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街 엿보기] 대구 대신동 미싱골목, 부활을 꿈꾼다

in #kr5 years ago

전대구 서문시장과 달성공원 사이 200여미터 남짓 좁은 골목 양편은 재봉기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름하여 ‘대신동 미싱골목’이다. 대구의 동대문시장이랄 수 있는 서문시장이 인접해 있어 1970년대부터 미싱가게들이 하나 둘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섬유봉제 경기가 활황일 때는 이런 미싱 가게가 80여 곳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서문시장에는 각종 의류를 비롯 봉제 원부자재류들로 넘쳐났다. 시장 주변 지역에는 옷을 만들어 시장에 납품하는 조그만 봉제공장들이 수를 늘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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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시장과 제품집 그리고 미싱가게는 각자도생이 아닌 서로 기대어 터전을 지켜 왔다. 지난 3월초 섬유전시회인 ‘프리뷰인대구(PID 2019)’ 참관 차 EXCO를 찾았다가 걸음한 ‘대신동 미싱골목’은 예상외로 조용했다. 오래 전 들렀을 때는 어느 집 예외없이 노상에서 재봉기를 셋팅하느라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골목이 번잡했었다. 골목을 두어번 오가며 골목길 양편의 미싱점 안을 기웃거려 보았으나 점주 대부분이 조립이나 수리하는 모습이 아닌 멀뚱히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EXCO 전시부스를 돌며 대구의 어려운 섬유경기를 귀동냥한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은 풍경이나 선뜻 문을 밀치고 들어서기가 미안스러웠다. 조심스럽게 ‘대구특수미싱’으로 들어섰다. 임락상 사장은 반갑게 기자를 맞으면서도 툭 던지는 첫마디가 “여긴 머한다꼬 내리왔능교? 섬유 다 죽었는데…”다. “무늬만 섬유도시지요. 제직 1등 도시였는데 제직이 없어요. 원단을 수입에 의존하니 안 그렇습니까, 원사를 갖고 와서 제직을 해야 염색도, 가공도, 봉제공장도 돌아가는데, 지금은 모든게 멈춤 상태지요. 청신호로 바뀌어야 시장도 미싱골목도 숨통이 트일텐데 걱정입니다.” 누가 뭐래도 대구는 섬유도시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섬유업체 중 150개사가 대구 경북에 자리를 잡았고 그중 절반이 넘는 95개사가 대구에 밀집해 있어 대구 산업계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했다. 바로 대구가 섬유도시로 불리게 된 이유다. 1970년 세계 최대의 합섬섬유 도시가 되었지만 이내 고비를 맞게 된다. 1973년 1차 석유파동과 1979년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섬유산업은 불황 국면을 맞게 됐다. 이후 1980년대 노사분규와 후발개도국들의 섬유산업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왔고 1990년 국가경제위기 IMF를 거치면서 많은 섬유기업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섬유산업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곧 대구의 위기였다.

이즈음 부랴부랴 꺼내든 카드가 ‘밀라노 프로젝트’였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당시 섬유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및 패션봉제산업 강화를 통해 대구를 밀라노와 같은 세계적인 섬유·패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대형 국책 과제였다. 1999년부터 1, 2단계로 나눠 몇 년간 수천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인프라만 구축해두고 이를 활용할 만한 유인책을 마련해두지 않은 정부나 정부 지원에만 의존한 채 자발적인 혁신 노력이 부족했던 업계, 그리고 각종 비리까지 불거지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비뀐 채 요란법썩만 떤 꼴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를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는 식의 비아냥이 지금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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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대구 섬유산업의 어려움은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일이 아니라는 게 대구에서 만난 섬유관계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오랜 세월 조금씩 누적되어 여기까지 왔죠. 전시회에서 봤으면 알겠지만 대구시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섬유전시회인데 어떻습니까?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의 섬유업체 부스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대구경북 섬유업체들의 세가 쪼그라든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따라서 대구 섬유기계메이커들의 운명도 풍전등화죠. 지역에서 간단하게 짜던 것들도 가격이 맞지않아 중국에서 수입해 옵니다.” 현재는 50여 개 점포가 대신동 미싱골목을 지키고 있다.

“젊은 사람은 없어요. 대부분 60대 초반에서 70대입니다. 80대도 있고요. 그나마 이 지역은 점포세가 헐해 견딜만 합니다. 보증금 없이 월 30만원 수준이죠. 달성공원 옆이라 건물높이가 3층으로 제한되어 재개발이 쉽지않은 탓이기도 하죠. 도심 안의 시골입니다.” 이곳에 들어온지 40년이 다 되어간다는 특수미싱 임락상 사장의 얘기다. 그는 이어 “한때 호시절도 있었죠. 옛날 서울 ‘태양미싱’은 포대 봉합용 특수미싱을 수입해 공급했는데 제가 태양미싱의 대구지역 판매점을 맡아 당시 대구 경북 일원의 방앗간들을 죄다 거래했습니다. 그때만해도 각 군단위 정미소들이 5개씩 모여 계를 했지요.

그중 한 곳이 불이 나면 네 곳이 힘을 모아 살려주는 식으로 서로간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집만 거래가 되면 자동으로 포대미싱 납품이 이루어질 정도였습니다. 밤낮이 따로 없을만큼 바빴죠. 그때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정미소와 미곡처리장에 포대미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대광엔지니어링(검침기와 전사프레스)과 성우정밀(재봉기용 감속기)의 대구경북 판매대리점을 맡고 있지요.” 특수미싱을 나와 ‘유니콘/부라더미싱 대구경북총판’을 노크했다. 본지를 잘 보고 있다며 황효영 대표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대신동 미싱판매점 모임인 대구미싱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여기도 동대문시장처럼 주변에 조그만 봉제공장들이 있긴 한데 서울 창신동이나 숭인동처럼 밀집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대구의 경우 주로 티셔츠, 커텐, 침장류 공장이 많은 편이지요. 기업체나 학교 등 단체 행사 때 입는 일반적 티셔츠 공장이 대구 서구지역에 주로 많이 분포가 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신동에는 국내 최대 침장산업의 1번지로 통하는 ‘침장거리’도 있지요. 전국 침장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침장 생산과 유통이 활발한 편입니다. 과거에는 경산에 제일모직 신사복 하청하던 공장이 경산을 비롯 대구 서구쪽에 있어 미싱판매점들도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폐업해버린 상태지요.

지금은 내세울만한 봉제공장은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런 탓에 이 골목도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게 사실입니다. 미싱기사를 별도로 두고 운영하는 곳이 없습니다. AS요청이나 납품 건이 발생하면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다녀 옵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총 49명의 회원을 둔 대구미싱협회는 회장(황효영, 부라더상사 대표), 부회장(김장영, 아진미싱 대표), 총무(박태식, 부라더상사 대표), 감사(전고식, 대진미싱 대표/박군시, 부강미싱 대표)가 회원간 정보교류와 친목도모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40년 넘게 골목을 지켜온 미싱장인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명실공히 섬유도시로서의 위상을 회복해 대신동미싱골목에도 더불어 생기가 넘쳐났으면 하는 것이다. 대구에는 매년 봄가을 ‘대구섬유축제’가 열린다. 미싱골목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구름잡는 섬유정책이나 지원이 아닌 피부에 와닿는, 현실성 있는 정책과 지원이 아쉽다”며 “섬유축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구섬유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업계의 의식 전환을 통해 화합 분위기를 조성하며 해외구매단을 초청하여 지역섬유제품의 수출을 도모하겠다는 게 축제의 슬로건입니다. 뜬구름 잡는 내용이지요. 정책 입안자들이 탁상을 벗어나 현장을 둘러보면 무엇이 진정으로 절실한 것인지 답은 나옵니다.”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상권활성화를 위해 2년 전에는 미싱골목 입구에 ‘미싱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은 마을기업인 더나눔협동조합이 만들었다. 대신동 주민센터가 미싱골목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만들었다. 또한 최근들어 주변 지역 대학들과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고 들었다. 대구 섬유의 부활과 함께 대신동미싱골목에도 청신호가 켜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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