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이 뭘까?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오늘 오전에 병원에서 세 시간 동안 심리평가 한 사례하고, 오후에는 자리를 옮겨 경기도 어딘가에서 두 내담자를 상담했습니다. 하루 종일 다른 사람 얘기를 주의 깊게 듣느라 바쁜 하루였습니다. 남의 얘기를 주로 듣는 직업이다 보니 제 생각을 글로서 가감 없이 표현할 때 큰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특정 주제를 정하지 않은 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즐겁게 써내려간 글입니다. 한글 문서로 7장이네요. 스압 주의하시고요.

스팀잇은 금전적 보상도 보상이지만 티스토리 블로그와 달리 덧글도 많이 달리고 읽어주시는 몇몇 분들이 계셔서 글 쓸 맛이 나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ㅎ

타이틀은 임상‘심리전문가’인데 왜 다시 심리상담을 배우려 하나?

저는 명색이 임상심리전문가라는 타이틀로 밥벌어 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심리상담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자격 취득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채우고 상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담을 더 하고 싶었다 한들,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 있는 사람이 병원 장면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을 진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소한 제가 있던 병원은 그랬습니다. 병원장 입장에서는 임상심리전문가나 전문가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 코스를 밟고 있는 사람이 심리치료나 상담을 하기보다 심리평가를 많이 해주기를 원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이유를 굳이 여기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트레이닝 받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몇백 명의 사람을 심리평가합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숨쉬기처럼 하는 일이 심리평가이다 보니 정신병리의 실제나 심리검사 등에 대해서는 전문가로서의 최소한의 기반을 다져 나올 수 있습니다. 나와서도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게 이 직업의 숙명이긴 하지만, 어떤 정신과 환자가 왔을 때 이 사람을 어떤 진단적 범주로 분류해야 하며 그렇게 분류하게 된 근거가 무엇인지 비교적 능숙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죠.

심리평가는 정말 많이 하지만 상대적으로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트레이닝 받을 때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 중 상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었고, 이웃사촌격인 상담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과 비교해 보면 그 극명한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전문가 취득 후 저의 첫 직장은 아동 심리치료 기관이었습니다. 딱 1년을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만 두었습니다. 기관장이 XX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상담이나 심리치료의 실제에 대한 이해가 제게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임상심리 대학원에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배우지만,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가르치는 지도교수 역시 상담자나 치료자라기보다 연구자에 가깝기 때문에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렵습니다. 교수가 치료를 하더라도 연구나 교수자로서의 학생 지도, 외부 강연 등에 비해 그 비중이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고요. 저희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도 대동소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움의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외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있는 심리학과의 대학원은 말 그대로 연구를 배우는 곳이지 심리상담이나 치료를 배우는 곳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원 졸업 후 임상심리전문가 트레이닝 과정, 즉 실전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전문가가 되기 위한 최소 요건이 1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10명을 상담해야 합니다. 한 명당 3회기 이상은 진행이 돼야 하고요. 다른 셋팅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있던 병원에서는 개인 심리치료 기회가 한두 번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제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무산돼버렸습니다. 최소 자격 요건인 개인상담 10명을 채우는 것이 병원 안에서는 여러모로 어려워서, 제가 졸업한 대학교 내 학생상담센터까지 한 시간이나 달려가야 했습니다. 10명을 채울 때까지 매주 한 번 왕복 두 시간을 오갔죠. 상담을 더 하고 싶었지만 병원일이 너무 많아서 불가능했습니다.

상담 및 심리치료자로서의 첫걸음과 좌절 경험

모르는 것을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그것을 해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연애를 잘 모른다면 연애를 많이 해보면 됩니다. 춤을 잘 못 춘다면 춤을 많이 춰보면 되겠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강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트레이닝 과정에 상담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 전문가 취득 후에라도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하는 셋팅에서 일해 전문성을 강화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아동 심리치료 셋팅을 첫 직장으로 잡았으나 그야말로 호된 좌절감과 우울감을 느끼며 1년 채우고 자발적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치료한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댓가였습니다.

첫 직장을 그만 둔 게 작년 여름이고, 지금은 다시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정신과는 제 임상경력의 고향인 만큼 되돌아왔을 때 너무나 편했습니다. 문재인 캐어의 일환으로 신경인지장애를 평가하는 검사가 급여화되면서(즉 보험처리가 되면서) 들어가자마자 신경인지장애 검사 폭탄을 맞게 됐지만, 그래도 최소한 일하면서 빈번하게 좌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일한 지 반 년이 지난 지금은 전문가로서의 유능감도 어느 정도 회복했고요.

재도전

다시 기운을 차린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상담 활동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상담 및 심리치료자로서 좌절을 경험했지만 치료대상이 아동이었던 데 기인하는 바도 없지 않다고 느껴서 대상을 바꿨습니다. 청소년으로. 아동 심리치료가 청소년 상담보다 어려워서일까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내담자의 연령이 하나의 변수가 될 수야 있겠지만 연령보다는 내담자 각각이 지닌 차이가 더 영향력 있는 변수겠죠. 다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상담자마다 다를 것인데 최소한 저는 아동 치료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쪽짜리 전문가가 되지 않기 위해 치료의 대상을 바꿔 상담자로서 활동하고 있고 고참 상담자로부터 지도감독도 받고 상담 관련 북리딩도 다른 임상심리전문가들과 병행하고 있습니다.

상담이란 무엇일까? 초보상담자가 생각하는 상담의 한 가지 주요 특성: 비판단적 경청

상담이라는 단어가 일상에서도 워낙에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다 보니 치료 장면에서 이 단어가 갖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감이 있습니다. 또래상담, 고객상담, 유학상담 등등 도처에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담과 치료 장면에서의 상담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수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 중 하나가 비판단적으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는다는 것도 어려운데 판단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 머릿속으로는 '집에 가서 뭐 먹을까?', '스팀잇에 무슨 글 올리지??' 등등의 딴 생각을 할 때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 하더라도 자기중심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말에 반응하기란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누군가가 '나 요즘 ~ 때문에 너무 우울해'라고 말했을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보통은 '나도 그런 적 있는데 시간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초점을 자기에게로 돌리기), '술이나 한잔 하자'(회피하기), 혹은 극단적으로는 '너만 힘든 거 아냐'(부정) 등등의 반응을 하게 돼 있습니다. 내용은 약간 다르더라도 이러한 범주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정하는 것만 판단적일까요? 저 예시에서 초점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도 일종의 판단입니다. 자기 경험에 비추어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죠. 회피하기는 어떨까요? 술이나 한잔 하자라는 말의 이면에는 그 얘기를 지금 여기서 너와 진지하게 나눌 여력은 없다 라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습니다. 이 역시 판단이죠. 상대방의 얘기가 '지금 여기서 귀담아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내용'일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회피하는 사람의 선의의 측면을 생각해 본다면, '술 한잔 하면서 니 얘기 자세히 들어보자'일텐데, 하물며 맨정신으로도 상대방 얘기를 귀담아 듣기 어려운데 술이 들어가면 어떨까요..

사고 및 감정 표현 촉진의 장으로서의 상담

요즘 읽고 있는 상담의 기술(3판, 주은선 역)이란 책에 보면 "Laing과 Esterson(1970)은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 경험이 정당화될 때 '흥분의 감정을 멈춘다'라고 언급했다."(184쪽)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어서 고조되었던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의 경험을 회상해 보세요. 상대방이 내 얘기를 어떻게 들어주었던가요? 많은 말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들어주거나 '많이 속상했겠다' 정도로 간결하게 감정을 반영해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솔직하게 내가 경험했던 바를 표현할 수 있게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많으신가요? 많다면 정말 복 받으신 분입니다. 슬프게도 저런 경험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드문 경험일 것입니다. 자기중심성, 즉 자기 생각의 틀을 잠시 거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의 틀로 들어가 본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적 배움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호작용 상황에서 비판단적으로 누군가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은 그 자체로 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 장면에서의 상담은 비판단적으로 내담자의 얘기를 들으며 내담자가 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돕는 촉진적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담 초보자인 제가 생각하는 상담의 일부 모습입니다.(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상담자는 조언을 해주거나 문제해결을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의 험난한 여정을 통과하고 있는 내담자가 고민과 탐색과 실행을 거듭할 수 있게 촉진하는 촉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내담자 안에 있고, 그 열쇠가 뭔지 상담자뿐만 아니라 내담자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내담자가 그것을 찾으려 애쓰고 발견해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임상적 접근과 상담적 접근의 차이

많은 상담자가 상담 과정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내담자에게 해결 방법을 제공하는 의학적 모델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상담자의 임무는 내담자 자신의 해법을 이끌어 내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세부사항을 알 필요는 거의 없다 - 상담의 기술, 224쪽.

정신과 장면에서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증상에 관한 정보를 끌어모으는 동시에 끊임없는 핀단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정신과 의사가 몇몇 진단적 인상을 지닌 채 심리평가를 의뢰하게 되면 임상심리전문가는 환자의 증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면담 및 심리검사라는 심리평가의 과정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 작업에는 수많은 판단적 요소가 개입됩니다.

제가 아동 심리치료에 처참히 실패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서 이러한 진단적(혹은 판단적) 프레임이 제 안에 너무나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판단은 의학적 평가나 개입에는 분명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상담이나 심리치료 장면에서는 치료효과를 저해할 때가 많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상담에서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내담자가 당장 죽겠다고 하는데 비판단적 태도를 유지하기란 어렵겠죠. 이럴 때는 내담자의 상태를 판단하여 즉각적으로 개입하여야 합니다. 꼭 이렇게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담자가 치료비를 계속 미루거나 안 낸다면 더이상 상담을 진행할 수 없다, 즉 당신의 그런 행동은 더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상담자의 판단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비판단적 태도가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판단을 아예 안 한다는 얘기는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비판단적 경청을 통한 결과: 응어리진 사고나 감정의 김빼기를 통한 인식 지평의 확장

비록 우리가 상담자로서 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각보다는 내담자의 경험에 몰입하여 내담자와 공감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 상담의 기술, 185쪽.

자신이 지닌 사고 프레임을 잠시 거두어 놓고 최대한 내담자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력, 즉 비판단적으로 내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반영해주는 것은 상담자로부터 이해받고 있고 상담자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만듭니다. 상담자로부터 이런 느낌을 받게 되면 억눌려 있던 더 깊은 내 안의 생각이나 감정을 발굴할 수 있게 됩니다. 깊은 웅덩이 속에 고여 있던 생각이나 감정이 발굴되어 내담자의 입을 통해 상담자에게로 흐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전 직장에서 동료들이 했던 아동 대상의 놀이치료를 보면, 아이들은 생기가 돌고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이들은 치료적인 변화가 있는지 여부를 비교적 쉽게 지각할 수 있는 듯합니다. 성인 내담자의 경우에도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효과적이었다면 비슷한 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아직 그런 내담자를 경험해 보지 못 해서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운 감이 있네요.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심리치료가 효과적이려면 상담자의 비판단적 경청에 의해 스스로가 이해받고 있고 지지되고 있음을 느끼며 사고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김빼기'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빼기가 왜 중요할까요?

발사대에 놓여 있는 로켓이 마치 내담자 같다는 공상을 해보게 됩니다. 로켓은 연료를 태워 추진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서는 지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로켓이 발사될 때와 같이 가슴 속에 응어리처럼 꽉 차 있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내담자도 지구라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죠. 시야의 지평이 확장되고 다른 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거나 느낄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야를 확보한 상태에서 다시 지구라고 하는 자신의 사고 프레임으로 안착하였을 때 그 사고 프레임으로 보는 세상은 같은 프레임으로 바라보던 이전 세상과 확연하게 다른 어떤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한 번 바라본 사람은 지구에서만 생활하던 사람과 다를 수밖에 없겠죠.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상담을 통해 주어진 틀을 벗어난 대안적 행동의 가능성 찾기

유전적으로 혹은 유년기에 처했던 환경에 의해 혹은 무의식에 의해 인간의 모든 행동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심리치료는 불필요할 뿐입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결정론적 입장에서 그렇게 모든 게 미리 다 결정돼 있고 프로그램돼 있다고 밝혀진다 한들 심리치료가 무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시각을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이나 심리치료 과정은 김빼기의 과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자유의지를 통한 선택의 가능성을 높이는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학문적으로 말하면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를 높임으로써 자기 생각의 안팎을 오가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자유를 향해 내딛기

김을 빼고 인지적 유연성을 향상시켜 대안적 사고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대안적 사고라는 확장된 시야를 가진 채 세상으로 내딛는 과정이 뒤따라야겠죠. 생각만 한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비티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산드라블록이 개고생 끝에 지구로 귀환하여 땅을 내딛는 장면이요. 감정이 활성화되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유연해지고, 유연해진 사고를 바탕으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행동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제가 러프하게 그려본 상담의 과정입니다.

상담의 기술을 쓴 클라라 힐이 말한 것처럼 이 과정은 순차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합니다. 내담자와 상담자의 상호작용에 따른 다양한 변주들이 있게 마련이죠.

어떤 변주가 됐든 간에 최종 목표는 자유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방종과는 거리가 멀죠. 나의 안녕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녕까지 모두 고려하게 되는 경지입니다.

낸시 맥윌리암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심리치료자가 쓴 책 중에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라는 책이 번역돼 있습니다. 이 책에 도나라는 내담자의 치료 사례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돼 있습니다. 도나는 친부에 의한 성추행, 심한 우울증을 지닌 모에 의한 정서적 방임 등 매우 열악한 초기 환경에 노출되어 이미 청소년기에 신경증과 정신병을 오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통해 반복되던 자해를 멈추고 긴 치료가 종결된 후에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비교적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는 단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약물치료에만 의존했다면 이 환자는 정신과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무리했을 것이 뻔합니다. 심리치료를 통해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결정요인’이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자유의지를 통해 자기 삶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됐고, 다른 사람 즉 자식의 행복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는 엄마로서의 삶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내담자 요인, 상담자 요인, 상황적 변수 등등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상담 및 심리치료의 효과가 정말 상담 및 심리치료 때문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낸시 맥윌리암스가 소개한 도나의 사례에서처럼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체로 상담 및 심리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운 연구방법론의 한계를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이 한계를 점점 더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비롯한 제반 학문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겠죠. 이에 어떤 때는 상담자로서 또 어떤 때는 과학자로서 현장과 학제적 공간 양쪽 모두에서 끊임없이 배워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체력은 저질이지만 제게는 이게 의무이자 즐거움입니다. 뛰어난 상담자나 심리치료자는 못 되더라도 노력하면 비교적 괜찮은 치료자(good enough therapist)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ㅎ

에필로그

직업 외적인 면으로 보자면 저는 굉장히 판단적인 사람에 가깝습니다. 감정보다는 사고형이고 비판단보다는 판단형이죠. 고집도 세고요. 주관이 강한 편이라 남의 얘기를 잘 안 듣고 제 의견대로 밀고 갈 때가 많습니다. 꼰대들을 정말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그 꼰대들처럼 인지적으로 유연하지 못 한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리학의 위대한 발견이랄 만한 것 중 하나는 인간은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과 닮아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입니다. 슬프게도. 극과 극은 통한다죠. 제가 직업 외적인 장면에서 유일하게 인지적인 융통성을 최대로 발휘할 때가 마눌과 의견 조율할 때입니다. 강제 융통성 발휘랄까요. ㅎㅎ

제가 이런, 어떻게 보면 쪽팔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상담자라고 해서 일상에서도 상담자 모드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물론 상담자로서 역량을 쌓아나가다 보면 직업과 일상에서의 태도가 일관성을 갖게 되는 경지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도덕적 요구를 누군가 제게 강제할 수는 없죠. 일상에서의 내 행동이 상담자로서의 내 행동과 얼마나 괴리된 것인지 스스로가 외부적 관찰자 시점으로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일상에서의 내 행동을 수정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초보상담자로서 아직까지는 일과 사생활이 명확하게 구분된 편입니다. 친구가 제게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한다면 저는 ‘돈 내’라고 말합니다. 이건 농담이기도 하지만 진담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까지 상담자 노릇을 하긴 싫죠. 저는 인지적으로 다소 경직돼 있고 고집 센 제가 좋습니다. 다른 사람 얘기 잘 안 듣는 제 모습이 좋아요. 그것 또한 제 모습이고 그런 태도로 인해서 삶에서 많은 값진 것을 얻었거든요. 아무튼 밤이 깊었으니 마누라 눈치도 보이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누라 얘기는 잘 들어야 되거든요. 반 강제 + 반 사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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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임상 심리는 좀 더 DSM-5 기반의 다소 통계적인 가이드라인 (그리고 좀 더 명징하게 떨어지는 criteria)의 느낌이고, 상담 심리는 개별자에 대한 기예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제 느낌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홍보해

qrwerq님의 느낌에 저도 공감이 되네요. 임상심리의 중요한 파트인 심리검사를 통한 감별진단 자체가 통계에 많이 빚을 지게 됩니다. 통계 말고도 진단에 필요한 다른 준거 축들이 있지만요. 또.. 상담 역시 심리'학'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수많은 과학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지만 상담 순간의 상담자-내담자 상호작용에서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는바 예술적인 부분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야 모두 과학과 예술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건 공통된 것 같아요~ 홍보 감사드려요.

@slowdive14님 안녕하세요. 아리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본문과는 상관없는 내용인데 만약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상담이나 일체의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유도할 수 있을까요?
현재 상태가 본인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주변은 물론 전문가와의 대화도 거부하고 있고 일체의 치료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녕하세요. 길게 썼다가 지웠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그 분이나 그 분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한데 웹상에서 질의응답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직업이나 학업을 포함하여 평소 해오던 사회생활이 안 되고 있는 수준이라면 그 분의 가족되시는 분이라도 정신과 내원하셔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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