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게 만드는가?

in #kr6 years ago (edited)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게 만드는가?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인 견해를 담은 글임을 밝힙니다.
다른 의견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D)


흔하디흔한 결혼 서약의 클리셰,
"신랑(신부)는 OOO을 아내(남편으)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며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싶은 이 이야기는 사실 좀 무서운 말이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당신의 서약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원하지 않았던 극하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당신의 한결같이 한 사람을 사랑해 줄 수 있는가?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끌고 나가보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 되고 만다.

"음. 그러니깐 네가 어떤 사람을 결혼을 생각할 만큼 좋아해.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실직했고 평생 일을 할 수 없게 돼.
눈이 멀거나 다리를 못 쓰거나 평생 네가 간호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너의 마음은 변하지 않아?"

""꼭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각오를 해야 결혼할 자격이 있는 거야?"

이게 내가 처음 했던 대답이다.

"세상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그다지 와닿지 않는걸... 보통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깐...

그런데 나는 못 해.
내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직업적으로 안정과 확신이 있는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닌걸
그런 상황이면 결혼은 너무 버거운 일이 되어버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게 오히려 무책임한 것 같은데"

"그건 너무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야.
보통 사랑이란 건 그렇지 않데. 사랑한다면 희생하는 마음이 당연한 거래. "

사랑과 희생이라...

그런 관계를 찾자면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희생하며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신에게 희생적일 수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너무도 불완전하기에 오랜 기간 돌봐주어야만 하며 책임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태어난 아이에게 네 몫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다.

속세에 벗어난 종교인에게 인류애에서도 희생을 찾을 수 있다.
아무 보답도 이득도 바라지 않고 온전히 남을 위해 나의 것을 다 내주고 나의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것은 고결하고 존경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평범한 남녀 간의 관계에서 '희생'이라고 의식할만한 관계가 건강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지금보다는 어릴 적 나는 희생에 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듯 사람의 마음과 외적인 조건을 분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에서는 겉모습, 능력, 조건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본질과 진심이 전부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늘 언제나 사랑한다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3년간 만난 사람이 있는데 첫 만남에 나는 학생이고 그 사람은 직장인이었다.
만난 지 약 반년 후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얼마 후 직장인이 되었다.
그 후로 1년간 단 한 번도 불만이 없었다.
아껴 쓰긴 했지만, 데이트의 상당 비용은 내가 내게 된다.

1년 반쯤 지나자 불만이 하나둘 꽃핀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다.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이 관계에 불만이 생긴다.
2년 후, 나는 지쳤다. 다시 경제적인 건 상관없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죄책감을 뒤로 한 채 일방적으로 그 관계를 끝내버렸다.

A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었고 매력적이었으며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확신과 믿음이 있었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힘이 엄청났다.
그 사람의 미래를 응원해주고 싶었고 그 사람의 꿈을 이루게 해 주고 싶었다.
얼마 안 되는 내 전 재산과 시간과 마음을 그의 꿈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두 주었다.
내 삶의 가장 강렬한 6개월이었고 그는 그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난 망신창이가 되고 마음이 다 고장 나버렸다.
그 후로도 6개월을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만큼 암흑기를 겪게 된다.
너무 사랑해도 유지할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과의 생활이 내게 독과 같았기에 그 관계를 울면서 강제로 끊어냈다.

이런 경험들 이후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관계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나의 희생으로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오만이다.
그 이후에도 한결같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아무 원망도 미움도 없이 애정이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일은 나 같은 범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그런 무거운 일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사랑에 필요한 건 희생이 아니라 '배려'다.
모든 게 내 맘대로 입맛대로 할 수 있는 관계는 단 하나도 없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관계 역시 없다.
혼자 사는 것처럼 완벽히 잘 맞고 편안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제약이 생길 수 있고 양보를 하고 타협을 할 일들이 많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서로가 대화할 수 있고 일상적인 수준에서의 일이다.
이런 타협들은 서로가 배려만 해도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충분히 풀어내 나갈 수 있다.
꼭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진 않다.

본인의 일상을 뒤흔들고 삶을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없을 만큼
나의 삶을 제쳐두고 상대방만을 위한 노력을 강요받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좋은 것들을 일방적으로 포기하고 내줘야 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물론 살다 보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울하게 맞는 불행들이 찾아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암'같은 병에 걸린다든지(생각해본 것 중에 유일하게 와 닿는 경우) 유전적인 질병 같은 경우의 일.
그러한 경우에는 당연히 동반자로서 함께 그 불행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위로해주고 힘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경우에도 함께 고생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것일 뿐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상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니깐 희생하는 사랑은 있을 수 있다.
그 중엔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고 경탄할 만 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힘겹게 당연히 사랑하기에 희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희생이 없어도 사랑을 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나 더 큰 행복을 만드는 사랑을 하기 바란다.
온전한 하나의 행복을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혼자보다도 못한 행복이라면 굳이 둘이 만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희생 없이 많은 사람이 사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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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스팀잇 생활하시나요?
무더위야 가라!!!!

빛같은 응원 짱짱맨님 감사합니다 !!

다음 회가 궁금해서... 멕시코에 오래 머물렀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얼마 머물었다고 했더라... 하면서 고물님의 첫글부터 보다가... 헛... 이런 글을 쓴 줄도 몰랐네요.

제가 얼마전 말한 '아이'가 했던 말 중에 비슷한 말이 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꺼내볼게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넘 많은데 천천히 할게요. ^^

그리고... 글 너무너무 잘 쓰시네요.

와 이 글 스팀잇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썼던 글인데 외면 받아서 ㅋㅋㅋ 스팀잇에는 이런 글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하님이 읽어주시니 새로운 생명을 얻었네요. 이미 쿠바노 시리즈 이전에 쓴 몇 개의 글만 읽어도 결말은 알 수 있죠^_^; 생각보다 인터넷은 타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하님 덕분에 감동받네요.

저의 작가님이자 스팀잇 이웃이자 사부이자 독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D 남은 이야기 천천히 해봐요!

링크 다 저장해두세요. 5개월이 지난 글은 스크롤 내려도 안 보여줘요. 글이 사라진 건 아니고 기본화면에 보여주지 않을 뿐이라 링크 저장해두면 글을 쉽게 찾을 수 았어요.

저 덕분에 감동이라니 기분이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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