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종일 - 다엘 대표

in #kr5 years ago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소재 다엘은 의류 종합 샘플제조 업체이지만 신진디자이너들에게는 창업스쿨 역할도 하고 있다. 의류패션업계의 MD 출신인 동사 한종일 대표는 초보 패션창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 대표를 만나 보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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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플을 전문으로 하는데 인력도 많고 사무실도 비교적 규모가 커 보입니다.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총 15명의 인원으로 가동 중이며 의류 샘플을 비롯해 일부 소량 본작업 생산도 가능한 종합 제조 전문업체입니다. 패턴 캐드 5대를 가동 중이며 샘플 생산을 위해 다수의 특종을 비롯한 각종 재봉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우븐을 비롯해 니트류 등 의류 전 제품의 생산이 가능합니다. 저는 원래 아동복 기획, 영업 MD(머천다이저, 판매촉진담당자) 출신입니다. 의류 기획부터 생산, 매장, 판매 관리, 대리점 수주 등 패션기업에서 하는 전반적인 업무를 경험했고 전국을 무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동복 매장을 경영해 보기도 했고 잠시 식자재 유통업으로 직업을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패션업계에 샘플 전문업체를 설립해 돌아왔고 서울 중구 신당동을 주 무대로 하다가 최근 동대문구 장안동으로 규모를 확장하여 이전 개업했습니다. 10년 전 신당동 시절, 저희는 약 90% 이상을 아웃도어류 샘플을 전문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아웃도어 물량이 줄어들고 해외생산이 주를 이루면서 품목이 여성복 쪽으로 자연스레 변화해 왔습니다. 당시에 굵직굵직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주요 프로모션 업체들이 저희 단골 고객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부 아웃도어 물량을 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은 여성복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아웃도어에서 점차 손을 놓게 된 이유는 업무 시간이나 난이도가 일반 의류에 비해 50~100%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업계가 침체되면서 공임을 낮춰달라는 요구가 계속됐고 결국 주력 아이템을 여성복으로 돌렸습니다.

– 샘플 제조를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많이 하는 추세인데 어려움은 없는지?
해외로 많은 공장들이 대형 샘플실을 차려서 나간 것이 저희같은 전문 샘플업체들의 생존을 어렵게 했습니다. 실제 해외 공장 중에는 대형 샘플실에 많은 인력과 장비들을 갖춰 국내 웬만한 공장보다 훨씬 큰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아는 한 중견 기업도 그동안 자체 샘플실에서 객공들이 샘플 생산을 해왔는데 결국 해외로 모두 이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서 요즘 실력있는 패턴사, 샘플사들이 일자리가 없어 구직활동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기술 좋은 전문가를 구할 수 없어 애를 먹었는데 요즘은 그 인력들이 남아도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실력있던 패턴사들도 예전 같으면 대기업 패턴실만 노크했지 시중의 샘플 전문업체는 이력서도 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화려한 경력의 고스펙 패턴사, 샘플사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급 기술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관련 분야의 명맥이 끊기게 되고 결국 국내 의류 제조산업의 공동화가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야기된 것은 국내 의류 패션 대기업의 이기주의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봉제업계를 비롯해 관련업계가 황폐해진 것은 대기업들이 잇속을 채우려고 정당한 공임비를 주지않고 오히려 깎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봉제공장 임가공비가 예전보다 더 낮아진 것은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윤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하청업체들을 압박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더 이상 이윤 유지가 힘들어지자 결국 두손 들고 해외로 나갔고 남아있는 공장들은 손가락 빨든 말든 나몰라라한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 어려운 상황임에도 인력도 늘리고 소량 물량 생산도 시도하는 등의 변신을 모색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준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의류패션산업은 바야흐로 다품종 소량 생산 시대입니다. 본작업을 30장, 적게는 10장도 생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극소량 생산은 오히려 샘플을 전문으로 하는 저희같은 업체들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봉제공장에 의뢰하면 십중팔구는 고개 내저을 겁니다. 극소량 작업이지만 높은 퀄리티에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샘플 제작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소량 오더까지 처리하게 된 것은 저희의 주거래 고객들의 특성 때문입니다. 우리를 찾는 고객들 중 상당수가 신진디자이너들입니다. 개인 혹은 두서너 명이 모여 창업을 시도하는 업체가 대부분입니다. 연령대도 20~30대가 많은데 이런 창업자들이 약 100여 곳에 이릅니다. 그들은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나 아이템에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실제 그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류가 어떻게 기획되고 생산되어 고객의 손까지 가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열정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어떻게 할지 모르는 혈기왕성한 창업자들이지요. 그들이 주문하는 물량도 많지 않고 거래 액수도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에게 원스톱 올인원 서비스를 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업계획서 작성하고 생산 견적까지 뽑아 줍니다. 기획 생산 판매 전 과정을 소개하거나 컨설팅도 제공하지요. 어떤 때는 판로까지 알아봐 주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원스톱 올인원입니다. 지금은 세상 모르는 초보 창업자일 수 있지만 사실 이들이 앞으로 우리 패션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이들과 거래가 많다 보니 샘플 외에 실제 진행하는 본작업 물량도 소량에 한해서는 직접 생산을 해주게 된 것입니다. 10~30장까지는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그보다 많은 물량은 파샬, 즉 순차적 납품 방식으로 생산해줍니다.

– 신진디자이너에게 다엘과 같은 업체가 필요한 이유는?
만약 디자이너가 각자 의류를 생산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샘플 제작 후 자체 생산하기 위해서 공장을 찾아다니는데 보내는 시간과, 핸들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그리고 잘 몰라서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MD 업무를 했는데 이 일을 업계에서는 다른 말로 ‘타임스케쥴러’라고 불렀습니다. 의류 기획부터 생산, 매장에 비치시키기까지 전 과정을 각각 관리하고 일정을 체크하는 것은 보통 업무가 아닙니다. 한두 명이 모여 창업을 도모하는 신진디자이너들에게는 하나의 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저희가 도와줌으로써 벽을 허물어주는 것입니다. 수량이 되면 견적까지 뽑아주고 관련 업체 매칭과 시간 관리를 모두 해줍니다. 사실 이 과정이 초보 패션 창업자들에게는 하나의 생생한 현장 교육이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디자인 컨설팅 외에는 모든 것을 서포트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을 키우고 돌보며 성장시키는 일이 우리도 살 수 있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거래하는 초보 패션 창업자들이 실제 사업에서 낭패를 경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진디자이너들은 아이디어가 있고 실력도 갖추고 있지만 수요예측이나 판매, 유통은 극히 취약한 편입니다. 처음 의류사업에 뛰어든 이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수요 예측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어느 누구도 정확한 예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수요 예측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의류 생산 시스템에서는 몇 십장 단위의 생산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공장에서 10장, 20장짜리 물량을 생산해주겠습니까? 저희와 거래하는 신진디자이너들은 소셜네트웍을 이용한 판매루트나 팝업스토어, 혹은 온라인 쇼핑몰 등을 활용해 판매를 시도하는 곳이 많습니다. 전통적인 판매루트와는 다른 방식을 도입하기 때문에 생산 역시 일정 수량의 재고를 확보해놓고 판매하기 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에 대응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샘플 생산부터 극소량의 본작업까지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 지금 패션업계 상황과 비교해 앞으로 신진디자이너들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지?
지금은 전통적인 패션산업의 방식이 점점 수세에 몰리고 새로운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 혼돈의 시대라고 저는 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는 가고 역량있는 개별 디자이너의 재능이 각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 패션 대기업들 대부분의 사정이 크게 좋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패션 대기업의 전통적인 선호 브랜드보다 오히려 개성 있는 온라인 쇼핑몰의 의류가 더 주목을 받고 성장 속도도 빠릅니다. 전통적인 패션기업들이 온라인이나 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된 지금, 그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반면 요즘 역량있는 신진디자이너들은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오히려 중국 등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대형업체들이 주도한 대량기획, 대량소비보다 실력있는 개별 디자이너, 소규모 사업자들이 실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
신진디자이너들을 성공으로 이끌게 하려면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의 세분화가 필요합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제조는 품질과 납기, 그리고 판매 파트는 최대한 많은 제품을 팔 수 있는 데 집중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자이너가 생산, 판매까지 신경쓰다보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낭비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디자이너와 판매업자를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해볼 계획입니다. 시작은 동대문의 소매업자와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연결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신진디자이너의 제품을 소매업자들이 선택, 판매할 수 있는 중간 역할 고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생애에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세계적인 패션스쿨을 우리나라에 설립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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