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17. 잊히지 않는 마음이 부른 오류 : @dianamun @yslee

in #kr6 years ago (edited)

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17. 잊히지 않는 마음이 부른 오류

글 : @dianamun
그림 : @yslee

살다 보면 문득, 아주 문득,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봄이면 새싹이 나는 것처럼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있다. 내가 그것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아주 작은 소년같이 말이다.

여행을 앞두고, 예약정보를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 이메일을 확인한 날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이메일함은, 청소도 제대로 못한 집처럼 지저분했다. 그런 와중에 아주 오랫동안 부르지 않아, 잊어버린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영문으로 되어있는 그의 이름을 보고, 또 보았다. 그가... 맞나?

그건, SNS 상에서 보내온 친구 요청 메일이었다. 그리고 벌써 반년 전에 보내온 메일이었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친구 수락 버튼을 누르고 나는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픈 마음에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다음 화면에서는 오류로 인하여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불러올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이메일로 돌아가 수락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래도 회원 탈퇴를 했기 때문에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은 화면이 지루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원래 그는 SNS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 사용하고 있다가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다고 느끼면 회원 탈퇴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그래서 그를 더 빨리 잊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세상에 없는 사람 같았고, 그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를 소개하여 준 친구하고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가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가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자, 생각보다 빨리 잊게 되었다. 보고 싶어도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오래 만나서가 아니었다. 그를 잊지 못하고 오랫동안 힘들었던 이유는, 그가 내 인생에 '처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만들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황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서 모조리 사라지는 기분이라서 말이다. 내 인생에 처음이라는 단어 없이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만들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서 붙잡고 싶었고, 치열하게 붙잡았다. 그를. 그리고 내 '처음'을.

그와 나는 한 번도 사귀면서 결혼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미래를 한 번도 꿈꾸지 않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았고 나는 그에게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헤어졌고,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은 그렇게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와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모두 소진해갔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파하는 것도. 모조리 말이다.

그가 마지막에 했던 프러포즈를 기억한다. 그는 유학 중이었고,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나와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우리가 결국은 헤어질 거라는 생각에 아팠다. 내가 아니었다. 그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나와 같은 사람'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못 가서 헤어졌다. 그는 나를 떠났고, 그리고 더 이상 내가 보내는 이메일에도 회신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와의 추억도 힘을 잃어갔다. 그도 나를 잊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거리면서 아파왔다. 취직을 했을 테고,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되어있거나 혹은 누군가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우리가 언제 어느 순간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가 알아보지 못한 채로 지나쳐 버렸으면 좋겠다.

그는 이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내 인생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 SNS 초대 메일은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시스템 상의 오류이거나, 잊히지 않은 마음이 부른 오류 말이다.

사랑했고, 헤어졌고, 잊었고, 사라져간다.


@yslee 작가의 시선

잊히지 않는 마음이 부른 오류.jpg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우연히 발견한 그 사람의 작은 흔적 하나에 다시 재생되어버린 옛 추억을 표현했습니다.

.
.
.

구매 링크 : 나는 네가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리디북스 : https://goo.gl/tuFf4Q
교보문고 : https://goo.gl/HvBm29
예스24 : https://goo.gl/dvA112
알라딘 : https://goo.gl/xne4ej
반디앤루니스 : https://goo.gl/bGXHt0
리딩락 : https://goo.gl/pYrzHQ
인터파크 : https://goo.gl/fgUVhL
네이버 : https://goo.gl/at8Mj1

Sort: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보팅 맞팔 신청하고 갑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Coin Marketplace

STEEM 0.33
TRX 0.11
JST 0.034
BTC 66407.27
ETH 3219.07
USDT 1.00
SBD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