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스토리텔링) 제주도의 무더위와 열대야를 이겨내는 방법 - 콩국수

in #kr6 years ago

제주도는 어젯밤부터 열대야가 시작되었다.
자다가 너무 더워서 벌떡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열대야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나도 체 두시간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리고 오늘 낮에는 무려 온도계가 35도까지 올라갔다.
35도 실화임?

제주에서는 모자 챙이 이 정도는 되어야 그나마 태양을 피할 수 있다.
위로 보이는 하늘이 눈을 못뜰 정도로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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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긴 장마에 꿉꿉한 이불 죄다 옥상에다 갖다 널고 남편과 함께 은행에 다녀왔다.
햇살이 닫는 곳은 죄다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 속을 뚫고...
돌아오는 길에 하교하던 여중생이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말한다.

거짓말 안하고, 살이 타는 소리가 들린다.ㅜㅜ

거짓말이다.ㅋㅋ
하지만 표현 하나는 적절했다.
정말로 잠깐 나간 오후의 태양은 살을 태우고도 남을 듯했다.

작년에는 이 무더운 여름에 우린 제주도에 없었다.
그때는 35도가 넘는 스페인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끝없이 걷고 있었다.

같은 35도여도 제주도의 35도는 습도 80퍼센트를 머금은 35도이다.
한마디로 푹푹 찌는 끈적끈적한 더위다.

난 일찌감치부터 제주도의 무더위를 위해 비장의 무기를 장만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콩국수이다.

동문시장에 잡곡을 파시는 할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서 콩국수 해먹기에 만만한 콩을 소개 받았다.
할머니가 내게 추천한 콩은 흰 메주콩도 아니고, 검은 서리태콩도 아니다.
바로 흰 강낭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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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아래서 세번째가 흰 강낭콩이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요즘 젤루 인기많은 콩국수 용 콩이란다.
티비에서 여러번 나왔다는데, 사실 난 한번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잡곡밥을 해 먹으면서 친해진 할머니의 말을 믿고 흰 강낭콩을 사왔다.

우린 워낙 먹기도 잘 먹고, 집에서 거의 밥을 해먹기 때문에 잡곡을 해먹으면서 할머니의 단골 손님으로 내가 급부상해서 뭐든 한되를 사면 할머니는 한되반이나 담아주신다.ㅋ

시장 바닥에 서서 할머니께 콩국수 만드는 법도 배워왔다.

일. 콩을 씻고 물에 12시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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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12시간을 꼭 이렇게 표현하신다.

오늘 자기 전에 물에 담어.
그리고 내일 아침에 건지면 딱 맞아.

할머니들의 두리뭉실한 시간표현이 참 재미있다.

이. 콩을 한번 삶는다.
물론 할머니는 애매한 표현으로 콩삶는 요령도 알려주셨다.

물을 붓고 콩을 삶는데, 콩 비린내가 안나도록 삶으면 돼.
이건 메주콩이랑 다르니까 너무 오래 끓이면 안돼~~

여러 번 자세히 물었지만, 할머니의 대답은 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신다.
내가 알아서 삶아야 한다. 콩비린내 안 날 때까지..

한번 끓고 나서, 10분 정도 더 끓이면서 콩을 먹어보면 된다.
콩이 잘 익고, 고소한 맛이 나는 걸 보니 다 끓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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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삶은 콩은 물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식혀준다.
콩삶은 물은 절대로 버리면 안된다.
콩의 영양가는 그 물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믹서기에 콩과 콩삶은 물을 함께 넣고 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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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소한 맛을 더 추가하기 위해서 볶은 우도 땅콩도 시장에서 사왔다.
똑같은 땅콩이 동문시장 초입에서는 만원인데,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8천원이다.
이효리가 와서 사간 집이라고 사진도 여기저기 붙어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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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껍질을 벗겨서 콩을 갈때 같이 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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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콩물을 한데 모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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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할머니 말을 들었다가 낭패를 본 건 안 비밀.ㅜㅜ
할머니는 한번 삶을 때 두 대접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 정도면 우리 둘이 콩국수를 삼시세끼 먹어서 삼, 사일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ㅜㅜ
내가 식구가 둘이란 말을 안해드렸나?

콩물을 갈아서 냉장고에 좀 남겨 둘 것을 생각해서라도 한 공기면 충분하다.
콩 한 공기면, 우도 땅콩은 한줌이면, 콩맛과 땅콩맛이 서로를 이기지 않고 적절히 서로의 맛을 내며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오. 콩국수에 들어갈 면을 삶는다.
우리집 앞에 있는 마트에 지난 번에 사다 먹은 중면도 정말 맛이 좋았는데, 이번에는 콩국수 면이라고 따로 있길래 그걸 사와봤다.
옥수수가루와 치자가 들어가서 국수의 색이 노랗다.
마찬가지로 소면이 아니고 중면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소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 국수는 중면으로 먹는 듯하다.
나도 제주도 와서 중면을 먹기 시작했는데, 쫄깃함이 소면보다 배는 더한 것이 아주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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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삶을 때는 충분히 많은 물에 삶아야 한다.
그래야 면이 물이랑 함께 바글바글 끓으면서 균일하게 잘 삶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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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삶는 요령은 한번 끓으면 찬물 반컵 넣고, 다시 끓으면 찬물 반컵 넣고, 다시 끓으면 끝인데...
이건 소면의 경우이다.
중면을 삶아보지 않는 나는 여러 번 면을 건져 먹으며 체크했다.
아마 앞의 과정에서 한번 더 찬물을 넣어주면 적당할 거 같지만, 전에 수업에서도 배웠지만 중면은 꼭 먹어보면서 삶아야 잘 삶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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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삶은 면은 찬물로 흰 물이 거의 안 나올 때까지 씻어주는 것이 면을 탱글탱글하게 하는 요령이다.
거의 네, 다섯번을 체에서 박박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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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면발로 승부를 걸어도 손색이 없는 상태의 탱글탱글한 면이 된다.

육. 면을 삶는 동안, 다른 냄비에서는 계란도 하나 삶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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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채썰어 주고, 시장에서 같이 사온 방울 토마토도 반으로 썰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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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파는 할머니 옆에서 바구니에 방울 토마토를 담아 파는 무뚝뚝한 아저씨한테 산 토마토가 엄청나게 맛이 있었다.
아마 우리가 흔히 심는 그 방울 토마토가 아닌 듯하다.
속까지 빨갛고, 씨가 좀 적다.
신맛은 거의 없고 단맛만 나는 이 방울 토마토 다음에 또 사다 먹어야 할 거 같다.

칠. 국수 사발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집에 두개 있던 국수 사발 중 하나가 깨져서 어쩔 수 없이 공평하게 파스타 접시에 담았다.
이렇게 담으니 보기는 좋지만, 시원한 콩국수 국물을 드리킹할 수가 없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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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담아서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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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가 색감이 너무 예뻐서 다시 한장.ㅋ

콩물은 한공기를 했는데도 이렇게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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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에 담아 뚜껑 닫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면 언제든지 면을 삶아서 부어 먹으면 시원한 콩국수가 완성된다.
아침에 출출할 때 콩물만 마셔도 시원하고 좋다.

이번에 내가 찾아낸 콩국수 국물맛의 신의 한수는

바로 '한줌의 볶은 땅콩'이다.

그 어느 콩국수 집의 콩국물맛보다 천만배는 더 맛있는 콩국수가 됐다.

어? 시장 할머니가 말한대로 요즘 유행하는 흰 강낭콩으로 콩국수를 해서인가??
아무튼, 할머니가 콩을 너무 많이 담아주셔서 우리는 올 여름 내내 콩국수만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우도땅콩이 있으므로 절대로 질리지 않고 여름 내내 콩국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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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콩국수 참 좋아하는데 감칠맛이 얼마나 좋을지 침이 자동으로 고이네요^^ 무더위에 시워한 콩국수 영양도 만점이고 아주 좋지요~ 너무 맛나 보이네요. 정말 제대로 입니다!

집에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국물의 농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거 같아요.
맞아요. 영양도 만점이고요.^^

8월엔 습기도 없이 활활 타요. 이제 시작일뿐요. ㅎ

아, 정말로 8월엔 습기가 없어지나봐요.
전 습기만 없으면 더위는 잘 참거든요.ㅋ
기대되는데요?^^

저도 더위는 잘 참긴 하는데 정말 엄청나게 뜨겁긴 해요 ㅎ

제가 여름에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이네요.
매번 사먹기만 하는데 직접 하면 얼마나 맛있을까요 ^^
땅콩 한줌 기억해 둘께요 ^^

콩국수 집에서 만들어 먹기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음식점에서 파는 고소한 맛을 내는 비법은 모르지만, 제가 찾은 '땅콩 한줌'도 괜찮은 비법인 거 같아요.
꼭 만들어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답니다.^^

여름엔 콩국수가 별미죠 음식솜씨가 좋으시니 더 맛있어 보입니다.
땅콩을 함깨 넣으면 고소함이 배가 되죠^^

땅콩 넣은 콩국수를 드셔보셨나봐요.^^
그럼 그 고소함을 아시겠네요~
특히 우도 땅콩은 고소함이 특별하더라구요.

크 .... 여름을 날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인 콩국수네요 ..
산티아고 다녀오셨다고 하셨는데, 순례 다녀오신건가요 ?

네~~ 작년 여름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달간 산티아고를 향해 걸었답니다.
제 다른 글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시간 되시면 그 여행기도 읽어 주세요^^

제주의 바람도 습기를 날리지 못하나봅니다.
제가 지지님 앞에서 주름 한 번 잡아볼께요.
우리 동네는 보통 흰콩으로 콩국수 만들지만
예전 우리 집에서는 파란 밤콩으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잣 한 줌 넣고 만들면 맛도 맛이거니와
콩물 빛깔이 옥색이라
한 참 들여다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냥 흰 콩으로 하지만
이 동네서는 보통 잣을 넣고 갈아요.
아마 전국에서 콩국수에 잣 넣는 고장은
여기 가평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쭐 ^^

여름철 콩국수 드시며 더위 이기세요.

가평에 잣이 유명하잖아요.
그 유명한 가평잣을 넣고, 특이한 파란 밤콩으로 만든 콩국수, 너무 궁금합니다.
다음에 동문시장에 가면 잡곡 파시는 할머니께 파란 밤콩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콩국수 ! 이 여름에 최고의 끼니죠! 시원하게~~~
제주도도 뉴욕처럼 습도 가득한 더위인가봐요 푹푹 찝니다 정말~~
콩국수용 면이 따로 있는건 처음 알았네요~~~
지지님 오늘 사진 무지 귀엽읍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국수를 많이 먹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국수도 소면, 중면, 국수용, 콩국수용, 메밀국수 다양하게 팔더라구요.

사실 전 저런 샤방샤방한 모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제주도 태양은 최대한 챙을 넓혀 가려야 해서요.ㅋ
저 모자도 동문시장에서 장만했답니다.^^

국수 한그릇두 역시..!! 제대로 해서 드시는군요!!!

내륙지방도 덥습니다.
무쟈게 덥습니다.
소위 말하는 동남아 날씨.. 휴..
불쾌지수만 쓕쑥 오르네요 ㅠㅠ

제가 백수잖아요.
뭐든 열심히 하는 백수가 되려구요.^^

우리나라가 정말로 아열대 기후가 되려나 봐요.ㅜㅜ

지난달에 살짝 더워지기 시작할때 콩국수에 미쳐서 1주일 내내 콩국수만 먹었네요 ㅋㅋ 어릴땐 맛도없는걸 왜먹는거야 했었는데.. 저도 이제 어리지 않나봅니다 흑흑 그리고 역시 면은 중면이죠!!!

콩국수의 맛도 중면의 맛도 아시다니...
어른 입맛이 되셨네요.^^
포스팅 너무 재밌게 하셔서 답방 갔다가 많이 웃었습니다.^^

읽다가 침샘폭발했네요 ㅎㅎ;; 흰강낭콩으로 만든다는 것도 신기한데, 우도땅콩에 옥수수면까지....ㄷㄷㄷ

반갑습니다.
특이템으로 만든 칼국수라 저도 맛이 궁금했는데, 성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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