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아닌 '강연'

in #kr-writing5 years ago (edited)

아는 작가의 개인전에 갔다. 그날 작가와 초대 평론가의 대담이 있었다. 작가에게 직접 작품 제작 의도를 공개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놓칠 수 없다.

관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이런 시간은 없었으면 했지만(언제나 이상한 질문들이 있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겪어야 하는 하나의 '평범한' 고난이므로 잠시 참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관객석에서 어떤 남자가 일어나 질문을 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그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는 착하고, 그리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려는 표정과 말투를 연기했지만 그 '연기'는 좀 미숙한 편이었다. 간혹(정말 매우 드물지만) 그런 강연이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강연 역시 그런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지식이 많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당연하게도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실은 지식이 부족한 것은 상관없다. 작품을 감상하는 자신만의 생각, 감성적인 느낌만 말해도 그 강연은 좋은 강연이 된다.

하지만 그의 강연 주제는 이 개인전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자신의 지식, 자신의 지성, 자신의 경험,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열심히 강연했다. 그 강연을 듣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 갤러리의 대표(관장)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그 갤러리에서 오는 안내 이메일을 스팸으로 차단하고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를 해제했다. 당분간 그 갤러리에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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