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적 P의 이야기 #08 _ 타인의 세계관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오늘도 산만한 하루를 보냈다.

애매하게 물린 두가지 프로젝트 중 하나는 거의 끝이 났고, 나머지 하나는 추가작업이 남아있는데 영 내키지 않아 마음 한켠에 남겨두면서도 제대로 붙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팟캐스트 2화 준비를 위해 책을 한권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그 카페'를 찾았다.




계획되지 않은 우연


그동안 신상카페들을 부단히도 찾아다닌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심적으로 쉴 수 있는 카페는 '그 카페'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교토감성 물씬 풍기는 그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컨셉을 내세우지 않아 묘하게 편안한 분위기가 감돈다. 책을 읽기 위해 주로 찾는 곳인데, 그곳에 앉아 살롱을 상상하고 열심히 염탐했다. 크고 편리하진 않지만, 작은 편안함이 주는 공간의 경험이 좋았다. 이런 곳이라면 소소하게 모여 자신의 주제를 펼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출근 도장을 찍진 않지만 나름 헐렁한 단골인 나는 우연한 기회에 몇번이고 망설였던 질문을 건냈다.

'혹시 대관같은 것도 하시나요?'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고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사가 계획된 사람만이 부동산의 문을 열고 들어가듯, 아직은 머나먼 일을 괜히 이야기했다가 싱거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진짜 할 때되서 말해도 늦지 않은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남에게 설레발쳐서 좋을게 무어겠나.




서로 다른 세계관의 교차점


스팀잇에 '몽상가적 P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을 때도 똑같이 놀란 부분이지만, 나만 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품고 끙끙댄다고 예상한 것과는 달리 이걸 원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저 이 공간 좀 빌려도 되겠냐고 물어본 후에 이어진 대화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그 카페'의 '그 주인'은 역시 나처럼 또 다른 형태의 플랫폼을 고민하고 있었고 실행하고 싶어했으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형태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비슷한 결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나의 뇌구조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생각의 알고리즘을 타인들은 가지고 있고, 같은 걸 보아도 다르게 느끼고 같은 주제에도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오래 고민을 하다보면 내 안에 확신이 사라지면서 무엇이 맞고 틀릴지에 대해 판단력이 흐려진다. 주저함이 길어질 수록 내 안의 목소리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낡고 헐어진 내 고민은 비슷한 듯 다른 타인의 세계관이 교차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명쾌하게 색을 되찾거나 그대로 소멸된다. 다시 살아나던 소멸되던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일 수는 없다. 덮어지고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에 대한 깨달음일 뿐이다.

그렇게 우연히 지나가던 누군가의 담담한 노크가 언젠가 다가올 나비효과를 예견하며 낡고 낡은 내 알에 금을 내어주는 것이다.




운을 띄운다는 것


완벽해질때까지 품고있는 걸 미덕으로 알았다. 그게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태도라는 착각을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다. 아무도 어설프고 빈 것을 꺼내도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 괜스레 억울하다. 세상은 그러면 안되는 건줄로 알았다. 모두가 헐벗은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줄로만 알았다.

운을 띄운다는 것은 설렘반 두려움반을 지닌다. 전부를 예견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나머지의 완성을 타인이나 우연이나 시간에 맡기는 행동이다. 틀 안에서 바라본 유연함은 그저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스스로 유연해질 준비는 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운을 띄워 여기까지 왔으니, 나에게 이제 운을 띄운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무언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카페는 대관을 할 수 있고, 그 옆 창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누가 쓰게 될지 어떤 용도로 쓰이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번외로 떠들어보는 이야기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운을 띄웠는데, 처음 대화를 나눠보는 사람에게 깨방정을 떠며 스팀잇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가게'의 '그 주인'이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순간 나를 사기꾼으로 의심한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수익'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언어력 부족이다. 요즘의 나에 대해 묻거나 하면 이야기를 안할 수 없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업아닌 영업을 하고 돌아다닌다.

무한도전이 다시 이어주어 10년만에 만난 내 친구도 스팀잇에 가입신청을 했지만, 그 아이는 3주가 넘어가도록 승인을 못받고 있다. 나에게 묻는다. '사람이 하는 일이야? 바쁜가봐..' 글쎄... 나도 그 승인을 기계가 하는지 사람이 하는지 인공지능이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몽상가적 P의 이야기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1 _ P의 의미에 대하여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2 _ 어떤 형태의 시간을 만들것인가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3 _ 영감과 일상, 그 중간 어디쯤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4 _ 연탄재 하나를 툭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5 _ 첫 걸음을 떼는 과정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6 _ 사심과 진심이 뒤섞였던 연구모임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7 _ 첫 녹음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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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연한 만남들이 참 근사해 보입니다. 진짜 뭔가 일어날 듯한(일어나는 듯한!!) 느낌.
저도 여기저기 운 좀 띄우고 다녀야겠어요.
나중에 그 카페 옆 창고에서 피님이 뭔가를 하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헤헤.

이루고 싶은 일은 소문내고다녀야 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거 같아요. 그창고 진짜 제꺼였으면!!ㅎㅎㅎ

이모셔널님의 '그 카페' 궁금해요. 전 늘 가는 동네 카페를 찾는데, 내일은 버스 타고 좀 나가서 저의 '그 카페'에 가야겠어요!

주변에 카페도 없는 주택가 골목길에 홀로 작게 있는 곳이에요. 나무와 식물이 가득한 ㅎㅎ

이제는 가입이 3주나 대기해야하군요. 친구분 지치겠어요.

그러게요. 진짜 누가 승인버튼 안눌러주나...ㅎ

‘그 놈의 설레발.. 쯔쯧’이라고 쓰려다.. 주인에게 결국 말을 꺼냈다는 대목에서 ‘그럼 그렇지 잘했군. 하산해도 되겠소’ 했다는.. ^_^

멀린님, 저의 설레발에 멀린님이 지분갖고 계시잖아요!!ㅋㅋ

P님 지금 뭐하시나요? ㅎㅎ 말 걸고 싶은 밤입니다 ㅎㅎ

필통님...요즘은 필통님도 저도 정신이없어서 많이 소통을 못한것 같네요ㅠㅠ
팟캐올리고있었어요. 필통님이 왜 7-8시간 걸렸다고 하셨는지 알것 같아요. 느무힘든밤입니다 ㅋㅋ

저 자기전에 듣다가 잠들었어요. P 님, 우리 얘기 나눌게 있을것 같아요!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은 일단 스팀챗으로 연락처 남겨 놓을게요!!^_^

주저함이 길어질 수록 내 안의 목소리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역시나 글 한 자, 한 자 모두 좋았지만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아요 :) 무엇을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엇인가 주저하는 것 같았거든요, 제가. 그냥 이 시간을 그럭저럭 별 일없이 보내는 중인지도 모르고요.

운을 띄우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그 용기를 낸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간을 보는 것과는 다른 일이고요. 음, 못먹는 감을 찔러나 보는 것과도요. 왜냐면 운을 띄우는 거은, 실은 그 감을 간절히 원해서니까.

아이고, 새벽이 올 수록 제 안의 목소리가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것 같습니다 ;)

새벽감성댓글감사해요 ㅎㅎㅎ 주저할수록 자꾸 옭고그름을 판가름하고싶어지는데, 사실 내가 부딪혀보고 실패하고 배우거나 성공하는 과정에서 그른 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전 거의 3년이 넘는 고민의 시간동안 이 일은 안될 일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했었는데, 생각보다 시작은 더 가볍게 했어야하는게 아닌가 싶기도하네요. (아침감성 대댓글 달아봅니다. :))

봄뜰님.. 요정입니다.. . 프사부터 영롱하셔요..또 반합니다. 또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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