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몸을 담그고 남자 하인을 부른 귀부인과 화상 흉터 치료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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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틀레 후작부인 가블리엘레 에밀리 르 토넬리에 드 브르퇴유(프랑스어: Gabrielle Émilie Le Tonnelier de Breteuil, marquise du Châtelet)는 에밀리 뒤 샤틀레(영어: Emilie du Chatelet, 1706년 12월 17일 ~ 1749년 9월 10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과학자이다. 최초의 근대과학의 여성과학자로 불린다. 여성의 중등교육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였지만 에밀리의 가문은 높은 계급에 속했고 상당한 자산을 소유했기 때문에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학문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명료한 이해를 돕는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그만큼 프린키피아를 뿌리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또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머물렀던 라이프니츠의 활력(라틴어: vis viva) 개념을 과학에 도입했다. 언어학에도 뛰어났던 그녀는 라틴어, 이태리어, 그리스어, 독일어에 능했고 과학연구 뿐 아니라 번역에도 힘썼다. 문법 연구와 성서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으며, 라틴어와 그리스 고전들을 번역했다. 《오이디푸스》를 번역하기도 하였으며 《행복론》을 쓰기도 했다.
스물여덟 살 때 볼테르를 처음 알게 된 후 약 10여 년간 볼테르와 연인 관계였으며, 죽을 때까지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볼테르가 정부와 성직자 계급을 주로 비판했기에 위험에 처할 때 그녀가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볼테르를 루이15세와 화해시키기도 하였으며, 볼테르가 《철학 서간(프랑스어: Lettres philosophiques)》 때문에 도피하였을 때 자신의 성을 빌려주거나 궁정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볼테르 역시 샤틀레를 도왔다. 그는 샤틀레를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지식인 모임에 들어가게 해주었다. 귀족인 에밀리와 미천한 가문 출신인 볼테르와의 관계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부정적이었다. 볼테르와 그녀의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는데 볼테르가 적지 않은 재정자원을 들여 시레이 성을 꾸미는데 도왔기 때문이다. 또한 귀부인들의 연애가 자유로웠던 당시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볼테르는 영국으로 망명했던 시절, 새로운 뉴턴의 사상에 감명을 받았고, 볼테르가 뉴턴의 명저를 읽게 된 데에는 에밀리 뒤 샤틀레의 영향도 있었다. 1737년까지 에밀리는 볼테르와 같이 왕립 과학아카데미 안에서 데카르트 학파와 대립하던 국내 뉴턴 학파를 지지하였다. 후에 볼테르는 프랑스로 귀국해 명작 깡디드를 남기게 되는데 에밀리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의 관계는 몇 년 후 시들어지는데, 뉴턴을 최고로 생각하던 볼테르는 에밀리의 관심사가 뉴턴에서 라이프니치로 관심이 이동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또한 에밀리는 볼테르가 프리드리히 대왕과 친분을 나누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1736년에 볼테르와 공동으로 《뉴턴 철학원론(프랑스어: Élemens de la philosophie de Neuton)》을 완성했다.
1738년에 볼테르와 공동으로 《뉴턴 철학의 기본 요소들(프랑스어: Eléments de la philosophie de Newton)》을 썼다. 볼테르는 데카르트에 너무나 심취한 과학원을 겨냥하여 뉴턴에 대한 책을 냈다.
정말 지적인 여성으로 보이는데 뜻밖의 기행도 했다.

볼테르에게 연정을 품게 했으며 숭고한 에밀리라고 불렸던 샤틀레 부인은 종복 롱샹-1746년에 파리에 온 이 청년은 자기가 시종드는 여주인들의 무람없는 행동거지에 아직 길들여 있지 않았다.-아무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던 것이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름다우 에밀리는 하녀가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자 벨을 울려 롱샹을 불렀다. 롱샹은 그 일화를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나는 급히 여주인 방으로 뛰어갔다. 샤틀레 부인은 난로에서 끓는 물통을 가져와 욕조에 부어달라고 말했다. 욕조의 물이 식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부인이 알몸이며, 아무런 향유도 욕조에 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알수 있었다. 탕 안의 물이 투명했던 것이다. 부인은 다리를 벌렸다. 물을 욕조에 붓는 동안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나의 시선은 내가 굳이 보려 하지 않은 그 곳에 고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워 될 수 있는 대로 얼굴을 돌렸지만 손은 떨렸고 물은 두서없이 흘러내렸다.
“조심해라!”
부인이 돌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개 화상을 입힐 셈이나?
그러니 물을 부으면서 시선을 그곳에 고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인이 고지식해서 여주인의 은밀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며칠전 부인이 잠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부인이 침모에게 침대 휘장을 걷게 한 직후였다. 롱샹 앞에서 부인은 하녀가 준비한 옷을 입기 위해 긴 잠옷을 벗어던진 것이다. 놀란 하인은 부인보다 더 쩔쩔맸고,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수치심의 역사, 장 클로드 볼로뉴 지음, 전혜정 옮김, 에디터, 페이지 58-59

귀부인의 마구 벗는 행동은 하인을 동물처럼 사람으로 취급을 안했거나 유혹을 하려고 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욕조 온도를 맞추기 어려우니 끓는 물에 의해 저온화상 화상을 입을수도 있다.
화상 흉터는 서양의학에서는 그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물론 동의보감을 위시한 한의학에서도 생명과 관련되지 않고 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치료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
화상흉터침 bt침이란 도구로 불에 데인 흉터를 치료하는 방법이 강남구 강남역 4번출구 www.imagediet.co.kr 자향미한의원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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