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내 자녀에 대한 소망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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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늦은 밤 산책을 나갔다가 무슨 명절 날 고속도로 톨게이트 마냥 차선이 꽉꽉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교통 사고가 난 줄 알고 그걸 구경하러 맨 앞까지 한참을 걸어 간 나는, 이 차량 행렬의 정체가 학원 끝날 시간에 맞게 기다리는 학부모들임을 알게 되었다.

부모들에게 자신의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모임에 안 나오는 경우도 흔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시대는 좋은 대학을 나와도 전 세대만큼 윤택한 삶이 보장되는 않는다.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과 비교할 때 소득 격차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만, 버는 돈이 많을수록 교육비를 더 쓰는 현실을 곱씹어 볼 때, 결국 좋은 대학을 나와도 사는 건 거기서 거기다.

모두가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투자한 만큼 아웃풋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일단 좋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대기업 취업이라는 기회비용이 생겨 다른 진로를 택하기 쉽지 않게 된다.

그렇게 남의 인생을 살다가 뒤늦게 자기 자신을 직면하고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혀 엉뚱한 일을 하거나 배우자와 이혼해서 부모를 엿 먹이는 경우도 흔하다. 아니면 부모가 목숨처럼 염원하던 좋은 대학을 갔다는 그 안도감으로, 죄책감 없이 장년이 되도록 부모 손을 벌리고 사는 경우도 많다. 자녀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억울할 지 모르지만 실은 자업자득이다. 애시당초 자녀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된 방법론으로 이루어지질 않았는데 별안간 하한가를 친다고 누굴 탓한단 말이냐.

한국 ​부모들은 학원을 줄줄이 사탕으로 보내는 걸 자녀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녀에 대한 진짜 투자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가는 것이다.

육아는 안 해봤지만 그게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당장 유부남들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걸 참 싫어하더라. 말도 안 통하는 시끄러운 코찔찔이 자녀랑 노는 게 뭐 그리 재밌겠나. 하지만 거기 시간을 많이 쓴 부모들이 결국은 좋은 결과를 보더라. 자녀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킬 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특히 자녀와 함께 운동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 여자 아이들은 성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만큼 조숙하다. 십대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 내가 달리 코멘트할 것은 없지만 초경이 빠르면 보통은 키가 크지 않고 이른 시점에 성 생활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적으로 아버지와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은 아이의 초경을 늦추고 이성에 대한 관심을 좀 더 뒤로 미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남자 아이의 성적 호기심은 부모의 애정과 하등 관계가 없지만 여자 아이의 경우는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예전 검도장을 다닐 때 보았던 일이다. 매일 검도를 나오는 부자(父子)가 있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둘이 합쳐 검도 단수가 두 자리대였다. 거진 10년이 넘게 아버지와 아들이 죽도를 맞대온 것이다. 어딘가 데면데면한 일반적인 그 나이대 부자 관계에 비해 둘은 마치 친구처럼 친밀해 보였다.

​어느 날, 그 둘이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대화 내용인 즉슨 수능을 본 그 아들이 성균관 대학교 경영을 붙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재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성대 경영을 붙었는데 그걸 버리고 재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원래 꽤 공부를 잘 한다는 의미다.

정말 재밌었던 것은, SKY를 갈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자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던 우리집과 달리 그 부자 사이에는 어떤 갈등이나 고민이 없어보였다는 것이다.

성대도 좋은 대학인데 가지 그러냐, 아뇨 전 그래도 좀 아쉬우니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내가 들은 그 대화에 학벌 지상주의는 없었다. 그냥 농구 시합 한 게임 더 뛰어보겠다는 말처럼 쿨하게 들렸다. 그 둘은 늘 그랬듯 웃고 떠들며 몇 번인가 더 대련하고 함께 샤워하고 집에 갔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그때만큼의 부러움을 느낀 적은 없다.




나는 미래의 내 자식이 공부를 잘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 나를 닮았다면 특히 그러할 것이다.

일전 나를 가르친 과외 선생님이 말한대로, 어쩌면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나는 스스로가 한국식 교육 제도의 수혜를 받았노라고 감히 말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가치 평가와 별도로 나는 한국의 교육 제도를 여전히 혐오한다. 나와는 아주 맞지 않았다.

괜찮았던 거라곤 찬찬히 읽어보면 제법 잘 쓰여진 도덕 교과서를 읽는 재미 정도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 삐져나가면 때리기 바쁜 이 병신 같은 나라의 교육 제도가 훌륭할 리 없지 않나. 부모님이 촌지를 주지 않자 나를 왕따시키던 국민학교 선생부터 한국 어른들의 나쁜 특징을 일찍부터 체화한 급우들까지 모든 게 별로였다. 나는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군대가 아니라 고등학교 교실에 갇힌 꿈을 꾼다. 그래도 머리가 좀 굵은 채로 들어간 군대에 반해, 10대 시절 나는 나를 어떻게 지켜야하고, 거의 이종(異種)의 인간마냥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급우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요행으로 잘 넘어가 지금만큼이라도 사는 것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며 만약 내 삶을 여러 번 시뮬레이션 돌려볼 수 있다면 십중팔구는 잘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내 자녀가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 사회에서 사는 데에 있어 나와 비슷한 갈등을 겪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렇다고 내 자식의 행복을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로 갈 생각도 없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나 변호사요 하고 대충 뻐기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외국을 나가봤자 세탁소 밖에 더 하겠냐. 어차피 나가서 살아도 지상낙원도 아닌 것을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결혼도 안 한 이 시점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희생 따위는 때려치고, 나는 그냥 여기서 태어난 것이 원죄일 것이 분명한 자녀에게 좋은 대학을 들어가라는 목표 따위는 일찌감치 요구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보다는 그때 검도장에서 보았던 아버지와 아들처럼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시합을 하다보면 승부욕이나 통찰력도 생길 것이고, 그러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자기 주관도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집중해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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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의 제가 생각나는 군요..
아이들을 학원으로 날랐던 시절.
그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동이켜 보면 지금 이시대에는 부질 없는 일이었다는 걸 깨닿는다.
물론 아이들이 좋은 대학은 갔다..
그러나 앞으로의 미래는 ~~ 창조하는 거 아니겠는가?

뭐 그렇죠 ㅋㅋㅋㅋ 여튼 그래도 목표를 이루셨으니, 시간이 지나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시는 것도 좋은 여유입니다 ^^

앞으로의 미래는 또 종전 성공한 방식뿐 아니라 새로운 사유대로 다시 계획하시면 되겠죠 ㅎㅎ

저는 두 아들의 아빠입니다. 저 역시 한국의 교육을 증오합니다. 썩은 쓰레기 교육이지요. 저는 대안학교도 생각하고 있어요. 외우는 능력만 최고로 치는 정신나간 교육에 제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싶진 않아요.

ㅎㅎ 사실 대안학교도 다른 의미에서 별로인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점에서 결국 순수한 의도를 가진 부모들을 이용한 장사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죠 ㅎㅎ 그래도 물론 좋은 곳도 있겠지만요... ^^;

사실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아웃풋이 크지 않다는 게 비극이기도 하지만 또한 해결책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저희 어머니와 똑같은 가치관이시네요.
저는 일반고를 다니다가 @naha님 말씀대로 한국의 이런 썩은 교육장에서는 답이 없다고 확신하고 대안학교로 전학을 알아봤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이상적이고 특별해 보이던 그 곳이 막상 가보니 홍보만 잘 된 껍데기 일 뿐인 곳이었더라고요, 촌지를 요구하는.

그래서 말과 자연과 함께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특성화고로 갔습니다. 한 학년에 고작 40명 밖에 되지 않는 산 구석 작은 학교. 수업시간에 승마를 하고 공부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으며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곳. 졸업한지는 한참 됐으나 인생의 중요한 성장기인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참 특별하네요 :)

아이가 둘이라 교육에 대한 고민도 두배겠습니다.
님의 교육관을 응원합니다.

좋은 말씀 고마워요. 아직 5살 3살이지만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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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단 좋은 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대기업 취업이라는 기회비용이라는 게 생겨서 다른 진로를 택하기 쉽지 않게 된다

이걸 알아야 되는데 말이죠. 그게 억울해선지 좋은 건 지들끼리 다 해먹고 절대 나눠주려 하지 않더군요. 이 카르텔을 깨버려야 제대로 된 선택들을 할 텐데 말이죠.

사실 모든 게 다 그렇죠, 보상 심리라는 게 생기면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쉽고... 흙수저 출신이 법조인이 되서 더 심한 카르텔을 형성하는 게 좋은 예가 아닐까 싶네요.

진입장벽을 낮추고 끝없이 자기 실력으로 무한경쟁하게 하는 구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ㅋㅋ

자신의 성장사를 담아
교육 이야기를 하니 설득력이 높아요.

다 공감해요.
우린 대안교육도 해보았지만
궁극적으로는 홈스쿨링도 아닌
마이스쿨 자기주도형 성장입니다. ㅎ

그게 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사실 인생에서 겉멋 없이 자기가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뭔지 깨달으면 그 이후로부터는 부모가 걱정할 것은 없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글 담아갑니다. 근데 마지막 문단, '결혼도 안 한 이 시점에'에서 좀 놀랐습니다ㅎㅎㅎㅎ

ㅎㅎㅎㅎㅎ 사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에 대한 과한 견해 표명일지도 모르지요 ^^;

훌륭한 생각입니다. 이제 다음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배우자를 찾을 단계입니다. :)

저도 아직 자녀가 없는데요 한국에서는 그닥 낳을 생각도 없습니다만 행여나 자식이 태어나게 된다면 대안학교를 보내볼 생각입니다 ㅎㅎ 일반학교가 싫다하면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해주고 싶네요 ㅎㅎ

ㅎㅎㅎ 위에 댓글에도 적었지만 대안학교 자체가 의미가 퇴조된 경우를 많이 보긴 했네요.... 그래도 역시 한 '대안'이 될 수는 있겠죠. 사실 부모가 부유하고 자녀가 자유롭게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게 가장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합니다 ^^

저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넉넉한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시간과 예산이 충분하다면 자녀의 뽑기가 대흉이 나와도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르게 말하면, 대흉이 나와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낳는 무책임한 일을 하느니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 몇 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한국을 혐오(?)했었는데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꿨답니다. 계기는.. 우리나라를 욕하는 저에게 누군가가 질문했습니다.

"다음 생에 태어날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데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든가 랜덤으로 태어나든가. 무엇을 선택할래?"

이 질문에 후자를 선택할 수 없었네요. 그 이후로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네요. ㅎㅎ

뭐 그런 점도 있긴 하지만... ㅎㅎ 행복이라는 것도 상당히 상대적인 거라 아마 콩고에서 월 30만원을 받는 사람이 한국의 서민보다 행복할지도 모르지요... ^^;

저는 한국보다 치안도 불안정하고 불행한 많은 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려놓은신 질문에서 한국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인생은 한 번이니 이미 태어난 걸 최선을 다해 원망 없이 잘 살아야겠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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