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62할매와의 재회

in #kr5 years ago

철우와 헤어진후 성윤은 곧바로 촛대바위 할매의 집으로 달려왔다. 전에 약
속했던대로 사탕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노인네와의 약속이라도 약속은 약
속이니까. 니가 언제부터 그랬냐.씨끄러.
"콜록콜록.."
할매는 방문도 열어 놓은 채 액자를 닦고 있었다. 잔기침을 하면서도 뭐가그
리 소중한지 정성스레 액자를 닦았다. 성윤은 뒤로 살금살금 돌아가 어깨에
손을 척 얹었다.싸가지하곤.
"할매!"
"아이고 놀래라. 애 떨어지겠다 이눔아!"
"요새 피임약 좋은것들 많은데 왜 애를 배냐?"
"땍끼 미친눔. 노인네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좀 무안하긴했다. 폐경기는 50년 전에 이미 왔을테고 100세를 바라보고 있
는 나이에 애는 무슨. 여태 살아있는 것도 기적인데. 지금 바로 관두껑 닫아
도 호상인데. 성윤은 전에 사다주기로 약속했던 사탕을 내밀었다.
"받으셔 츄파츕스."
할매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단게 땡기던 참이었는데. 진짜
애섰나.아무튼 사탕을 보니 반가웠다.
"할매.."
"왜 이놈아."
성윤은 얼마전 울릉도에서 포항으로 돌아가려던 중 바지끄댕이 붙잡고 늘어
지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일이 생각났다. 할매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으
면 그랬을까. 그때 단 며칠이라도 같이 있어주는 건데.노인네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좀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짠했다.지금이라도 더 잘해 주고
싶었다. 진짜로 해줄려고? 닥쳐.
"앞으로 이 사탕 일주일에 한번씩 택배로 올거야. 내가 그렇게 조치해 놨어.
그러니까 실컷 드셔. 역시 아들 밖에 없지?"
"써거질.언젠 내아들 아니라며?"
"내가 언제?"
"구라칠래?니가 저번에 내 아들 아니라고 우기면서 토낀거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그리고 내가 아들이야? 손자지.이 사진을 여태 가지고 있었네."
성윤이 쳐다보고 있는 액자사진 속에는 놀랍게도 할매와 어린성윤과 아버지
가 환한 미소를 지은채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노인은 사실 성윤의 친할머니
였던 것이다. 갑자기?
어릴적 아버지가 일찍돌아가시고 바람나 도망간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워준
친할머니.그런데 여태 그걸 숨기고 있었다. 천륜을 속이고 인륜을 져 버리고
경륜만 했더렸다. 옛날에. 이유는 단 한가지. 돈스코이로 얽히고 설켜 있는
지금,주위에 적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자칫 성윤 자신의 일로 인해 진주처
럼 할머니도 볼모로 잡힐까봐 걱정되서 그런거였다.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친
할머니에게 험한 꼴 안 보이려고 그래서 그런 거였다. 이일은 그래서 끝까지
할머니와 성윤 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이었다.효자났네.
"요눔아 피는 못 속이는 거여!"
성윤이 히죽 웃으며 말같지도 않는 소릴했다.
"피를 왜 속여. 헤헤"
할매는 성윤이 내밀고 있는 사탕꾸러미를 냉큼 가로챘다. 봉지를 뜯으려 했
지만 그조차도 힘이 달렸다. 성윤은 대신 봉지를 뜯어 정성스럽게 사탕을 까
서 할매 입에 다정하게 넣어주며 말했다.
"어디 아픈덴 없고?"
"이눔아, 힘이 남아 돌아서 알바뛸까 생각중이다."
"크크 노인네 말은 잘해 하여간."
할매가 좀 아까 기침을 하던 게 기억났다. 그때 그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았
다. 할매 건강이 너무 걱정 되었다. 기침엔 '판콜 에이'인데.광고찍냐.
(내가 진작 왔어야 하는건데 늙은 우리할매를 혼자 너무 오래 방치했네.)
사탕을 입에 문 할매가 사탕봉지를 마루에 내려놓고 뒤곁으로 사라졌다.
"어디가?"
"가만 좀 있어봐."
할매는 잠시 후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성윤이 잽싸
게 달려가 사다리를 낚아챘다.
"노인네가 이렇게 무거운걸 들고 다니실까."
할매는 다짜고짜 성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잠깐 어디 좀 가자."
"배고파. 밥 줘."
"이런 썩을.밥은 이따가 먹고 어디 좀 가자."
"아 어딜?"
"잔말 말고 따라와. 아참 잠수복 챙겨라."
잠수복 챙기라는 말에 성윤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10년을 졸랐
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여태 황금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던 할매였다. 잠
수복 챙기라는 말은 곧 황금에 대해 공개하겠다는 거나 같은 말이었다. 그말
은 또 한편으론 할머니가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아까 그
기침.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언능 약 사다드려 븅아.
"할매 진짜 어디 아픈데 없는거지?"
"이놈아 투잡 뛰어도 될 정도라니까. 자꾸 왜 그려?"
할매는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날이 갈수록 몸
이 무겁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심장으로부터 먼 팔다리가 먼저 뻣뻣해지며
돌처럼 굳어가고 있었다.심장도 멎게 되리라. 곧..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것은 하늘의 이치.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다
만 홀로 남게될 손주놈이 걱정되었다. 장가가서 애낳는 것까지 보고 갈려고
했는데.지나친 욕심인것 같았다.여자는 많았었는데 피임약을 너무 많이썼지.
피임약을 너무 써서 거시기에 피가 날 정도니 말다했지.
철부지 시절 황금에 눈이 멀어 있던 손주녀석.그때 만약 금을 넘겨 주었으면
아마 제명에 살지 못했으리라. 황금은 큰 행운을 주기도 하지만 큰재앙을 불
러 일으키기도 한다.그게 황금의 속성인 것이다.이젠 녀석도 세상 알만큼 알
고 지 앞가림은 할테니 됐다 싶었다.뜻밖의 행운을 제대로 관리할수 있을 만
큼 손주녀석이 성장한 것 같았다.전혀 아닐껄.
"잔말 말고 따라 와."
"그럼 엎혀."
성윤은 거동이 불편한 할매를 등에 업고 촛대 바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울릉도 저동 앞바다 남서쪽 3km지점/이른아침
성윤이 타고 있는 유인잠수정이 바다 위에 동동 떠있다. 잠수정 안엔 복잡한
기계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한쪽 구석엔 진주사진이 마치 부적처럼 붙어있었
다. 성윤이 모선에 있는 팀장,철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음향측정기 정상. 해류계 정상. 해저지층 탐사기 정상. 음파탐지기 정상. 해
상 자력계 정상. 모두 이상 없이 작동 중."
해양과학기술원과 성윤이 힘을 합쳐 이번에 발족한 돈스코이 인양팀은 성윤
이 총지휘대장을 맡았고 철우가 생물자원조사팀장을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암호명 '흑장미를 찾아라.' 잠수정의 안전상태를 모두 확인한 철우가 출발명
령을 때렸다. 꼴값떤다.
"수심400m까지 잠수!"
"OK 출발!"
성윤이 탄 유인 잠수정이 뽀글뽀글 기포를 내뿜었다. 그리곤 서서히 깊고 어
두운 바다 속으로 꿈처럼 빠져들었다. 졸지마라.
-모선 / 저녁
식사를 마친 성윤이 모선 한구석에 설치되어있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철우와 그의 조수 박양이 마주 서있었다.철우가 얼굴을 찡그리며 서
류에 열심히 체크를 했다.
"아씨 오늘 건진게 하나도 없네."
성윤이 어이없다는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물찾기가 그리 쉬운 줄 알아?"
"누가 쉽데? 말이 그렇단 거지."
"이제 시작이야. 갈길이 멀다."
"겁부터 나네. 이거 우숩게 봤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장난아니네.막막해."
"첨엔 다그래. 세상에 쉬운게 어딨니?"
갑갑한 마음에 성윤과 철우는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옆에 있던 조수 박양도
한대 피워 물었다.그녀는 부산대 해양환경학과 부교수로 있는데 이번탐사에
서 울릉도 해저의 식생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같이 합류한 터였다. 그녀는 치
아교정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물질이 끼어서인지 자꾸 손가락으로 교정기를
만지작대고 있었다.팀장을 맡고 있는 철우가 성윤을 바라보았다. 뭔가 좀 속
시원한 답을 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어쩌라고.
"좋은 수가 없을까?"
"글쎄 수심이 생각보다 깊네. 해류도 장난 아니고. 이거 일일이 확인하며 찾
아다니려면 시간 좀 잡아 먹게 생겼는걸."
"아 뭔가 일을 시작 할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트리거 이펙트. 일을 촉발시키고 스피디하게 전개시킬 수 있는 변수. 이들에
겐 그것이 절실했다. 성윤과 철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뒤로 돌아선 박양은 아
까부터 치아교정기에 껴있던 음식찌꺼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어금니 틈
에 낀 작은 고기덩어리가 자꾸신경쓰였다.입을 벌리고 본격적으로 찌꺼기를
빼내려는 순간 머리속이 하얗게 번뜩였다. 잘하면 뭔가 해결 할수 있을것 같
았다. 그녀는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저..이 방법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요?"
-다음날
모선에서 마이크를 켠 박양이 잠수정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성윤에게 자신
이 개발한 신기술을 재차 설명중이다.
"그렇게하면 될거같아요.준비되셨죠?"
"OK바리."
철우가 중간에 끼어들어 성윤에게 세부적인 사항을 설명했다.
"인근 바다에 금속성 물질을 찾아봤어 인공위성으로."
"인공위성?"
성윤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한 탐사를 해보는 것이다. 보
물건지는데 인공위성이라니.이거 생각보다 일을 크게 벌이는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부고위직에서 이번일에 깊게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철우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랬더니 총 일곱군데 나오더라. 박양의 교정기 빼고."
교정기는 스텐레스소재였지만 엄연히 금속은 금속.철우의 장난끼 섞인 말에
성윤이 맞장구를 쳤다.
"그건 왜빼? 박양이 무척 섭섭해 할텐데."
잠수정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일곱개의 점이 찍혀져 있었다.성윤은 신기술에
감탄했다.촌스럽긴.
"햐 별난 기술이 다있네.좋아 한번 해 보자고."
"일정이 빠듯해서 오늘부터 한군데씩 돌아야 해 알았지?"
"어떻게 하루에 한군데를 돌아. 미친 거 아냐?"
바다표면해선 해류와 싸워야하고 심해에선 수압과 싸워야하고 바닥의 진흙
도 썩션기로 대충은 걷어내야하므로 하루에 한군데씩 돈다는건 불가능한 일
이었다. 엄살은.
"소풍왔냐?그 정돈 해야지. 잔말 말고 찍어준 데로 가."
모선의 조정실에 앉은 철우가 자신의 모니터에 있는 7개의 점중에서 하나를
클릭하자 붉은색으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북두칠성이냐.드디어 첫번
째 목표지점이 정해진 것이다.
"알았다. 잠수시작."
성윤의 잠수정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스스르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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