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친구끼리 표현 안 해도 다 알아주길 바라는 거, 나만 느끼는 거였나 보다.

in #kr-pe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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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만큼 모아서 이따만큼 해줄 때까지를, 그러면 이따만큼 좋아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딸과 아들은 삼촌을 몰라봤다. '삼촌, 알아?'해도 아빠, 엄마 뒤로 숨었다. 자주 보는 또 다른 친구와는 대화를 이어가는데, 부러우면서도 부러워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무심했나 보다.

엊그제는 대학 친구들이 뜬금없이 홍대로 불러내는데, 거절하지 못했다. 나는 누구에게 먼저 연락하는 성격이 아니다. 연락이 오면, 그 전제를 넘어서는 관계가 아니면, 거의 모든 내가 정말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이상, 다 나가는 편이다.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엊그제는 결국 집에 오면서 왜 나왔나 후회했지만 말이다.

나는 먼 약속은 확답을 하지 않는다. 내가 지키지 못 할 약속도 하지 않는다. 오늘 다시 친구에게 얘기 했다. 너가 소개해준 니 친구 가족과 너 가족과 언젠가는 같이 또 밥을 먹자고. 친구 아이들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몰라봤다. 자주 보는 또 다른 모임의 내 친구의 친구는 아이들과 코드를 맞춰주며 잘 놀아주었다. 나는 그러지도 못했다.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은 뜬금없이, 기분 좋게 운이 잘 맞은 만남이었다.

아이들의 아빠, 내 친구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핸드폰 번호를 외울 만큼의 애정이 있는 친구다. 지금도 처음 사귄 여친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기억나지만, 그 친구 번호는, 016-000-0000이 다 기억난다. 왜 그럴까. 내 마음이 그렇기에 친구는 나에게 섭섭함을 요즘 들어 표현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나는 섭섭했다. 우리가 그런 사이냐고. 내 마음, 너 다 알지 않냐고. 그게 아니라고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나는 이해하질 못 했다. 근데 오늘 친구가 이룬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식사를 처음하고 느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너, 너무 빨리 결혼했어 인마'라고 느꼈는데, 아니었다. 너는 가정이 있으니 연락을 못 했다는 것도, 친구의 와이프에게는 통하지 않을 이야기였다. 나를 만나고 들어간다면 늦게 들어가도 매 번 이해해주었다.

어릴 때 과자 선물 세트 사준 아빠 친구를 기억한다.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빠도 사주지 않는 그 선물을 사주신 아버지 친구분의 얼굴이, 친구의 딸과 아들, 조카들을 보며 갑작스럽게 어린 나의 그때 기분이 떠올랐다. 이따만큼 해주려고 했는데.

친구가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서며 먼저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그때 알아차렸다. 이따 만큼 모으려다, 애들의 어릴 적 기억에 삼촌은 없겠구나, 그 것을 친구가 섭섭해했다는 것을.

집에 와서,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고, 친구 와이프에게 연락했다. '누나, 오늘 잘 먹었습니다.' '오늘 너무 좋았지?'라는 대답이 왔다. 오늘 본 또 다른 친구들의 모임은 자주 보는데, 그 와는 다른 내가 포함 한 우리 친구들은 너무 무심했나 보다, 내가 무심했나 보다, 생각했다. 누나는 속으로는 섭섭했겠지만,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고, 언제든 밥 먹으러 와, 하며 답장을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구 놈이 둘째 학교 갈 때, 내가 뭐 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밥 먹으면서 꺼냈다. 내가 친구와 했던 이야기였다. 그거 못해줘도, 이해 다 해줄 친군데. 오늘 내가 친구 아이들을 대리고 편의점에서 아이들 과자 사주는 걸 밖에서 지켜보며 친구는 너무 좋아했다. 근데, 누나 옆에서 뭐 든 거에요? 비싼 과자 같은데...다 사줬을 텐데.


가족들끼리도 표현 안 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았다. 처남이 해외 출장 갔다고 근처에 사는 동생이 오늘 집에 왔다. 내가 너무 늦게 들어왔나, 거실에서 엄마랑 자던 동생이 방으로 들어가서 자나보다. 동생이 시집가기 전에, 실감이 나기 시작하니, 술 먹고 들어와서는 전에 없던 대화를 자주 했다. 오빠가 전에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니 동생도 술 취한 오빠를 전과는 다르게 많이 받아줬었다.

표현을 그렇게 못 했는데, 30여 년을 산 동생은 알아줬을까, 내가 알아주기를 바란 걸까. 20여 년을 만난 동생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한 내가 친구에게 바란 그 마음과 심보는 나만의 것이었다. 가족이니까, 괜찮아. 친구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은 나만의 욕심이었다.

이제야 그걸 느끼다니.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본 삼촌을 기억 하지 못 하는 걸 섭섭해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아이들의 시간과 어른인 나의 시간과는 속도가 다름을, 그때 과자 선물 세트를 받던 어린 나와, 오늘 본 조카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그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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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고맙습니다 : )

비슷한 성격이네요. 저도 그러거든요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이거 초코파이 한테 우리가 다 속은거에요 ㅎㅎ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말해보세용~

정에 여태 서로 속고 살았나봐요 ㅎㅎㅎ
조금씩 노력해보겠습니다 : )

전 아끼는 친구 딸래미가 있는데.. 거의 매달 보는데도 보면 모른척해요..흑흑..제 인상때문인지..
표현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무엇보다 저도 표현받고 싶어하고 받으면 좋아하니.ㅎㅎ

저도 인상때문이라면 다행인데...ㅎㅎㅎ아무래도 기억이 잘 않나서 정말 몰라보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보다는 자주 찾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ㅎ

표현하지 않으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더이다. 그게 내 잘못인줄 알게 되어도 사실 잘 바뀌지도 않구요.

저도 매 번 느끼는 거였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더라구요.
억지로라도 버릇을 들여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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