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장례와 잔치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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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화장한 날은 너무 추웠다. 화장터에서 나는 몸을 벌벌 떨면서 울었다. 추워서 떨었는지, 엄마가 불쌍해서 떨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어머니는 반평생 아팠다. 너무 아파서, 자살하는 사람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어머니는 생전에 말씀하셨었다. 어머니의 육신이 회색 가루가 되어 함에 담겼다. 저것은 내 엄마가 아니다. 내 엄마는 이제 영영 사라졌고, 이땅에는 엄마를 구성했던 무기물만 남은 것이다.

둘째 돌잔치를 하는 날 서울의 온도는 섭씨 30도 후반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났다. 우리 네 가족은 한복을 입었다. 한복을 입고 야외에서 돌사진을 찍었다. 신록이 푸르렀다. 매미가 우렁차게 울었다. 사진작가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여기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저기에 세웠고, 계단을 오르게 했고, 계단을 내려가게 했다. 큰놈이 덥다고 짜증을 냈다. 나는 짜증 내는 큰놈을 다그치지 않았다.

조촐한 잔치였다. 첫째도 아닌 둘째의 돌이었으므로, 우리는 양가 친지 외에는 초대하지 않았다. 돌잡이를 하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친가 쪽 나오세요”라고 사진작가가 말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외아들이다. 내 아버지 말고는 나올 친가 쪽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 아내 사이에 섰다. 아내는 작은놈을 아버지 쪽으로, 나는 큰놈을 아버지 쪽으로 안고 찍었다. 사진이 좀 휑하겠구나, 생각했다.

아내는 2녀 1남 중 둘째다. 사진작가가 처가 쪽을 호명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형 내외, 처형의 딸, 처남이 돌상 뒤에 자리를 잡았다. 작가가 “조금 더 붙어서 찍을게요. 다닥다닥 서 주세요”라고 했다. 처가 쪽 사진은 꽉 차게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아버지는 사진작가 옆에 서 계셨다. 거기 서서 아들과 손주들과 며늘아기와 사돈댁이 사진 찍는 광경을 보고 계셨다. 문득 혼자 된 아버지가 가여웠다. 그래도 나는 웃는 얼굴로 사진 찍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속눈썹이 긴 큰놈을, 이마의 선까지 나를 빼닮은 작은놈을 보면 얼마나 예뻐할까, 생각했다. 안 그래도 예쁜 놈들인데 잔칫날이라고 한복을 입혀놓으니 더 예뻤다. 그래서 더 슬펐다. 식사 도중 장모님은 장인어른께 농 섞인 핀잔을 하셨다. 그게 참 정겨워 보였다. 아버지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러다가 큰놈 먹을 과자를 잔뜩 담아가지고 오셨다. 아직 밥도 제대로 안 먹였는데.

돌잔치 일주일 전 나만 따로 시내에서 아버지를 뵈었었다. 그때 아버지는 나와 맥주를 드시다 말고 “엄마 아프고, 사업 그렇게 되고 한 게 다 꿈 같아”라고 하셨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아버지와 잔을 부딪쳤다. 잔칫날 혼자 계신 아버지를 곁눈질하다가,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했다. 내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혼자서 잘 지내시는 것이다. 조금 외롭지만,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지내시는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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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중에 누군가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 빈자리를 모르다가 가족행사를 할때 문뜩 떠올라서 마음속으로 울었던 기억이 저에게도 있네요. 아버지를 먼저 잃은 저는 어머니를 먼저 잃으신 afinesword님의 글을 보며 마음이 한구석이 뜨거워지네요. 남으신분들도 먼저가신분들도 모두 안녕하시길...

예 모두 안녕하시기를. 모두 평안하시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뵙게 되기를.

칼님..
괜찮지도 안 괜찮지도 않은 그런 느낌으로 읽어내렸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남겨진다는 것, 떠난다는 것...
오래 기억하되 부디 많이 아프지 않기를...

들들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한 번씩 어머니 생각에 울컥하다가 지나면 또 웃고, 즐거워하고 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가슴 한켠이 찡해져 옵니다... 아버님께선 나름의 자유속에서 행복 하실겁니다~ 오늘은 괜시리 토닥토닥 해드리고 싶습니다~ ^^

위로 감사해요^^ 맞습니다. 아버지 잘 지내고 계신다고 저도 믿습니다. 여자친구도 사귀시고 하셨으면,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니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일을 생각하면 언제나 먹먹해지더라구요.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니, 그저 먹먹한 기분에 휩싸이는 거 외에는 할 게 없겠지요?ㅜㅜ
아비지를 위해서 그리고 칼님을 위해서 잠시만 먹먹해하세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천천히 닥쳐 주기를.
저러다가 또 금방 괜찮아져서 지내고. 그러다 또 이따금 엄마 생각나고. 뭐 그래요...
@gghite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르
예전 모두 떠나고 혼자 넓은 집을 지키시던
엄마생각에

편안해 보여도 편치 않는
강해 보여도 더 이상 강하지 않는 분들

엄마 사진 더 많이 찍어 놓을 걸. 동영상하고요. 어머니 살아계실 땐 스마트폰이 없었거든요. 그게 제일로 속상합니다.

날궂이

아직도 노모는 나무라실 때
대체 뭐가 되려고 그 모양이니 그런다
아직 될 것이 남아 있다니 꿈같고 기뻐서
나 아직 할 것이 남아 있다니
눈물겹고 기뻐서

내리는 비를 피하고 있는 처마 밑
누군가 날씨가 어째 호되게 꾸중 들은 날 같냐
하니까 누군가
엄마한테 흠씬 매 맞고 싶은 날이야 그런다
자신보다 더 젊은 엄마 사진을 꺼내며
꾸지람 속으로

김혜수, 『이상한 야유회』

눈물이 핑 도는 칼님 글이었네요. 애꿏은 눈시울만 벅벅.

ㅠㅠㅠ 르캉님이 써주신 시 덕분에 저도 또 울컥

읽으면서 떠나가신 아버지 생각도나고 외동인
아들 생각도 나고 그러네요.
아버님은 쓸쓸 하지만 강하게 살으실 거에요..

말씀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잘 지내시는데 제가 괜히 이러는 거겠지. 생각하고 있어요. 모두 안녕하시기를.

울컥해지네요..
같은 상황이거나 환경은 아니지만..
그 기분을 감히(?)알 것 같기에..
아빠.. 란 이름만 들어도..
엄마.. 란 이름만 불러도 울컥해지고 그러는 아줌니네요ㅠㅠ

사실 저희 어머니 성함이 OO순이었어요. 제가 머리가 좀 굵어진 뒤에는 엄마를 "순이~"라고 부르면서 장난쳤어요. 엄마는 그걸 싫어하지 않으셨고요.

아프시기 전, 제가 지금 제 작은 아들 보다 더 어릴 때,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엄마를 보면 엄마가 더 보고싶어져요. 아프고나서는 얼굴이 너무 많이 상하셨거든요. 잘 웃지도 않으시고.

글을 아주 잘쓰십니다. 꼭 소설을 읽는 듯합니다. 혹시 작가가 아니신가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신문기자입니다.

아 그렇군요. 역시 프로의 냄새가 난다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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