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그

in #kr6 years ago (edited)

나는 그녀가 푹 자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 했다. 아파서 잘 수 없었다. 아픈 곳은 한 두 부위가 아니었으며 뼈마디까지 쑤신다는 말은 그녀의 상황에 매우 적합한 표현처럼 보였다. 초저녁부터 눕지만 도무지 몸을 가만히 두지 못 한다. 끙끙대고 앓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기도 하고 끓이고 있는 사골 국물 때문에 부엌을 다녀오기도 했다. 내가 가면 겨울에는 붕어빵을 20마리씩 사오시곤 했다. 악에 받쳐서 사시는 분, 매일 울고 계속 욕을 하고 줄담배를 피우시며 죽고 싶다는 말씀만 하시던 분인데 나에게는 흔한 핀잔조차 주신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고 남편은 바로 6.25에 참전했다. 1년 후에 사망 통지서가 왔고 그녀는 그래도 시집에서 빠져 나가지 못 하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사망통지서가 도착한지 3년 후에 남편이 살아 돌아왔다. 무뚝뚝하고 공감능력은 전무하며 효자인 남편. 그녀는 출산하고 몸조리도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시부모와 이 부부가 큰 방 하나에서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상상도 못 하겠다. 집에서 시내버스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논과 밭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 오는 길에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고 해도 못 들은 척 하던 남편과 평생을 사셨다. 2010년 겨울의 어느 날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하셨다.

"아무리 바빠도 가서 이틀 자고 간호해 드려라"

원래도 아빠 말을 어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 말을 어기지 않은 것은 평생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해야할 일 중 하나는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이었지만 한사코 거절하셨다. 결국 이틀 뒤에 엄마가 와서 갈아 드렸다. 얼마나 찝찝하셨을까.. 나보고 책을 편히 보라고 병원 침대 머리맡의 조명을 켜주셨다. 그녀는 병원 침대에서도 역시나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다녀가고 2주가 채 되지 않은 새벽에 연락을 받았다. 장례식장엔 주로 아빠와 엄마 손님이었다. 노인들은 그나마 할아버지 지인분들 이셨다. 온전히 할머니의 손님은 누구일까, 살펴 보았지만 나는 찾지 못 했다. 화장을 해달라는 것이 할머니의 바람이셨다.

할아버지는 이틀 전에 치매 검사를 받고 오셨다. 하루 전에 다녀간 나에게 전화를 하시더니 요즘 왜 이렇게 안 오냐고 하시는 말씀때문에 알았다. 나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는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할머니 말씀에도 못 들은 척 뒷짐지고 앞에서 걸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 신발 뒷굽을 구겨 신고 터덜터덜 따라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있다. 보지도 못 하고 말로만 들었던 장면인데 생생하다. 나는 그 장면때문에 할아버지를 할머니 이상으로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두 번 뵙고 오는 것으로 다른 손자들보다 효도한다고 자위하던 내게 할아버지의 그 전화는 충격이었다. 당장 이기적인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이보다 더 어떻게 해드릴 수 있을까' 충주로 모시고 오자고 엄마한테 이야기 했다. 문제는 엄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죽어도 이 집에서, 내 방에서 죽겠다는 할아버지의 태도는 완강하셨다. 나는 몇 일간 내 글을 쓸 수 없었다. 낭만에 대한 글을 하나 써보려고 했었는데 머리가 하얗다. 대회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서 어디에도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부서져 버린 이 느낌을 하소연 할 곳도 이 곳 뿐이다. 할아버지가 기억을 잃어 가시는데 왜 할머니 생각이 더 나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아프신데 왜 할머니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기저귀를 못 갈아 드린 일을 후회하진 않지만 내가 할머니께 해드린 일이 뭐가 있었나 싶어 할아버지께 할만큼 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크게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그 정도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나도 적정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만 하겠지. 속이 참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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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이라는게 무섭습니다. 또 의무나 의리, 책임감 이런것을 떠나서 연장자분께 응당하여야 할 일이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참 힘들지요. 사실 사람관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제일 먼저이지요. 그렇지만 또, 그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마음먹기 나름이라 마음을 내는 것이 먼저이기도 하지요. 꼭 가족이 아니라도 이성이든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특히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한다라기 보다는 할아버지와의 인연때문에 그래서 거기에 덧붙여진 할머니와의 추억까지도 자신에게 발생하는 마음에 영향을 주기때문에 거기서 생기는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저는 자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의 관계속에서 최종적으로 남아야 하는 것은 자비심인 것이지요.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있다는 말씀이고요. (제가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요. 제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기때문에 자비심을 낸다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지요. 그렇기때문에 평생 연습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결국에는 나아닌 타자(할아버지/가족이라는 이름을 떼어냄)에 대하여 고통을 동참해주고 덜어내 주려는 마음을 연습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이지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집착심과 자비심과는 엄밀하게 말하면 차이가 있지요. 모두들 집착심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지요. 이성, 가족, 원수, 이웃, 모두에게 자비심을 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데, 그 시작은 가족부터이겠지요. 특히 연세드신 할아버지에서 부터일수도 있구요. (표면적인 행동은 의무감에 의한 행동이지요. 무정한 행동이지만 사실 무정한 행동이라도 계속 마음을 내다보면 이것이 자비심어린 행동으로 발전되는 것도 같습니다. 이 역시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도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종자이니까요. 그냥 가든님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서술하고 정리할 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글에서 표현한 것보다 실제로는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깊습니다. 예상치 못 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호들갑 떨었지만 바뀔 것은 크게 없습니다. 제가 한 번 더 찾아 뵙고 하루 더 자고 오려고 합니다. 피터님의 말씀처럼 자비심을 위한 노력일 수도 있고 진정한 애정을 밑바탕에 두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를 위한 일이 무엇이 더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어쩌면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그 행동으로 실현되는 것이니까, 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금과옥조를 전해주시니 감사가 깊습니다! ^^

버스에서 글 읽고 눈물이 나버리네요.
전 이제 조부모님 중엔 친할머니 한분만 남으셨는데 조만간 할머니 뵈러 가야겠어요. 휴

조만간 뵙고 오신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듯 합니다.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가족이니 안고가야겠지요...
앞으로는 가정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네, 글을 읽고 제 마음 헤아려 주시니..너무 감사합니다..^^

다 잘될거에요~^^

할아버지 할머니 삶은
사실 그 역사를 어느 정도 안고 있다고 해야겠지요?

지금 상식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쓰린 속을 잘 다스리시고
할아버지하고도 언젠가는 화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게 할머니가 바라는 바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사실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저도 그렇지요.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일을 찾고 자주 뵈러 가려고 합니다! 개인사가 담긴 글..읽고 신경써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

지금은 가장 볼품없는 외식이 짜장면이지만~
불과 20년전만 하더라도~
짜장면은 1년에 한두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였죠?
오죽하면 노래로도 나왔겠습니까?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자장면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던 때는 아주 예전은 아니었지만..긴 세월을 살아오신 할아버지께는 외식의 의미가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부족한 글 읽고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힘내세요! 가든님~

네! 힘을 내야죠~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습니다. 생활에서도, 할아버지께도! ^^

저는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기에 그저 어른들의 말로만 전해들었었죠. 돌아가신 할머니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로 갖은 고생을 다 하셨고 어릴 때 그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어린 나이라 요강의 역할은 알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일지는 상상할 수 없었죠.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그 세월을 어떻게 견디셨을지...군대 1차 정기 휴가때 놀기 바빠 하룻밤도 할머니 간호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2달 뒤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차량 점호할 때 받았었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신다는 건 할머니께서 지켜보고 계신 것 아닐까요. 그래도 가든님이 잘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 글과 제 상황에 진심으로 감정을 이입해 주시니..위로가 되고 마음에 울림도 받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잘 할 것이라 믿어주시니 책임감도 더 생기고 동기부여도 됩니다. 이터널님이 그렇게 봐주시는 시선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중학생 때 할아버지 임종을 지켜드렸는데 사실 지킨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작은 방에서 저는 자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큰 신음 소리도 없이 돌아가셨죠. 제가 자느라 못 들은 걸 수도 있구요. 찡그리신 채 돌아가신 얼굴이 생각나네요. 쪼그려 계신 채로 굳어버린 몸을 팔이며 다리며 펴 드렸습니다. 어른들께 연락드렸더니 저보다 더 당황하시더군요. 꼬장꼬장 하셨지만 손주들에게는 잘해주셨어요. 가든팍님 글 보다 보니까 저는 그때 할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지금 우리 세대의 간극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그 분들과 얼마나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었는지..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 경험을 적어 주신 것 뿐인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어떤 기억을 떠올려 주신 것만으로도 실제 대화를 나눈 기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요~ 마음아프게ㅜㅜ 가든님은 너무 좋은 손주녀석인걸요:::

누님이 어떤 마음으로 댓글을 적어 주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누님 글을 그렇게 읽는 것처럼 누님도 제 글들을 읽어 오셨고 그 어떤 분들보다 저와 할아버지의 관계나 상황들을 잘 알고 계실테니까요..누님이 저를 보고 좋은 놈이라고 해주시면 저는 좋은 놈입니다. 좋은 녀석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누님의 따뜻한 마음을 언제나 본받으려고 합니다.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누님..! ^#^

지금의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이 맞지 싶으면서도,
또 그렇게들 지내는게 당연하던 시절이라고 한 들, 사람 마음이라는게 초합금이나 티타늄도 아니고 말이죠...저도 비슷한 이유로 외할머니에게 더 애틋한 마음같은게 컸어요.물론 외할아버지도 좋아했지만요.

의학이 그렇게나 발전했다고들 하면서 왜 암이랑 치매는 아직도 정복 못하는지 답답하네요.

주말 잘 보내셔야 할텐데 먹먹하시겠군요.그래도 여기 풀어놓으시니 조금은 가벼워지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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