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은 진흙

in #kr6 years ago (edited)

쌍둥이1.jpg

지난 달 쌍둥이가 태어났다.
아내의 짐을 두 손에 들고 고위험 산모 분만실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수술 전 아내의 손을 꼭 잡았던 순간.
기도하는 장모님의 간절히 모아진 손.
수술실에서 나오던 아이들과의 첫만남.
수술 직후 마취에 덜 깬 아내가 어눌하게 뱉어낸 첫 말은, 아이들의 안부.
수술의 통증을 견뎌내던 아내와 산후 조리원에서의 첫 모자동실.
정신이 없이 흘러간 집에서의 첫 일주일.

매번의 찰나는 폭풍처럼 휘몰아쳐 정신을 못차렸지만
돌이켜보니 깊고 아득하다.

이제 침대에 나란히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이 추억은 진행 중이며 더욱 깊고 아득해지리라.

대학병원의 신생아실은 중환자실과 같은 층에 있었다.
나는 같은 층에 위치한 중앙 수술실의 대기실에서
중환자들과 산모들의 이름이 섞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아내의 상태가 "대기 중"과 "수술 중"으로 변하는 동안
죽음과 탄생이 번갈아 수술실의 문턱을 넘었다.

이윽고 아내의 이름이 불리며 간호사들이 두개의 보호용 카트를 밀고 나왔다.
나는 카트에 들러붙어 아이들을 살폈다.
카트는 간호사의 손에 밀려 신생아실로 향했고 장모님과 내가 뒤따랐다.
장모님은 짧은 복도를 걷는 내내 눈물을 닦았다.

수술 후 병동으로 옮긴 아내는 온전히 깨어있지 못하고 비몽사몽했다.
몸에는 이런저런 의료 장치들을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전투가 치열했구나. 기진맥진한 아내는 생동감에 바둥거리는 두 아이와 대비되며
나는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던 수술실을 생각했다.

밤 늦게 병동은 고요하고 아내는 잠들어 있다.
어디선가 조근거리는 TV소리가 들려온다.
내 의식은 밤이 새도록 흐리멍텅했고 탄생과 죽음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탄생은 찰나였다.
죽음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자신 삶도 지탱하기 버거운 허약한 아비로서
두 아이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지 못한 채
울고 웃고 아프고 사랑해야 할 많은 날들과
그리고 지금 이 탄생의 맞은 편에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밤새 이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을 생각했다.

생의 첫날을 맞이한 아이들을 위해 아비가 축복을 빌 수 있다면
그 신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오래 전 버렸던 신을 찾아헤매었다.

그 밤에 오래도록 한자리에 앉아있었다.


[커트 보네거트가 임종을 준비하며 쓴 기도문 ]

신은 진흙을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신은 진흙 덩어리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덕과 바다와 하늘과 별, 내가 빚은 모든 것을 보라."
한 때 진흙이었던 나는 이제 일어나 주위를 둘러 봅니다.
운좋은 나 그리고 운좋은 진흙
진흙인 나는 일어서서 신이 만든 멋진 풍경을 바라 봅니다.
위대한 신이시여!
오직 당신이기에 가능한 일. 결코 나는 할 수 없는 일.
당신 앞에서 나는 그저 초라한 존재일 뿐입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유일한 순간은
아직 일어나 주변을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한 다른 모든 진흙들을 떠올릴 때,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진흙들 대부분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 영광에 감사드릴 뿐.
진흙은 이제 다시 누워 잠을 청합니다.
진흙에게 어떤 기억이 있을까요.
내가 만나봤던, 일어서 돌아다니던 다양한 진흙들은 얼마나 놀라운지.
나는 내가 만났던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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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났나봐요😊😊
둥이는 처음에 손이 많이 가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기기 시작하면 가장 좋은 친구가 됩니다~
언제나 든든한 내편이랄까요~둥이 맘이라 제 말 믿으셔도 됩니다 ㅎㅎ
아이들과 행복하시길 바래요~

둥이맘이시군요!! 둥이맘은 무조건 팔로우 ㅠㅠ
축하 감사드립니다. ^^

축하합니다.!
예쁘게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시길...
오늘 이글에 남긴 감동 꼭 기억하시면 좋겠네요 ㅎ

뚜벅이 여행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키우겠습니다. ㅋ

이토록 찬란한 둥이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더불어 더욱 깊고 짙어질 카비님댁의 행복을 제가 믿는 신께 기원합니다

도담랄라님. ㅠㅠ 둥이들을 그렇게나 키우시다니... 정말 존경스럽네요. 그렇게 육아하면서 글도 올리시고... 육아맘들 대단하세요.

둥이 어머님의 축복을 낼름 받아먹습니다. ^^
얘들아~ 우리도 행복하자~~~

두 생명의 탄생이 카비님을 아빠로 만들었네요^^

넵!! 저 아빠되었습니다. ㅎㅎㅎ

찡여사님. 항상 감사해요~

거 참 방정맞네 ㅋㅋㅋㅋ

어허이~~~ 거 참... 경망스럽기가...

하... 촐싹거리는기 둘이라니

축하드려요 카비님! 세상에서 가장 축복스러운 날이었군요!>_<
복덩이들이 카비님께 행복만 가져다주길 바래요~

크리스정님. 축하와 축복 감사드립니다. 날려주신 축복이 제게 이루어지길 또한 기도하겠습니다. 크리스정님도 항상 평안하십시오.

축하드립니다. 둥이 아버님.
날마다 기쁘고 날마다 힘드시겠죠.
그래도 얼마나 경이로운 일입니까.

흐흐흐 진짜 힘드네요. ㅋㅋㅋ 쌍둥이 잠들었을 때 쪽잠자는 아내가 안쓰럽군요. ㅠㅠ 하지만 그만큼 보람있고 의미있는 나날입니다.

선물을 쌍으로 받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네네. ㅋㅋ 그 선물이 지금 울고 찡찡거리고 새벽에 똥싸고 ㅋㅋㅋ
육아가 만만치 않군요. 뭘 상상했던 그 이상입니다.
카위파이님 축하감사드립니다. ^^

정말 어메이징한 경험이죠! 와우 축복이 배가 되네요~ 축하드립니다.

라이드팀님 감사합니다. ^^ 축복이 두배!!! ㅋㅋ
육아 노동은 몇갑절이군요... ㅠㅠ

그래도 행복합니다!! ^^

그날의 감동의 느낌을 글로 전해지는군요.

코팅맨님. 감사해요. ^^ 쌍둥이들 얼른 커서 같이 아두이노로 로봇만들면서 놀고 싶군요. ㅎㅎ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제 마니 바빠지시겠네요..ㅎㅎ
마지막 기도문도 너무 멋있네요. 이런 상황에서 저런 글이 나오는게 부럽.ㅎㅎ
정말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둥이 아버님~~ ^^

욜~~ 카브님. 감사감사 ^^

이제 마니 바빠지시겠네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ㅎㅎㅎ ㅠㅠ
쌍둥이... 주어지면 감사한 것이지만...
굳이 바랄 필요는 없...

행.. 행...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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