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生老病)

in #kr-life6 years ago

생로병사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자연이다. 이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생로병사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밝게 사는 것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죽음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통해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 지를 알게 되고, 유한한 인생을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는 데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산다면, 오늘을 충실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라는 사실을 알지만,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런데 내가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뚜렷해지고, 지금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된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원하기도 한다. 삶이 행복하게 느낄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이 고통스러울 때에는 죽음을 바라는 것이 그것이다. 터키의 모든 부, 명예와 권력의 영광을 누렸던 한 황제가 유언으로 남긴 말 '관을 덮을 때, 내 두 손을 내놓고 덮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죽음에 직면하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을 헛되게 살았다는 자책과 후사들에 대한 진심 어린 경책이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이러니 하게도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열어준다. 죽음이 있기에 오늘이 소중하고 다른 생명들이 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일 죽는다면,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답해 보라. 그러니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명언이 생긴 것이다. 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을 위축시키고 불행하게 한다. 즉 삶에 대한 집착이 삶을 갉아먹는 것이다. 가령,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 갈팡질팡하여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날조차 괴로움으로 채우는 것이 그것이다. 같은 판정을 받았더라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남은 날들을 행복으로 채우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인간은 어차피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로 집행을 유예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짧더라도 의미 있고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무지에서 온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죽음에 대한 여러 입장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많은 종교에서 주장하는 바,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는 마약과도 같은 것으로 현세에서의 가난과 불행을 오직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내세의 평안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종일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에피쿠로스의 지혜의 말씀 즉‘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고,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말씀이지만, 별로 위안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석가의 생사관(生觀)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즉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다만 변할 뿐이라는 제행무상(行無常)의
생사관이다. 삶은 고해(苦)이고,
죽음은 해탈이고, 열반이라는 것이다. 또한 죽음은 필연이고, 죽을 때는 혼자 죽는 것으로, 돈도 가족도 친구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죽음에 대한 마음 챙김과 수행만이 도움이 됨을 역설한다. 죽음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 지금 당장 수행해야 죽음에 대해 든든한 대비가 되고, 항상 의미 있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장자의 생사관하고도 통한다. 모든 것이 혼돈 속에 뒤섞여 있다가 변화해 생명이라는 형체가 생기고, 그 형체가 다시 변화해 죽음으로 돌아 갔다는 것이다.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 편히 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죽음을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은 평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질량, 에너지 보존의 물리 법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생사관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과정을 보자. 물리를 모르는 아이는 '얼음이 없어졌네'하며 슬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리를 아는 사람은 다만 얼음이 없어진 것이 아닌 물의 상태가 변한 것임을 안다. 실제로 인간의 죽음 또한 육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해체 또는 변형일 뿐이다. 자동차가 폐차되어 부품으로 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제행무상의 진리에서 파생된 '나라 할 것이 없다'는 무아(無我)의 진리 또한 죽음이 두려움의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수정란에서 태아, 유아, 청년,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 까지 무엇으로도 나를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생로병사는 우주라는 바다에서 한 파도가 일어났다 사라짐으로 비유될 수 있다. 수 없는 파도가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물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존재는 우주의 일부이자, 전체로 불생불멸하는 것이다. 파도의 삶은 파도가 일어나서 스러질 때까지 이듯이,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다. 그러니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잘 죽는 것은 자살도 약물이나 기계에 의한 연명도 아닌 자연스레 죽는 것이다. 또한 잘 죽는 것은 한 생명으로서 모든 생명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비유하면, 자연이라는 숲의 나무처럼 살아서는 동물에게 열매, 잎, 공기나 그늘 등을 제공하고, 죽으면 다시 다른 생명의 먹이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나무는 다른 존재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해서 살아 열매나, 그늘이나 깨끗한 공기를 제공하고, 죽어서는 목재나 땔감이나 거름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도 누굴 위해 산다기 보다, 나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다 죽으면 그것이 다른 생물들을 이롭게 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육체와 위치가 나라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자타의 분별이 생기며, 선악과 시비 등의 분별이 생기는 것이다. 그 중 죽음이 나쁘다는 생각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생각을 비우고 하나로 돌아갈 때, 선악이 어디에 있으며 행과 불행이 어디에 있겠는가?! 죽음이 있기에 유한한 삶이 더욱 값진 것이고, 공수래공수거의 삶에서 한바탕 신명 나게 놀다 가는 것이 인간의 유일한 의무이자 행복의 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인간의 불멸은 부처님처럼 주위 사람들부터 행복하게 하는 것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달리고, 겨울에 잎이 떨어져야 나무가 얼어 죽지 않고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인간도 때가 되면 죽어야 후손이 살 수 있고, 다른 많은 생명들이 살아 자연이 장구하게 유지되는 것임을 안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자는 대종사 편에 ‘대지는 나에게 형체를 주어 삶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써 편안함을 주었으며, 죽음으로써 나를 쉬게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태어남이 좋은 것도 아니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니, 생로병사의 자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현재를 밝게 살라고 당부하는 말이다. 늙음에 슬퍼하고, 젊음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이다. 오히려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하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평화로운 존재가 되어야 늙음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더욱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병은 대부분 어리석은 마음에서 생긴다. 어리석은 마음의 분노가 화병을 만들고, 이성에 집착하는 마음이 상사병을 만들고, 식탐이 비만 등의 성인병을 야기하고, 쾌락을 탐하는 마음이 피로를 가져와 간과 콩팥 부전 등의 병을 야기하고,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는 마음이 스트레스나 사고를 유발하여, 암과 같은 병에 걸리게 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병은 어리석은 마음의 소치이니, 밖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과보로 받아들이고 반성하여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개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고치기 힘든 병이라면, 친구나 스승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병을 호전시키고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병중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지 않고, 병을 빨리 고치려 서두른다면, 무리한 처방으로 병을 악화시키거나 쉽게 자포자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사는 비법은 마음의 평화이다. 마음에 스트레스가 있으면, 모든 영양과 산소 등이 머리에 집중되고, 혈관이 좁아져 혈관이 막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또한 머리 외의 몸의 세포들에 영양과 산소가 부족해져서 세포가 고사하거나 건강하게 자라기 어려우니, 몸에 병이 생기기 쉬운 것이다. 마음이 스트레스 없이 평화로우면, 혈관이 넓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면 영양과 산소가 모든 세포에 원활히 공급되니, 모든 세포들이 크고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시각과 청각 등의 감각과 두뇌가 좋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건강해지고 명석해지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현재에 마음을 오롯이 머무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좋다. 현재에 마음을 오롯이 머무는 연습은 명상을 통해 할 수 있고, 선악의 분별을 비워 일희일비하지 않는 명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 궁극인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다른 존재들 즉 식물이나 동물들의 죽음으로 가능하다. 그러니 자연에 감사하며, 나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다른 존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죽어서도 다른 존재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생로병사의 자연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밝게 사는 것이 건강의 길이자,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행복하게 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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