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私談)3

in #kr6 years ago (edited)

순간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진심은 '긴 시간동안 무언가에 대해 변함없이 충실하거나 혹은 무심하거나'로 증명 또는 확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찰나의 느낌을 진심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요즘 자꾸 생각나는 사람과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 사람과 나는 술집이나 나이트에서 만난 사이는 아니다. 우리는 내가 일하던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나보다 연상이었고 학원에 애들 가르치러 오는 사람이 호피무늬 치마를 입고 온 것을 보고 호기심과 반감이 함께 들었다. 대체 원장이 무슨 생각으로 그 사람을 뽑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처음엔 경계했다. 왜냐하면 당시 사귀던 아이를 내가 일하는 학원에 취직 시켰기 때문에 내가 다른 여자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와 내 여자친구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A)과 또다른 여자선생님까지 네 명은 친해졌고 우리는 매일 술을 마셨다. 고3 학생까지 수업이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일과가 9시나 10시쯤 끝나도 학원 근처 커피숍에서 12시까지 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매일 매일 술을 마셨다. 그렇게 보낸 1년은 내 기초대사량과 신체리듬이 다 무너지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지만 또 그 때만큼 즐거웠던 때도 내 인생에서 더 없었다. A와 나는 서로 매우 예의가 발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더 친해져도 서로 흐트러짐 없었던 예의지킴이 사실은 부자연스런 구석이 있었다. 1년을 어울려 다니며 놀다가 흩어지고 다시 6개월이 지났을 때는 네 명 중 아무도 학원에 나가지 않고 있었고 나도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였다.

"나 xx바에서 일해요"

라고 연락이 왔다. 학원에 나오기 전에는 영어 유치원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 이번엔 바(Bar)라니..하지만 그 것도 썩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언제 가면 편해요?"
"오늘이라도 와요. 새벽에"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바였고 나는 처음 가는 곳이었지만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1년 반만이었지만 우리는 하루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우면서 낯설지 않았고 그 상황이 긴장되면서 설레지는 않았다. 오늘은 평일이라서 3시 반이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평일이니까 3시 반에 나가면 술 마실 곳이 있을까?

"우리 집에 햄스터가 많아. 구경하러 갈래요?"

이렇게 구차한 제안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차라리 원나잇을 할 때는 '같이 있고 싶다'고 직접 말하거나 '부모님은 6시간 전부터 너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고 잠드셨는데 집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나?' 하는 식으로 드립을 쳤었는데 오래 알던 사이라 노골적이거나 드립식으로 말을 하기가 양쪽 모두 애매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술과 안주 거리를 사고 집에 가서 오래 알던 사람과 밤을 같이 보냈다.

"저는 쌤이 어떻게 할지 참 궁금했어요."

내가 자신과 스킨십을 할지 안 할지가 집에 따라오면서도 엄청 궁금했다고 말하기에 나도 꼭 의도가 있어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저녁이나 새벽에 우리집을 방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2012년이다. 올림픽 경기가 티비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더니 다시 몇 달 후 결혼을 했다. 지금은 아이가 둘이다. 우리는 한번도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카톡을 가끔 나눌 때면 여전히 존대말을 쓰고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게 예의 바르다. 나는 그 사람이 좋다. 그 사람도 날 좋아한다. 그 사람이 결혼한 후에 우리는 본 적이 없다. 요즘은 옛 연인들에 대한 생각에 지쳤는지 그 사람이 많이 떠오른다. 평생 못 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내 감정을 그리움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어쨋든 한 시절을 추억할만한 소재로는 모자람이 없다. 이런 소재가 여럿인 것이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두에 대해 진심이고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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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친구야
보고 깜짝놀랐다이가
서먹서먹해서 맘에 없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는 그 사람이 좋다.
그 사람도 날 좋아한다.

갑자기 문장이 훅 들어온다이가
놀랐다이가
.
.
지금은 야심한 밤이다
완성되지못한 사랑에 건배 🍻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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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잘 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정말 너무 진지하고 진심인 거 같네요^^

찡님, 아닙니다.. 이 글의 핵심은 거기가 아니에요.. 마지막입니다.

이런 소재가 여럿인 것이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모두에 대해 진심이고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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