대위는 5월 17일 육군본부로 무작정 박정희 소장을 찾아가 독대했다. 그런 다음 쿠데타군 실세인 양 육사 교장을 압박하고 생도들을 선동해 쿠데타 지지시위를 벌이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와 김대중, 두 인물을 빼고 현대사를 논할 수는 없다.
김대중은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부터 박정희와 악연을 맺고 있다.

Snap4.jpg
<1961년 5월 18일 5·16쿠데타를 지지하며 가두행진을 벌이는 육사생도들>

싹수가 노랗다고 한다.
바로 '전두환'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박정희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도 상당한 '기회주의자'라 할수 있다.
박정희의 후계자로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순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폭력으로 권력을 탈취했지만 폭력으로만 통치하지는 않았다. 자발적으로 추종하거나 지지한 국민도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결코 고결한 인간은 아니었으나 독재자로서는 크게 성공한 것이다.

"자발적으로 추종하거나 지지한 국민"... 엄청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사람들은 박정희를 원했고, 사랑했다.

그의 죽음에 진정으로 눈물을 흘렸으며, 나라를 걱정했다.
잔인한 독재자의 죽음에 그렇게 슬퍼한 국민들도 없었을 것이다.

유시민은 당시를 살아온 국민들의 그 사랑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사랑"이라 표현했지만
난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고 사랑했다 생각한다.
또한 그의 딸도 똑같이 사랑했을 것이다.

그들은 몰랐고, 사랑할 대상이 그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거대한 독재자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그 권력의 짜투리를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그 구조 속에서 '행복'을 느꼈던 것이리라.

4·19와 5·16 둘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 4·19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5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점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5.16은 성공이 아니다. 철저한 실패이다.
아니 앞으로 더 철저하게 실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5.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열한 거짓말이다.
똑같이 전두환이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비열한 거짓말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진보, 보수의 입장의 차이가 아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들의 공은 공이 아니다. 그 공마저도 과다.

공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만일 그들이 아니었으면 2배, 10배가 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이 딱 그만큼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한들 그 누가 반박할 수 있는가?

그들이 죽인 많은 숭고한 시민들 중에 위대한 과학자가 되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50년 앞당겨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을텐데
그들이 막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억지인가?

박정희의 딸이 드디어 그 구세대의 징글징글한 악마를 무찔렀다.
역사의 아이러니 중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었을까?

2017년 5월 9일은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서 진정한 첫발을 내딛었던 날이다.
문재인이라는 개인의 승리가 아니다.
국민의 승리고, 국민의 힘이고, 국민의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에 대한 외침이 비로소 그날 완성되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결단코 '시작'이다. 결코 '완성'이 아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하에 진행되는 많은 것들이
일회성으로 아니 5년의 기간동안만, 아니 10년, 20년동안 계속되어도
이것은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실제의 사람의 목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후예들이 계속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전두환 등의 개인에 대한 증오가 아니다.
바로 우리 역사에 대한 증오인 것이고
우리가 바꾸어갈 우리의 역사에 대한 뜨거운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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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언젠가 이런 포스팅 해보고 싶었는데 큰일날뻔 했네요. 이렇게 잘하는 분이 계시다니..

너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뜨거운 글입니다! 요호님은 참 역사문제까지도 생각하시는게 저랑 비슷한 면이 많아 재밌습니다.

비슷하다니 감사합니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늘 생각합니다. ㅠㅠ


@yhoh님께 돌려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ㅋㅋㅋ

ㅋㅋ 그렇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정치와 역사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그냥 겉핥기 정도 입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윗세대 많은 분들이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기에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저는 그 말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요호님 말씀처럼 그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들때문에 잃은 것이 너무 많은것 같네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더 큰 발전에 많은 장애들이었죠
이제 하나씩 걷어내야 합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정치나 역사에 대한 자기생각 밝히기가 쉽지 않은데! 멋지게 해나가고 계시네요ㅎㅎ

박정희 시대까지는 그래도 쉬운 편입니다
전두환 시대부터는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ㅠ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게.. 박정희야 그렇다쳐도 박근혜(아무것도 이룬게 없는)가 국회의원, 대통령이 된 거죠.. 전 국회의원 될때부터 얘는 뭐지 했는데.. 문재인을 위해 준비된거였던거 같네요

역시의 아이러니죠
그렇게 만든 대한민국 국민이 위대한 것입니다^^

철저한 실패가 될 수 있게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추적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

박정희 전두환의 탐욕에 희생당한 개인들의 한과 울분을 열거한다면,
이나라 땅을 넘쳐나지 않을까요?
요호님 글에서 그 울분이 느껴지네요 ㅠㅠ

이 증오를 어떻게 풀어갈까요

저는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그들이 아직도 한번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제 속 시원할건 대수가 아니고요

심지어 그들에게 당한 분들의 울분을 풀어드리는 문제보다도 더 큰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체증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암덩어리를 안고 뛰려하니 뒷발질이 나무 힘든것이지요

모름지기 기자나 정치의 명함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며칠전 읽어보고 박수보낸,
주진우 기자처럼
자기 자리에서 [역사에 대한 뜨거운 '임무']를 수행했으면하고 기대해 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글이네요
응원드리고 리스팀합니다.

응원 리스팀 감사합니다 ^^
저도 제 나름의 역사의 뜨거운 임무를 해나가려 노력 중입니다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한걸음씩 가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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