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에게 찾아온 낭만의 크리스마스

in #kr6 years ago

"야 이 $%야! 그거 내가 소리 안나게 옮기라고 했지?"

"이병 곰 돌 이! 네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잘 해야 될 거 아냐. 이병 &%가 빠져가지고..."

크리스마스 이브. 연인들의 명절이라고 불릴 정도로 길거리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넘치고, 집에서도 케이크를 자르며 휴일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날, 이등병 J와 K는 소속 부대 장군님의 이사짐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휴가를 나가지 못해서 부대에 남아 있다가 같이 노동에 동원된 선임들의 갈굼도 같이 받으면서.

이삿짐은 다행히 많지 않았고, 너그러운 장군님 사모님의 배려로 즐거운 피자 + 치킨 회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J와 K는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크리스마스야, 라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올지 모른 채로 말이죠.

저녁 시간 후, 대강당으로 집결하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장군님께서 특별히 장병들 위문 행사를 한다고 하셨던 것이 얼핏 기억이 나는군요. 요즘도 영화에서 보이는 배우 $#@의 사회와 함께, 크리스마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자 이번 순서는, 단장님께서 기획하신 오늘의 메인 이벤트입니다. 커튼 뒤에, 이등병 세 명의 어머님들이 계십니다. 육군, 해군, 공군 한 분 씩입니다. 내 어머니가 오셨을 것 같다, 라는 이등병들은 질문 주세요!"

어? 이등병 대상 이벤트네? 선임들 눈치를 보면서도 편한 의자에서 늘어져 있던 J와 K는,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 이등병이 몇백 명인데, 설마 내 엄마겠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죠.

앞쪽에서 몇 번의 질문이 있었고, 커튼 뒤에 아주머니들이 애매한 답을 해주고 계셨습니다. 어느 순간, K가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J를 쳐다봅니다.

"J, 왠지 우리 엄마인거 같애. 목소리가 비슷해."

J는 K가 희망에 빠져서 정상적인 사고가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인 발언으로 괜히 동료의 기를 꺾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냥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지요.

"자, 이제 내 어머니가 커튼 뒤에 계신다, 라는 이등병들은 일어나세요!"

K를 비롯해서, 얼핏 봐도 열 명은 넘어 보이는 이등병들이 일어났습니다.

"자 그러면 커튼을 올리겠습니다. 어머님 앞으로 이등병들은 힘찬 함성과 함께 나와주세요!"

어??? K가 갑자기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갑니다. 진짜였어? 정말? 부대 선임들도 같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느낌의 해후의 시간이 잠시 흐르고..

"이등병들은 어머님을 업습니다! 실시!"

이제는 익숙해진 군대 말투와 함께, 군복을 입은 아들들의 너른 등에 어머님들이 업혔습니다.

"한가운데 통로로 어머님을 업고 행진합니다!"

"이등병들은 어머님을 업은 채로 그대로 강당을 나가서 차량에 탑승합니다! 단장님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특별히 4박 5일 휴가를 주셨습니다! 휴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입니다!"

어떤 공연보다도 더한 환호와 함성, 아니 비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분대장 L이 말했습니다.

"A병장이 여자친구랑 낭만적인 이브를 보내겠다고 온갖 계획을 짜던데, 성공했나 모르겠네. 내가 보기엔 가장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사람은 K와 K의 어머님일 것 같은데?"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이거야말로 군대에선, 특히 이등병에겐 크리스마스의 낭만이자 기적이지. 라는 웅성임도 들렸구요.

"야 근데... K가 원래 내일 새벽 경계 근무인데 이러면 다른 사람이 해야겠네. 보자... J야, 너다."

이렇게, J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핫팩을 끌어안고 경계를 섰고, K는 입대 후 첫 휴가를 나간 집에서 즐거운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둘다 나름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아침이었겠지요.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J는 여전히 살면서 가장 다양한 일들이 있었던 그날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낭만에 대하여" 라는 글제를 보았을 때, 그날의 낭만적인 이벤트를 떠올립니다. 금요일 밤 술기운에 취해서만은 아닐 거에요. 전역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이토록낭만적인 이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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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말 낭만적인 이벤트였겠네요 . 군대의 낭만 지나니 추억이 많네요 ㅎㅎ

남자들 군대 이야기하면 끝이 없다고들 하는데, 이거는 좀 특이한 케이스라 써 보았습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죠 ㅋㅋ

아니, 저 행사가 알리지 않고, 사전각본없이 그냥 하는 거예요?
우와, 처음 알았네요. 진짜 감동이겠네요 ...

TV 프로에 나오는 것들은 각본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저희는 일회성 이벤트라 확실히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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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저는 전역한지 별로 안되서인지 그 기분이 어떨지 확 와닫네요 정말 기쁠거같습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 공감하지 않을까요..

크.. 군대를 안갔다와도.. 저런건 너무 .. 낭만중에 낭만이죠..^^

아마 그때의 놀라움, 그리고 정신이 좀 든 후의 부러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ㅎㅎ 계속 기억에 남는다니 좋은 것 아닐까요~~ 캬캬 ㅎㅎ

최고의 성탄 낭만 선물었네요..

그 당시 부대 지휘관이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글자수를 맞추느라 디테일을 생략해서 이 글에서는 느껴지지 않으나, 매우 잘 짜인 이벤트였어요.

글로리님은 둘중 누구였던거죠? 음...J인듯합니다 ㅎ

음.. 안타깝게도 맞습니다...

바쁘실텐데도 그 행사에 참석했던 J의 어머님도
참 낭만파이십니다. ㅎㅎ

어머님들의 마음으로는 입대 후 아들을 처음 볼 수 있는 기회이니 기쁜 마음으로 오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낭만이 넘치는 순간이었죠.

이브는 늘 설레임 가득인데 특별함이
더해져 매년 낭만이 가득할 것 같아요^^

요즘은 세월이 좀 지나서 그런지 그때 느낀 부러움의 감정이 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진짜 부러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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