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그냥 음악일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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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간다. 백수 땐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스팀잇 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늦게 집에 들어와서야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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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한 형식으로 번호 일기를 써본다. 두 사진이 묘하게 상반되는 느낌이라 한 곳에 사이좋게 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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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기억에 남는 하루는, 그 하루와 함께 기억하게 되는 곡이 있다. 오늘의 한 곡은 이것이다.

< Beady Eye - The Morning 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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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입시를 준비하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일 끝나고, 연습하고 들어오면 밤 11시쯤 됐다. 퇴근길엔 항상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초록색 포카칩을 사 왔다. 창고 같은 골방에 들어가 김광석 라이브를 봤다. 그러고도 잠이 안 오면 다시 편의점에 가 맥주 한 캔을 더 사서, 내 방에 들어와 EPL을 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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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를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맨시티 팬을 했다. 그 당시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나는 맨시티 팬이었기에 격렬하게 맨유를 싫어했다. 그때 좋아했던 선수는 조 하트, 아구에로, 발로텔리 정도만 생각난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정말 축구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잠들기 싫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몇 년은 순위 정도만 확인하다가, 이제는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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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지산 락 페스티벌에 오아시스가 왔었다. 그 당시는 갈 형편도 못됐고 오아시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별 감흥이 없었는데, 공연 후기가 엄청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오아시스가 해체했다. 내가 안 간(어쩌면 못 간) 공연 중 가장 후회되는 공연이다.

아쉬운 대로 이듬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가서 후바스탱크와 이안 브라운을 봤다. 이안 브라운이 아주 오래오래 좋았다. 다음 해엔 지산에서 케미컬 브라더스를 봤고, 그다음 해엔 지산에서 라디오헤드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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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을 때 당황스럽다. 듣는 비중으로만 따지면 재즈가 압도적인데, 막상 기억에 남는 곡은 락인 경우가 많다.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시규어 로스가 한국에 처음으로 내한 왔던 때가 있다. 운명의 장난처럼 공연 날이 키스 자렛과 같았다. 고민 끝에 시규어 로스를 보러 갔다.

키스 자렛은 자주 올 것 같아 시규어 로스를 봤는데, 그 뒤로 시규어 로스는 한 번인가 더 왔고 키스 자렛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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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재즈를 좋아하는데 비틀즈를 가장 좋아해요"라는 애매한 대답을 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재즈보다 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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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파크에 들어갔다가, 노엘 갤러거 내한 소식을 알게 됐다. 공연은 벌써 매진. 취소표를 구해볼까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EPL을 보지도 않고, 공연을 가지도 않는다. 3일 꽉꽉 채워 놀던 락 페스티벌은 몸이 힘들어 엄두도 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갔던 공연은 콜드 플레이었는데, 그것도 좋아서 갔다기보다는 유년 시절에 대한 예의로 갔다. (물론 며칠 앓을 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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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갈수록 무미건조해지는 것 같다. 예전엔 이런 굵직한 내한도 소식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간 내가 놓친 공연은 얼마나 될까. 아는데 안 간 거랑 몰라서 못 간 것, 또 다녀갔는지도 모르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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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났다. 몇 번 정도 내 글에 나왔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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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이사카 코타로를 좋아했다. 이사카 코타로가 유독 더 좋았던 이유는, 소설 속 인물이 이사카 코타로의 다른 작품에서도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재미 정도로만 느끼다가, 나중엔 나름의 인명사전까지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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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물이 나오니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연결되는 것 같고, 그렇게 연결된 것들이 이사카 코타로라는 거대한 세계가 되는 게 좋았다.

나도 내 삶에 있는 사람들을 글에 녹여 조금씩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고 보니 내 세계는 너무 좁고, 그 안에 숨 쉬는 사람도 너무 적어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망설여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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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가 맨시티팬이었구나를 다시 상기하게 되네요. 저는 맹구팬입니다. ㅎㅎㅎ요새는 맨유를 맹구라고 불러요...ㅠㅠ
마침 멜론 결제일이 다가오는데 좋은 노래들 많이 알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왜 맹구라고 하나요? 못해서 그런가? ㅋㅋ 덕분에 오랜만에 순위를 찾아봤어요. 맨시티는 여전히 잘하고 있군요. @eternalight님도 저처럼 맨시티 욕 많이 하셨겠죠?! ㅎㅎ 좋으셨다니 제가 더 감사하답니다.

기대보다 못하니 맹구라고 불리겠죠.ㅋㅋㅋ베컴때부터 팬인데 요새는 잘 안봐서...저는 무리뉴 팬이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ㅎㅎㅎ맨시티는 욕 안해요. 욕해도 응원하는 팀 더 잘하라고 해야죠. ㅋㅋㅋ

내일 마저 들어보고 노래 받아 볼게요. 앞으로도 종종 부탁해요. 네이버 초이스가 사라져서 노래 고르는 수고가 많아졌어요. ㅋㅋㅋ

뜸금 없지만 재즈를 좋아하신다니까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데요..재즈에 트럼펫은 필수 악기예요?
트럼펫 독주곡도 있어요?
좀 알려진 트럼펫 연주자 몇몇 알려주실 수 있나요. ^.^;

@chapchop님! 재즈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군요. 필수 악기라기보다는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트럼펫이 들어가는 곡도 있고, 들어가지 않는 곡도 있답니다:)

트럼펫 독주곡은 생각나는 게 없네요 ㅠㅠ

전설적인 Miles Davis를 시작으로, Dizzy Gillespie, 요절한 천재 Clifford Brown, 트럼펫의 정석 Arturo Sandoval, Lee Morgan이 생각나네요. 보컬이면서 트럼펫도 불었던 Louis Armstrong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찾아봐야겠어요. 랄라 ~~
요즘엔 갑자기 트럼펫에 꼿혀가지고요.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음악에 아주 무식쟁이라 뭘알야야찾죠. 재즈를 글에서 종종 언급해시기에 물어보았어요.^ㅇ^

재즈를 좋아하지만 비틀즈를 가장 좋아한다~
뭐 충분히 그럴 만 하다봅니다. 각 노래마다의 느낌은 다르고 ,
자신이 흥에 겨워 하는것도 다른건 사실이니깐요 ㅎㅎ

@ukk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네요. 괜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재즈를 좋아하지만 비틀즈를 가장 좋아할 수도 있지요! 크크

ㅎㅎㅎ 뭐든 그냥 즐기는거에 의미를 둔다면
훨 편하니깐요~~ ㅎㅎ

나루님과 음악적 취향은 다르지만 왠지 모를 공감대 코드가 있는거 같아요. 중학교때 LP판사서 듣다가 잘못 다루어 미끄러뜨리는 바람에 이 음악부분에 기스가나서 주기적인 리듬에 긁힌 잡음이 섞여서 아주 아쉬웠어요. 나루님 포스팅을 보다가 이 노래가 생각나서 한참 찾았네요. 이제는 디지털 세상이라 쉽게 구할수 있네요. 같이 감상하시죠.인생은 이들의 이 노래같죠. 이상하죠.

ㅠㅠㅠ 피터님 ㅠㅠㅠ

피터님하고 대화를 하면 정말 신기해요. 저에겐 모두 지나간 사람이거나, 혹은 죽었거나 하는 아티스트가 피터님에게는 한 시대를 같이 한 아티스트니까요.

무디 블루스의 이름을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예전에 제가 글에서 무디 블루스 글을 올렸던 적도 있거든요! 실은 저는 < Days of Future Passed > 음반을 가장 좋아해요. 이런 분위기의 무디 블루스는 처음인데 이것도 정말 좋네요.

(제가 좋아하는 곡도 올려요!)

좋은대요.

저는 moody blues의 가장 일반적인 노래부터 시작했지요. 그렇지만 나루님처럼 그렇게 깊게 들어가진 못했어요. 고작 아는 것이라곤

Nights in white satin, melancoly man, for my lady정도이지요. 가장 대중적인 노래들이죠. 그때는 잘 몰랐는데 가사를 음미하니 아주 철학적이고 시적이고 아름다와요. Progressive Rock은 그당시 히피문화와 관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은 아니죠. 엄밀하게 말하면... 저는 70년대에 태어났으니까요. 이 아재들은 이미 60년대에 시대를 풍미했던 분들이고요.

아실테지만,

나루님, For my lady
(이거 우리 음악 digit-pal인가 보네요. ㅋㅋㅋ)

이 코털 날리는 분위가 쩌는 아재 노래가 아주 운치 있습니다. 아마도 40대를 훌쩍 넘긴 아재들의 사랑은 이런 느낌일거 같습니다. 히히

담백한 아재의 아름다움

피터님... 정체가 뭔가요? ㅎㅎㅎ 이럴수가 있나... 너무 많은 분야를 섭렵하고 계신것 아닙니꽈? 한번 더 감탄합니다. 허....

피터님을 너무 옛날 분으로 봤나 봐요. ㅋㅋ 무디 블루스를 좋아하지만 자세히 아는 건 없어요. 피터님 덕분에 좀 더 알게 된 것도 같습니다.

앨범을 이것저것 듣긴 했는데 이런 곡들은 낯설어요. 나른하고 아름답네요. 다시 앨범을 잘 들어보겠습니다! 매번 적절한 선곡을 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 )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한 사람의 세계는 겉보기보다는 훨씬 광활하고, 한 사람을 온전히 나의 세계에 담기도 가끔은 벅차다는 것을. 그래서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거대하고 깊은 작업일지도 모릅니다 :)

그나저나 제가 즐겨듣던 여러 밴드들의 이름이 나와서 저도 추억에 잠겨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한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단 한 명이라도 내 세계 안에서 온전히 숨 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기쁨이 되겠군요(!) 조금 더 세계를 좁혀나가야겠어요. 그리고 더 깊게 만들어 보고 싶네요.

그나저나 제 생각에 @qrwerq님은 시규어 로스를 무척 좋아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맞습니다ㅎ 시규어 로스를 비롯해서, 한 때 슈게이징과 슈게이징 비스무레한 음악들에 완전히 꽂혀서 살았던 적이 있더랬습니다. :)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슈게이징을 좋아하셨군요! 슈게이징을 많이 듣진 않았지만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정말 많이 들었어요. 몇 아티스트나, 혹은 몇 곡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가 음악을 듣는 폭이나 깊이는 사실 민망한 수준이라, 추천드리기도 조금 민망합니다ㅠㅠ 아마 제가 추천드리는 곡이나 아티스트들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ㅎ Ride의 Nowhere 나 Slowdive의 Souvlaki 같은 앨범들은 원체 유명하고 개인적으로는 spiritualized 와 같은 스페이스 락이 가미된 쪽도 참 좋더라고요 :)

제가 괜한 부담을 드린 건 아니겠죠?? Slowdive는 많이 들었는데 Ride는 처음이에요! 저도 실은 모르는 노래 투성이랍니다. 여기저기 찌르고 다닐 뿐이지요. ㅎㅎ 지금은 못 듣지만 기대 되네요. 꼭 듣고 다시 말씀 드릴게요+_+ 감사합니다!

이 음반을 반 정도 들었는데 이런 음악을 좋아하셨다니 왠지 의외입니다. 저는 All of my thoughts가 가장 좋았어요. 오랜만에 앨범 단위로 곡을 들어보네요.

음악의 질감이 무척 인상 깊어요. 지하에 있는 친구 작업실 놀러 가서 음악 엄~~청 크게 틀어놓고 술 마시면서 듣고 싶은 그런 곡이네요.

제가 의외의 선곡을 좋아합니다ㅎ
부유하는 느낌은 술 마실 때의 느낌과 비슷하려나요?

그나저나 묘사해주신 상황을 떠올리니 U2 -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같은 곡이 오랜만에 땡기네요. 제가 생각하는 인생곡 중 하나 입니다 :)

조슈아트리 앨범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지만... 저도 정말 좋아하는 음반이에요. 간만에 추천해주신 곡을 듣고 있어요. 이 앨범은 맨날 통으로 들어서 2번 트랙도 틀어야 할 것 같아요. 이 곡은 왠지 고속도로 타고 달릴 때 차에 크게 틀어놓고 싶어요 ㅋㅋㅋ

오랜만에 들어와서 정말 오랜만에 나루님 글을 읽어요. 음악들으면서요. 그래서 인지 조금 낯설기도 하면서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벽에 붙어 공중에 떠 있는 의자가 인상적이었어요. 의자를 우낙 좋아해서요...ㅎㅎ 잘 보고 잘 듣고 가요.^^

시인님! 정말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그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 아니지요? 이렇게 다시 돌아오시니 좋아요. 자주 뵀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대로 여기 있었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그냥 많이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자주 놀러올께요.^^

다행이에요! 앞으로 자주 봬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구요!

그러고 보니, 저도 클래식이나 재즈를 듣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는 메탈리카 군요 ㅎㅎㅎㅎ
사실 가장 폭력적인 음악은 클래식인데... 그것보다 순해서 좋아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ㅋㅋ

으엇... 메탈리카를 좋아하시나요? ㅋㅋㅋ 메탈리카는 어릴 적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메탈리카를 좋아하신다니 뭔가 새로워요. ㅎㅎ

클래식은 들으려 노력 중인데 왜 이렇게 귀에 안 들어오는 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몇 곡만 겨우겨우 듣고 있네요.

음악을 들으려 애써서야 되겠습니까? 어느날 들리겠지요 ^^
머든 확실한게 좋아서 메탈리카가 좋았었죠 ㅋ

물론 며칠 앓을 만큼 좋았다

저에게 이런 음악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많이 좋아하는 음악은 있지만
'이 정도로' 좋아했던 음악은 떠오르질 않네요.ㅎ

음악만으로 며칠 앓을 만큼 좋았던 적이 있나 생각해봤어요. 학창시절엔 그랬던 것 같아요.

콜드플레이는 음악만으로 앓았다기보다는 공연 후의 여운이 며칠 앓을 만큼 좋았던 것이거든요. ㅎㅎ @calist님도 나중에 좋아하는 공연에 한 번 가보심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공연에서 오는 여운은 음악을 듣기만 하는 거랑은 또 다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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