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행]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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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연휴 전날 여느 때처럼 할 일은 많고, 보고 읽고 놀 것도 많은데도 왠지 무료한 기분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한참 책을 보다가 주말이고 연휴이니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나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몸도 찌뿌둥하고 여기저기 차 막힐 것도 떠오르고 다음날은 비도 온다고하니 그냥 집에서 책이나 마저 읽기로 했습니다. 읽고있던 책은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입니다.

이 책은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434쪽에 달하는 여행기입니다. 비숍여사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유명한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전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던 비숍여사가 63세때 3년동안 4차례 9개월 동안 조선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이 여행책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습니다. 모순 덩어리인 조선후기 사회.문화.정치.경제적인 부분까지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조선의 아름다운 풍광과 극도로 가난했지만 착하고, 착취 당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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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520436#08W8

[두루마기에 갓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귀와 나룻배를 타고 여행한 150cm 정도의 키 작은 영국 여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기도 한 비숍은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11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 8번째 책이 조선을 여행하고 쓴 “조선과 그 이웃들(Korea and Her Neighbors, 1897년)이다.

비숍이 67살에 쓴 책으로 그의 생애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자연, 지리, 역사, 사회, 문화 등을 철저하게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학술답사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비숍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94년 1월 63세 때이다. 이후 1897년 3월 사이에 4차례 방문하여 9개월 동안 여행하였다. 비숍이 서울 마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여행을 떠난 날이 1894년 4월 14일. 그로부터 13일이 지나 단양에 도착하여 4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6일간 단양일원을 여행한다. ]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409419


비숍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급속히 망해가고 있던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을 여행했습니다. 제 1장과 제 2장에 서술한 조선과 서울의 첫인상은 지독하게 더럽다는 것입니다.

[나는 서울의 내부에 관해 서술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내가 북경을 보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도시라고 생각했고, 소흥을 가 보기 전까지는 서울의 냄새가 가장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대도시인 수도가 이토록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 p50

http://www.redian.org/archive/109189
서울은 ‘오물의 도시’? 근대도시와 오물 이야기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도시 위생

그러나 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25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거대한 수도 중의 어느 곳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뜻을 음미하기까지 1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산이라고는 삼각산만이 있다고는 하지만 도성 안에서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할 수 있다고 뽐낼 수 있는 도시란 그리 흔치 않다. 이 산등성이에는 부서진 듯한 검은 바위와 봉우리 그리고 비틀어진 소나무가 흔히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정상이 분홍 반투명의 자수정처럼 빛나며 그림자는 짙은 청색을 띠고, 하늘이 푸른 금빛일 때 저녁은 진홍색 장관을 보여 준다.

아름답고 우아한 푸르름이 산을 덮는 봄이 되면 연보랏빛 진달래로 붉어지고, 불꽃 같은 자두와 홍조의 벚꽃과 복숭아꽃이 소스라치게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이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면 11월 연꽃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무르익은 버섯처럼 생긴 넓은 공간을 보여준다. ] p49

제 5장에서야 한강을 나룻배로 여행하기 시작합니다.

[통역자를 구할 수 없어, 계획된 여행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내가 갈 때'라는 말 대신에 '내가 가게 된다면'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 밀러라는 한 젊은 선교사가 그의 불완전한 한국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하인을 한 명 데려간다는 조건으로 나를 돕겠다고 했다.]

밀러 선교사가 누군가하고 검색해봤습니다. 민로아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1892년부터 44년동안 조선에서 지내면서 충북지역에서 교육과 선교를 하시고 청주에서 돌아가신 분이네요.

https://blog.naver.com/kjyoun24/6019338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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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에서 남한강을 따라 단양을 여행하는 부분을 읽고 있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곳은 내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p 104

어느 겨울에 우연히 꽁꽁 얼어있는 도담삼봉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과 같이 같던 곳입니다. 책을 계속 읽으면서 문득 봄의 도담삼봉 모습은 어떤지 점점 궁금해졌습니다. 입던 옷 그대로 책을 들고 차에 올라 담양으로 출발했습니다.

120년 전에 비숍 여사가 남한강을 따라 서울에서 출발한 후 한달만에 도착한 단양에 차로 4시간쯤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중간중간 막히지 않았다면 조금 더 빨리 갔을 것입니다.

120년 전에는 남한강 곳곳에 있는 급류로 여행이 지체되었다면 지금은 도로정체로 여행이 더디게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늦게 출발한지라 도담삼봉에 도착할 때는 해가 지고 있었고, 금새 어두워졌습니다. 덕분에 도담삼봉의 멋진 반영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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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의 입구에는 톱니 모양의 피라미드형 바위 세개가 보초를 서듯 버티고 있었는데, 그 위애는 많은 개머루가 덮여 있었다. 이 곳이 신성시되는 곳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보초석들의 높이는 40-83피트에 이르렀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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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석이라고 부르는 도담삼봉 옆에는 120년 전에는 당연히 없었을 긴 도로가 같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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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다음 날 아침의 모습도 운치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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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밤의 모습이 조금 더 멋있었습니다. 다음날 단양읍내와 구인사, 새한 서점까지 여행하면서 읽은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제 9장부터 제 36장까지는 결혼 풍습, 금강산 기행, 청일전쟁의 전운과 제물포, 만주, 청국 군대의 출동, 시베리아에 사는 조선의 이주민들, 자주 독립 서고문과 홍범 14조, 국왕 부부의 알현, 갑오경장, 을미사변, 송도와 평양의 모습, 여성의 사회적 지위, 무당과 기생, 단발령과 아관파천, 정부 조직의 개편, 교육과 대외무역, 1896년의 서울등을 이야기하고, 제 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서 3년 동안의 여행기를 마무리합니다.

제 36장 1896년의 서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울은 여러 면에서, 특히 남대문과 서대문 방향으로는 너무 변하여 옛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좁은 길이 넓혀지고, 진흙의 개울이 포장되었으며, 도로는 이제 더 이상 쓰레기를 자유롭게 버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지저분했던 서울은 이제 극동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이 비상한 변화는 4개월 만에 이뤄졌다.]

[주한미군 공사인 알렌 박사의 말에 따르면 지난 1876년 4개월은 그가 조선에 머무른 지난 12년보다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내가 방문한 최근 3개월은 매주마다 양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풍경과 풍습 , 조선의 정치와 역사, 국제상황까지 굉장히 자세히 써 있는 책이다보니 내용이 무척 방대합니다. 이후에 나온 이야기는 이 책에 나온 다른 곳을 여행하게 되면 다시 써볼까 합니다.

비숍은 당시 세계 최고 강대국이자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고,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영국에서 온 여성입니다. 처음에는 상상을 초월한 더러운 서울의 거리만 보였을 것이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회.정치.경제.교육 모두 미개해보이고, 모순과 부정부폐로 가득찬 조선만 보였을 것입니다.

[ 아마도 그들은 모두 빚을 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 연자맷돌과 같은 빚을 목에 매달고 있지 않은 조선 사람을 찾기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대게 생활 필수품보다는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게으르게 보였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의 결과로 얻은 것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없는 체제에 살고 있기때문에 게을러 보일뿐이다. 한 사람이 '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나거나 또는 심지어 호화스러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고 하면 바로 근처의 관리나 그의 부하들의 탐욕스러운 주목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인접한 양반으로부터 대부금을 갚으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유역의 농가는 상당히 안정된 인상을 주었다. ] P86.

처음 여행을 시작한 1894년은 동학혁명이 일어난 해이고, 조선을 떠난 1897년까지 갑오개혁과 독립협회 활동, 대한제국이 설립됩니다. 지독한 수탈과 사회 모순에서 깨어나려는 농민들의 혁명은 자국민을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와 죽이는 허약한 고종과 교만한 민비에 의해 실패하고, 농민들과 지식인들의 개혁은 일제와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그 부역자들에 의해 모두 실패한 시기였습니다.

비숍여사는 마지막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이러한 것들이 이 나라를 무기력하고도 비참한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 내가 조선에서 겪은 첫인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바다에, 토양에, 그리고 강건한 민족성 내에 온갖 자원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국가는 아니다. 조선의 자원은 고갈된 것이 아니라 미개발 상태이다. 기후는 멋지고, 강수량은 풍부하며, 토양은 비옥하다. 언덕과 골짜기는 석탄, 철, 구리, 아연, 금을 매장하고 있다. 조선에는 근면하고 호의적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조선 사람들의 힘은 휴지 (쉬어있음) 상태이다.] p423

[여러가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p 425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운명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조선을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처음 조선에 대해 내가 느꼈던 혐오감은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전의 어떤 여행에서보다도 친밀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쉽다.

[나는 눈이 오는 날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푸른 대기 속에서 서울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 다음 날 조그마한 증기선인 하이에닉크 호를 타고 강한 북풍을 가르며 상해를 향해 떠났다. 배가 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나아갈 때 나부끼는 조선 깃발이 내게 기묘한 흥미와 의문을 주었다.] p434

만약 비숍여사가 지금까지 살아서 120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을 보았다면 분명 더욱 더 기묘한 흥미와 의문을 가지고 남한과 북한을 여행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도 풀지 못한 의문이 한가득이니까요. 비숍 여사는 3년에 걸친 여행을 하고 난 후 너무나 아프고 병들어 있던 조선을 애정과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사 시간에 수많은 왕들과 어려운 정부 기관의 이름들, 각종 제도와 크고 작은 사건 이름과 연도를 외우면서 동시에 늘 궁금했던 것은 그런 시대와 사건이 벌어질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교과서에는 그런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서민들의 삶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책에서 당시 살았던 대다수의 서민들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여행한 곳을 다녀오니 이 책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조선 후기나 현대에도 거의 변하지 않은 풍경을 볼 때는 새삼 새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정리되지 않는 글이지만 이렇게 써 놓으면 나중에 꺼내 읽으면서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종종 책 읽는 여행을 해볼까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마음을 그대로 잘 써주신 블로그 글을 링크합니다. 저는 이분보다 감상을 더 잘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ksllaeb/50117510136

팟캐스트 <민영환의 세계여행기 vs 비숍여사의 조선여행기>도 덧붙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8805?e=22385091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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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시길 ㅎㅎ

저도 감사합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

이런 책을 읽다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한번 사서 읽어보아야겠어요.

많은 것이 변했는데, 또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더라구요.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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