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끄적끄적 밀린 일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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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때마다 적어 놓은 밀린 일기입니다.

1

비가 오려나보다. 아침부터 하늘은 비를 내리기 위해 준비중이다. 바람이 신이 나서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그릉그릉 울고 있는 천둥소리를 제일 먼저 데리고 왔다. 그 소리를 들은 새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해피가 무서워서 내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어둑어둑 흐려진 하늘엔 구름인지 햇빛인지 얼룩덜룩 붓질한 흔적만 남아 있다. 비는 아직 오지 않고 바람만 엎치락뒤치락 드나든다.

2

라디오를 해볼까. 그래도 목소리는 나쁘지 않은데. 어릴때 동화구연대회를 4년간 참가했었다. 지금 나의 목소리와 말투는 동화구연을 하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애기스럽다고 해야 할까. 좀 오버스럽다고 해야할까. 그땐 박영남같은 만화영화 더빙성우가 하고 싶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책 읽기를 많이 시키셨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친구들이 우~하는 야유와 함께 키득거리곤 했었다. 모두들 그렇게 내가 책읽어주는걸 부담스러워하고 재미있어 하고 재수없어 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난 뭘 이야기하면 좋을까? 책? 영화? 음악? 제대로 아는게 없다... 노래를 할까? 미쳤군. 아! 녹음장비! 장비를 사야겠군. 역시 장비에 또 꽂혔다. 장비를 마련하는 일은 늘 신난다. 구글링 열심히 해야겠다. 구글링도 엄청 신난다. 장비에 미쳐 라디오를 하게 될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장비를 구입할 돈이 없다는거다. 오! 천만다행이다. 이웃들의 귀를 구제할수 있게 되었다. 나의 지갑사정에 감사한다.

3

그래도 말야. 배는 좀 고파야 다이어트지. 늘 배불배불한게 다이어트라고는 볼수 없지.

4

노래연습곡을 골랐다. 피아노 악보도 찾았다.목소리를 녹음해보니 애기개미 목소리같다. 에게! 성대를 동그랗게 여는 연습을 해야겠다. 찌그러진 발음과 울림이 들린다. 아! 아! 아! 그러고보니 얼굴 근육도 경직이 되어 있다. 거울을 보고 표정 연습, 웃는 연습, 입을 크게 벌리는 연습과 목구멍 여는 연습을 동시에 해야겠다. 내 주름진 성대를 다림질 해줘야겠다. 이참에 얼굴도 확 다림질해버리고 싶긴하다.

5

체력이 생각보다 잘 안 올라온다.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근력운동을 시작했는데 작년에 비해 체력은 60%, 근력은 30% 정도 회복한것 같다. 언제 돌아오려는지 막막하다. 목표치를 조금 수정해볼까는 유혹들이 불끈불끈 올라온다. 운동시작한지 벌써 한달이 지났는데 살도 안 빠진다. 할수 없이 이두가 살아난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6

이거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는 모모씨의 삶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은 딱히 꿈이라는 게 없다는 그의 말에서 내 인생을 보았다. 그래서 청춘인게지. 이유야 어쨋든 동기야 무엇이든 하고 싶은게 있을땐 해보는 거다. 아무 걱정없는 종자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살아보니 하고 싶은게 많은 때만큼 행복한 시기는 없는것 같다. 하고 싶은데 하지 않는건 인생에 대한 배반행위이다. 여건에 맞게 하면 되고 잘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잘하는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못할 일 또한 없다. 오늘도 나는 무슨 재밌는 일이 있나 기웃거려 본다.

7

출근준비를 하면서 방귀를 길게 노래처럼 뀌는 그가 미워서 뭐라 한소리를 해본다. 예의 좀 지켜줄래? 그한테는 어떤 이야기든 방귀가 등장하면 제일 재밌는 이야기가 된다. 유투브 영상에 방귀, 똥만 나오면 혼자 눈물 찍어가며 자지러지게 웃곤 한다. 좋아하는 줄 알았지. 계면쩍게 웃으면서 은근 뿌듯해 하는 저 얼굴에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하고 수정버튼을 누르고 싶다. Remove fart.

8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어서 오이를 한바구니 사왔다. 자, 이제 뭘 하면 되지?

9

언니부부의 사진을 받았다.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서 시도해 보았는데, 이쁜 배우들만 그리다가 일반인을 그리려니 너무 어렵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수가! 연예인은 역시 연예인이다! 우리 언니는 어릴적에 동네에서 소문난 미인이어서 서로 며느리 삼고 싶어할 정도였는데도 일반인은 일반인이다. 어릴때 내가 지나가면 동네 어른들이 이쁜 언니 어디 있냐고 묻곤 했었다. 세월이 언니를 비껴가지는 못했지만 나보다는 훨씬 젊고 이쁘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이쁜 울 언니를 너무 이쁘게 그릴수도 비슷하게 그릴수도 없는 봉착에 빠졌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의 그림엔 그 화가의 모습이 녹아 있다고 하던데, 나의 그림에도 내 모습을 어느정도 담고 있는것 같다. 그려놓고 보면 어딘지 다 비슷하고 굉장히 낯이 익은 모습이다. 마치 거울에 비친 천양각색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10

이곳에서 교류하며 지내는 사람이 달랑 둘인데, 그중 한명이 하와이로 이사를 간다. 오늘 송별회를 했다. 4년 후에 돌아올거라고 했다. 다른 한명은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돌아오지 않을거라고 했다. 그럼 난 내년부터 3년동안 혼자가 되는건가. 음...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내가 하루살이가 되어
억새 끝에 매달려 있을지라도
괜찮다

혹은 불타는 노을이
구멍 뚫린 가슴에 밑줄을 긋고
숨통을 자맥질할지라도
괜찮다

바람이 풍문으로 달려와
나를 도살하는 눈부신 칠월의 반란도
다 괜찮다

다만 너희들은 여름철새처럼
이 칙칙하고 아득한 날들과 작별을 고하거라
나는 연(鳶)줄에 목을 꿰어서
조각난 구름의 파편에 혈서로 투항할지니,

혹여 상심한 낮 달이 목을 놓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이 아우성 하거든
잊혀진 내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주거라

억새와, 노을과 바람이
절명한 내 초라한 육신 거두어
푸른 햇살로 유린하고 간음할지라도,
그것이 정녕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최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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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ㅋㅋㅋㅋ

책을 또박 또박 잘 읽었어요?.
야유와...박수를 동시에 받았으니 ㅎㅎㅎㅎ

좀 느끼하게 읽죠. 성우처럼 ㅋㅋㅋ

예빵님 이쁜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ㅋ

야유를 부르는 목소리라니까요 ㅋ

ㅋㅋㅋㅋ 이웃들이 구제받은 날이군요! ㅎㅎ
근데 의외로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지셨을듯... 아이땐 부러우면 더 그렇게 하잖아요! 아닌가! ㅎㅎ
집에 방귀대장이 함께 살고 계시군요! ^^

구제받는 날이었죠. ㅋㅋㅋ 울집 방귀대장은 귀엽지는 않아서 ㅠㅠ

괜찮다괜찮다!! 제시카님 500m안에 좋은이웃 만나실거예요^^

그럴일은 없지만.. 혹시 또 모르죠 ㅎ

조만간 채널스팀잇 같은데서 뵙겠군요.. 아님 디튜브...
이것 저것 하시면서 못한다 하고 다 잘하기 없기입니다....ㅋㅋ

채널스팀잇은 뭔가요? 그냥 재미나게 놀기정도로 놀려고요! ㅋ

열심히 스달 모으셔서 라디오 장비 구하시는거죠?

길게 노래처럼.. 대(단한)장이군요 ㄷㄷ

에빵님 구역인 생활반경 500m 내에 새 이웃을 찾으세요 ^^

스달 가즈아인가요 ㅋㅋㅋ 대장인 그분은 오늘도 흔적을 남기고 출근하셨습니다 ㅠㅠ

<지금 만나러 갑니다> 프로젝트 계획중인데.. 에빵님도 넣어드려야겠네요. 3년 내로. 어디 계신지 몰라서... 오세아니아 쪽 아니십니까? ㅋㅋㅋ

저는 빼주세요! 부끄러워서 안되겠습니다. 기껏 만나러 왔더니 몸이 배배 꼬일겁니다. ㅋㅋㅋㅋ

아, 이렇게 절 버리시나요? 밥 잘 사주는 힘쎈 예쁜 누나님? ㅎㅎㅎ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받은 오빠가 아니라고 부정했더니 이러시기 있긔? 없긔?

팟캐스트 하시는건가요? 차가 의외로 방음이 잘 되어서 녹음실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ㅋㅋ

오!! 그렇겠네요. 언제나 좋은 정보를 툭 던져주시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헬스하는데 확실히 운동한 날은 일이 많아도
체력이 바쳐주더군요 꾸준히 해서 체력올립시다 ㅎㅎ

체력 잘 올려서 놀러다니려고요. 무엇보다 먹으려고 운동합니다 ㅋㅋㅋ

팟캐스트를 시작해보시는건 어떤가요? 장비도 크게 필요없고, 테마만 잘 잡으면 괜찮을 것 같아여. 그리고 방구개그는 여섯살 우리 둘째가 넘어가는 개그인데 ㅋㅋ
해외 살다보면 좋은 사람은 다 떠나더라구요. 항상 하는 말이, 남겨지는 내가 마음 아파 우울하더라구요~~

그게 테마가 없어요. 가까이 살면 북키퍼님 모셔다가 책이야기 좔좔좔 할텐데요 ㅎㅎㅎㅎㅎ 전 할말도 없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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