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에게 보낸 편지 (카카오 스토리 오마쥬)

in #kr-life6 years ago

안녕하세요. @banguri 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동해에 조그마한 읍 입니다.
그래도 티비에 몇 번이나 나와서 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남 서방 처가라고 알려진 후포리에 살고 있습니다. 이 곳이 홍게 잡이 배들이 동해에서 제일 많고, 그리고 홍게,대게 수매와 경매량이 동해 지역에서 제일 많이 하는 동네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데리고 외식이라고 할만 한 곳은 짜장면 집이나, 고깃 집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거의 홍게 파는 곳 뿐입니다.

후포 주민은 8000~90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읍 입니다. 그나마 홍게 때문에 관광객도 많이 오고, 바닷가 동네 특징상 돈이 많이 도는 동네라서 그냥 저냥 살만한 곳 입니다. 바다도 5분 거리라 산책 하기도 좋고요...

그런데 거의 모든 읍 지역이 그렇지만 제일 큰 문제가 아이들 교육 문제 입니다. 고등학교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학생도 한 학년이 70~80 명 정도이니 정말 작은 학교 입니다.

지금은 대학이 수시로 거의 가는 시대라서 굳이 공부 하러 집을 떠나서 도시 지역으로 거의 가지 않는 분위기지만 제 큰 아이 같은 경우에만 해도 고등학교를 가까운 포항이나 경주 지역으로 많이 갔습니다. 그러다가 포항이 평준화가 되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경주에 있는 경주 고등학교 였습니다.

그래서 2013년도 지금 군에 있는 큰 아이가 경주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입학식 하루 전날,진학을 같이 하게 된 아이 부모 가족들과 저희 집 가족들이 경주 고등학교에 기숙사에 짐을 옮기러 갔습니다. 기숙사라는 곳이 정말 처참 그 자체였습니다. 방 하나에 2층 침대 2개와 책상은 2개씩 맞붙어 있는 총 4명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상 의자를 뒤로 빼면 바로 침대에 붙어 버려서 앉아 있는 공간은 아예 없었습니다. 아이를 두고 오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고등학생 해봐야 나이 17살이고 그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집에 같이 있게 된 기간은 모두 합쳐도 몇 달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군에 있으니 말입니다. 도시에 함께 사는 부모들과 저는 많이 다르게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옆에 아이가 있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공부방을 해서 아이를 제가 직접 가르쳤지만 고등학교는 떨어져 있으니 따로 가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이러니 저러니 묻고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고, 아침에 학교 가면 자습 마치고 12시 넘어 버리고 전화도 마음 데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거의 2주에 한 번 집에 오는 날이면 피곤에 지쳐 있는 아이라서 그냥 푹 자고 게임이나 실컷 하게 가도록 지켜 보는 수 밖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소통 하고 싶어서 생각한 것이 카카오 스토리에 매일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입학하고 부터 3학년 중반 까지 거의 매일 일기 형식의 편지를 썼습니다. 제 일상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가족들끼리 일어난 이야기...

주말에 공부방 아이들과 시험 때문에 같이 공부하고 가르치다가 우연히 컴퓨터로 카카오 스토리가 잘 있나 해서 들어가 봤더니 그 일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한 번 올려 봅니다. 나중에 아이와 같이 웃으면서 이야기 한 번 해봐야 겠습니다.

2014년 3월 13일 오후 11:48

아들아!
이제 고2 생활 적응했냐?
장난이 아닐거라고 느낄거다.
이제 정말 진정한 고등학생의 생활이고, 공부다.

작년까지 즉 중학교 3년 고1은 말 그대로 연습 이었던거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연습이 아니라,바로 실전이다.
아차하면 한방에 실신 해서 다시는 일어나지못한다.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고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실수를 줄이도록 노력하여라.

계획 없이 닥치는데로 가다가는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된다.
아빠가 늘 그러지...
공부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굳이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만 공부 한답시고 티만 낸다던지 ,척 하면 당장 그만두라고.

공부 할려면 자신이 할 수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 고2 는 결과가 좋지 못하면 과정을 인정해줄 수가 없는 시기다.
아빠도 그동안은 결과에 머라 안 했지만 이제는 결과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족한 것을 메꿔나가고 다시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자.

아들아!
늘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우리 집에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아들이 왔는데 아빠랑 엄마가 그만큼 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남은 시간 마무리 잘하고
후회하지 않는 하루가 되었기를 바라고 내일도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래본다.

잘자라
사랑한다 큰아들...
우리집에 니가 태어나서 너무나 고맙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이런 시절이 있었나 싶고요.
큰 아이가 또 추석이 지나면 휴가를 나온다고 합니다. 군에 간 지도 얼마 안된 듯 한데 반년 정도 남았네요. 저는 아직도 대학 다니던 시절 마음 그대로 인데, 세월은 빨라서 머리도 하얗게 변하고 주름은 조금씩 늘었네요.

오늘도 스티미언 분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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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내내 기숙사에 있었던지라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네요.
나중에 아들분이 편지를 본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그러신가요?
공감이 많이 가시겠네요.
부모님께 잘 해드리세요.

ㅋㅅㅋ 님은 꼭 우리 큰 아이 같습니다. ^^

방구리님 대구에 사시는지 알았는데
동해에 사시는 군요? ㅎㅎ
만약 후포리에 놀러 간다면
공부방을 찾아봐야겠네요~ ㅎㅎ

소맥 좋아합니다. ^^

아빠의 편지에저는 눈물을 글썽...주르륵 했네요^^
저렇게 매일 써주시니 덜 외로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미별님. ^^
고등학교 생활이 참 힘이 듭니다. 저도 공부방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있어서 더 잘 알았네요.

도움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오래 일기 썼습니다.

멀리 떨어졌지만 일기 써주시는..진짜 좋은 아버지시네요..근데 사회생활하다보니 애들 시험기간이 와닿지가 않았는데 저번 포스팅에 시험 준비 하신다는거 보고 벌써 2학기 중간고사인가? 싶더라고요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 ㅠ

나이가 들수록 더 빨라지는 느낌입니다. ^6

우리나라에 후포리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ㅎㅎ
카스에 아들에게 보내는 일기형식의 편지라니... 대단하시네요!
한편의 일기에서도 부정이 잘 느껴지네요!!

그런가요?
아시는 분들이 더 많은가요? ㅋㅋ

대단한 일이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한 일입니다.

멋진 아버님이십니다.
흐응....

럭키님은 멋진 엄마 이시잔아요.
참 스팀잇을 이끌고 계시는 큰 누님 이시기도 하고요. ^^

전 오글거려서 편지는 못 쓸것 같아요.
기숙사 학교 보내봐야 알까요.. ^^;;

가까이 있는데,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죠. ㅋㅋ
때로는 말로써 하기 힘들 때 편지나 문자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찡한데요. 큰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겁니다. 젊음은 다 갔지만 황혼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ㅎㅎ

감사합니다. 황혼을 즐길 준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남 서방 처가

라고 하셔서 뭔가 전래동화나 위인 중에 한 사람이 '남서방'인 줄 알았어요.
후포리를 찾아보니 나오네요^_^;;;;;;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아버지, 방구리님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 보는 동안 마음이 찡합니다.
그 아이가 벌써 훌쩍 자라 군대에 있다니 세월이 새삼스러워요.

한 때 유명 했습니다. 저도 가 보지를 못했지만 관광 명소가 되어있습니다. 남서방집이라고...ㅋㅋ

도담이와 랄라도 키워보면 늘 안타까울 테니 미리 다 해 놓으세요. ^^

전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에 기숙사생활을 했는데 기숙사생활을 하다보니 부모의 고마움을 알겠더라구요. 떨어져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 마음은 몰라도 부모 마음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살다 보면 부모 마음 아는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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