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 신중한 사람

in #kr5 years ago (edited)

이승우 – 신중한 사람

일단 노벨문학상이라는 상은 독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구미를 강하게 당기게 하는 어떤 것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만일 어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작가는 그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문인이 된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반응과는 상반되게 이승우라는 작가는 해외에서 상당한 고평가를 듣는 작가라고 언뜻 들었다. 르 클레지오라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는 현재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이승우를 꼽았다. 이승우의 대표작은 “생의 이면”이라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나는 그 작품을 접하지는 못한 상태다. 대신에 서점 한편에 조용히 놓여 있는 이승우의 단편 소설집 하나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신중한 인간”이었다.
단편 소설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짧은 시간”. 이게 제일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50페이지 남짓의 분량은 길어야 한 시간 십분 혹은 이십분 정도를 소여 한다고 생각하고, 빠른 분들이라면 한 시간 내로 읽으실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약속 시간이 있는 경우, 통상적으로 조금은 일찍 장소를 향해 나가는 편이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주로 서점에 있는다. 그 날 우연히 이승우의 단편집을 보게 되었고, 아마 연달아 홍대 쪽으로 나갈 일이 있어서, 매일 단 편 하나하나씩을 읽은 것 같다. 나는 책을 다 읽지는 못했고, 총 네 편의 단편을 읽었다. ‘리모컨의 필요해’, ‘신중한 사람’, ‘오래된 편지’, ‘어디에도 없는’
일단 이승우 작가의 문체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첫 번째 날에 이승우 작가의 리모컨이 필요해라는 작품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작가의 글의 문체가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글 자체가 무미건조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에 있어서 일체의 수식이 거의 없다. 작가는 한 인물의 시점으로 담담하게 인물이 겪는 내적 스트레스와 외적인 우연을 아내와 노래방 도우미를 통해 주인공의 의식 안에서 병치시키며, 자신의 방에만 없는 리모컨과 특정 시간에 폭탄처럼 켜지는 텔레비전을 주인공의 의식에 은은하게 대상화 시키며, 이야기 자체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무언가 더 말할 수 있으면서도 스스로 절제하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글은 상당히 정제되어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 말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곱씹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원래 할 말을 편집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러한 문체였다. 이는 더 할 말이 있는데도 글 자체에서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는데, 오히려 그러한 작가의 문체가 이야기의 동력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종류였다.
이러한 생각은 그 다음 날에 50분 정도 걸쳐서 읽은 신중한 사람에서 역시 보여 지는 특징이었다. 이 단편은 앞선 리모컨이 필요해 라는 작품보다 어쩌면 이승우라는 작가 본인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 속의 화자는 완전히 자신의 삶을 타인이 불편하지 않게끔 자신을 타인에게 맞춘 한 중년 사내의 초상화와 같은 글이다. 사내는 자신만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서 시골에 집을 짓지만, 그 집을 완성하고, 조금 살아보려는 찰나, 외국으로 발령을 받고 만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귀국해서 자신의 시골의 집으로 향해 갔을 때, 이미 집은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침입해서 살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사내는 집을 빼앗을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 그는 참고 사는 것이 천성이며, 그 천성에 따라 자신의 삶을 타인에 맞추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는 노예의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집을 점유한 사람들 앞에서 발광을 하며 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구급차에 실려 간 사내를 진단한 의사는 남자가 오래 전부터 병을 앓고 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선천적 어지러움증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주체성을 타자에게 맞춰서만, 타자를 경유해서만 생각했기에 그 선천적 어지러움증을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미 남자가 돌고 돌아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도는 상황이 연달아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블랙코미디와도 같은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승우 작가의 문체가 하도 정확하고, 담담하다 보니, 웃기긴커녕 안쓰러움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진지하게 타인에게 자신을 맞춘다.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기에 불편함 자체를 사내의 내면 자체에서 완전히 거세해 버린 듯한 태도를 사내는 보인다.
간단하게나마 이 정도에서 마치고 싶다. 그의 주 장편도 아직은 미접한 상태고, 신중한 사람들에 속해 있는 다른 단편도 전부 읽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기회가 있으면 또 한 번 글을 올려보고 싶다. 이승우 작가의 글은 아주 잘 정제된 작은 돌멩이가 같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러운 듯이 보이고, 모나지 않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승우의 글은 이중적인 매력이 있다. 왜냐하면 그 돌은 정제되기 전에 모난 돌이었을 수도 있고, 그 돌을 벼르는 과정이 지금 현재의 돌이 잘 다듬어 졌다고 해서, 무난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저편에 하나의 묘한 폭풍우가 있는 듯한 느낌이 있는 그러한 글이다. 기회가 되면 또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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