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인터뷰를 시도하다

in #kr5 years ago

기자시절에 진짜로 호랑이 인터뷰, 아니 호랑이의 심경 분석을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2013년 연말, 서울대공원에서 로스토프란 호랑이가 사육사를 공격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당시 저는 동물전문기자였던 동료를 도와 이런저런 취재를 거들었습니다. 저는 과천의 서울대공원 취재를 맡았는데요. 이미 수많은 매체들이 숱한 기사들을 썼고, 온라인에선 사람을 죽인 동물을 사살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뒤였습니다.

좀 뒤늦게 문제의 서울대공원 호랑이 우리를 찾았습니다. 호랑이 우리는 천막이 쳐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 곳은 원래 호랑이 우리가 아니라, 여우사였던 곳인데요. 서울대공원이 맹수사를 전면 수리해 호랑이의 숲을 만들려 공사 중이라 호랑이 전시를 중단하다가 관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유로 협소하고 안전시설이 미흡한 여우사에 호랑이를 전시 중이었죠. 그러다 사고가 났던 겁니다.

당시 여우사의 구조를 살펴보던 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육사가 공격을 받은 곳은 이미 여우사 밖의 통로였고, 이 통로와 일반인들이 다니는 공간 사이에는 사람 가슴 높이 만한 미닫이문 밖에 없었습니다. 호랑이는 사람을 공격한 뒤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점프해서 진입해야 하는 좁은 문을 통과해 우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의문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사육사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궁금하긴 했습니다. 호랑이는 왜 다시 우리로 돌아갔을까. 사람을 공격한 뒤에 격리된 지금은 어떤 심경일까.

막상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현장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었습니다. 천막이 씌워진 작은 여우사 안에 아직도 호랑이가 있다고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로만 알 수 있을 뿐이었죠.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한 취재는 '녹음'이었습니다. 호랑이의 소리를 녹음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혹시나 해서 몇몇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봤습니다. 호랑이가 내는 소리로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문의였죠.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하고 다시 야생을 돌려보내는 일을 오래 한 김영준 수의사가 '박수용 전 EBS PD'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박수용 PD는 시베리아에서 비트에 몸을 숨겨 오랫동안 호랑이를 관찰한 전문가입니다. 그가 야생의 호랑이와 오래 시간을 보냈기에 혹시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에게 연락을 해봤더니, 녹음파일을 보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녹음파일을 메일로 보냈죠. 불과 20여분 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밖인데요. 너무 궁금해서 근처 PC방에 와서 보내주신 파일을 들어봤습니다."
"네 어떻던가요."
“로스토프의 울음소리를 분석해보면, 두세번 ‘아웅’ 하고 울다가 ‘어으’ 하고 두 음절을 내뱉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야생의 호랑이들도 자주 내는 소리입니다. 먼저 ‘아웅’ 하는 소리는 대개 유대감을 표시하거나, 다른 호랑이를 만나고 싶어할 때 내는 소리입니다. 가까이 지내던 가족, 친구, 짝이 곁에 없을 때 이런 소리를 많이 내고, 배란기를 맞은 암컷을 쫓는 수컷들도 이런 소리를 냅니다. 또 ‘아웅’을 한 뒤에 내는 ‘어으’ 하는 소리는 심리적 강박증을 나타냅니다. 보통 야생에선 수컷들끼리 영역다툼을 한 뒤, 패배한 수컷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토해내는 절망의 소리입니다. 동물원에선 넓은 곳에 있던 호랑이가 갑자기 좁은 독방에 갇혔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요 내용을 아래 기사에 반영했습니다. 워낙 긴 심층기사에 살짝 담겨서 그리 많이 읽히진 않은 듯 합니다.

기사링크 - 비전문 사육사와 스트레스 쌓인 맹수의 잘못된 만남

박수용 전 PD는 입으로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똑같이 흉내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과 같이 유튜브 시대엔 제가 녹음한 호랑이 울음소리와 박 전 피디의 해설을 영상이나 음성으로 직접 전했으면 괜찮았을 듯도 하네요. 아무래도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텍스트로 설명해준다는 것에 한계가 있는듯 합니다.

아주 정밀한 방법의 취재는 아닐지라도, 이런 방식의 취재를 시도했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다만 이런 취재가 너무 희화화 되진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니까요.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 동물이 어떤 상황이었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또 다른 사고를 막을 수 있고, 동물원이 어때야하는지 고민할 단초가 마련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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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취재라.
아주 귀한 취재를 했습니다.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텍스트로 설명해준다는 것에 한계가 있는듯”
활자 매체가 안고 있는 한계이자 아쉬움이겠지요.

네 저도 인상적인 취재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녹음파일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폰을 바꾸는 바람에 다 사라진듯해요.

호랑이가 낸 소리로 심리를 분석해낸다니... 예상못한 전개네요. 사실 외국에서는 요즘 관람용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렇군요. 저도 이전에 동물원 문제를 좀 다룬 적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동물원법'이 발의된 적이 있었구요. 물론 진지하게 논의되거나 통과되진 않았지만요. 국내 동물원을 살펴보고, 동물원법에 대해 다뤘던 기사도 하나 소개할게요. 유리관에 갇힌 재규어는 뛸 수가 없네

신기하네요. 저런 울음소리를 해석할 수가 있다니...

저도 처음엔 의심반으로 시도해본 취재였는데, 저 분이 워낙 전문가였어요. 그 이후에 그 분이 호랑이에 대해 쓴 책도 사서 읽어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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