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클롭스의 물음

in #kr5 years ago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폴뤼페모스.png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 <폴뤼페모스>. 이미지 출처)

너무 꼬치꼬치 묻지 말자. 너무 진지하게 요구하지 말자. 그것은 답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진정한 영혼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저 질문자가 요구하는 답, 사회적으로 으레 할 법한(해야 하는) 답만을 이끌어낼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걸 원한 거겠지만. 보이는 것은 메에메에 양과 염소밖에 없겠지만. 그래, 너는 올가미를 던지고 울타리를 치는 야만인일 뿐이다. 물음은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다. 물음은 자기와 같은 것들을 낳는다. 물음은 열려 있지 않다. 그것은 열기 힘든 무거운 바위로 닫혀 있다. 몸부림을 쳐봐야 힘만 빠질 뿐이다. 물음은 열어놓는 척하면서 형식을 규정한다. 그것은 철저히 권력이고 길들임이다. 그것은 열려 있다고 여겨지기에 더 깊숙이 파고드는 갈고리표고 낚시표다. 있을 수 없는 끈, 글레이프니르다. 울타리가 길들을 가리는 것처럼 물음은 많은 것을 묻는다. 퀴클롭스의 물음은 퀴클롭스를 낳는다.

진심만큼 진심을 배신하는 단어가 어디 있을까? 목적만큼 목적과 멀리 떨어진 개념이 어디 있을까? 꿈만큼 꿈을 짓밟는 형식이 어디 있을까? 진정한 것은 쉽게 말할 수도 알 수도 없다. 자기조차 말이다. 내 이름을 제대로 드러내고 내세우기 위해서는 섣부르고 어설픈 말 없이, 정신만을 쏙 빼놓는 올가미의 세례 없이, 그저 침묵 속에서 천천히 힘을 비축해야 한다. 나의 말은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를 비틀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에 대해 너무 많이 답하지 말자. 섣불리 단단하게 굳은 자신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을 소외시키지 말자. 자신에게 너무 많은 당위를 강요하지 말자. 게슈는 힘을 주는 동시에 두려운 저주기도 하다.

그러나 답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물음이라는 열린 형식을 내세우는 권력의 자장에서 자유를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가식 없는 자유를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퀴클롭스들은 언제나 무감각하고 무신경하게 묻고, 상대방이 가식 없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면 상대를 비웃고 불신하며 멀리한다. 퀴클롭스의 눈은 언제나 고정된 상대방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은 그것을 열려 있다고 말한다. 열려 있는 척 행세하며 진심을 요구하는 갈고리와 낚시의 세계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너무 많이 말한 탓에 입이 찢어질 것이다. 너무나 많이 만들어진 양심들이 충돌하며 소모될 것이다. 물음은 대답자 스스로 자신의 몸 속 깊숙이 권력의 형식을 심도록 한다. 튼튼한 울타리를 치고 그것을 자신으로서 추구하게 만든다.

필요한 것은 답도 물음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뜨거운 지적 자극의 불꽃과 차가운 고독이다. 필요한 것은 「너 자신을 알라」는 가리킴과 올리브나무다. 그래, 나는 아무도아니(outi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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