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 매치포인트

in #kr5 years ago

우디 앨런 – 매치포인트

올해가 2018년이니까, 이 영화가 개봉한지가 벌써 13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어떤 강렬한 느낌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주었던 느낌을 그대로 상기시키게 만드는 지점이 있다. 그것이 영상의 힘일 것 같다. 활자와는 다른. 이런 이야기는 하다보면 끝이 없으니까, 이 영화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 영화에 적고 싶다.
일단 나의 새로운 취미인 오래 전에 보았는데, 가물가물해진 면이 존재하는 영화에 대해서 다시 재 감상을 함으로써, 나의 기억력에 대해서 테스트를 시도하는 새로운 취미를 시행했다. 일단 앞서서 이 영화의 어떤 면이 생생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 그것을 놓친 부분이 있다는 표현은 일종의 모순이다. 생생한 면이 그 영화에 대해서 완전히 기억을 장악하면, 사실 영화의 모든 부분이 선명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영화가 나에게 쉽사리 잊혀 지지 않고 남은 이유는 전반부의 아찔한 로맨스라기보다는 후반부 30분 남짓한 시간에 벌어지는 범죄와 그 행위의 논리적 추적에 있었던 듯하다.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노라 라이스는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가 연기하는 크리스 월튼과 불륜을 저지른다. 노라는 크리스의 여자 친구의 오빠의 연인이다. 관계 설명 끝이다. 그런데 크리스는 자신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음에도 노라와 불륜을 저지른다. 여기까지는 상관이 없다. 클리셰라고 볼 수 있는 “젊은이의 양지”와 같은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소재이다.
그런데 영화 중반부부터 노라가 크리스의 아이를 임신하고, 크리스를 압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호러가 된다. 우리는 크리스의 입장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면서 영화에 집중했다. 그가 윤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옳은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의 불륜 행위가 범죄라고 볼 수는 없다.
크리스의 상황은 이미 좋은 처갓집을 만나서 영국 최상류층의 계층에 속하게 되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노라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부터는 영화는 범죄 르포 장르를 띠기 시작하고, 그야말로 섬뜩한 느낌을 물씬 풍기게 된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도 여기에 있었다. 나는 형사가 노라를 죽인 크리스를 어떤 연유로 불렀는지에 대해서 가물가물했다. 내가 확인 하고 싶은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나는 분명히 크리스가 엽총을 꺼내들고, 노라를 죽이러 가는 장면과 마치 마약강도나 노상강도에 의해서 우발적으로 노라가 살해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노라의 밑에 층에 사는 주인 할머니를 죽이는 과정까지는 어렴풋이 떠올렸던 것 같다.(영화를 보면서) 어찌 보면 여기까지는 내가 크리스의 의도대로 속은 것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아마 영화 속에서 크리스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안 좋은 기억력에 의하면 크리스는 어떤 연유로 경찰에 호출된다. 노라와의 죽음에 무엇인가 연루가 되었다는 이유에 의해서 말이다. 나는 이게 궁금했다. 경찰이 크리스를 출두시킨 이유의 근거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유심히 봤다.
정답은 “일기장”이었다. 노라는 크리스와의 관계와 그녀가 느꼈던 사랑과 불안에 대해서 모두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것이다. 일기장에는 크리스의 이름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경찰이 크리스를 호출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크리스가 노라와 만났던 것이 일 년 전의 미술관이었다고 거짓말했을 때까지 내가 일기장의 존재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
영화는 치정극 더하기 범죄극에서 하나의 윤리 도덕적 입장에까지 나아간다. 나는 노라의 유령이 나오는 장면까지는 기억했다. 크리스의 환상에서. 그런데 죽은 주인집 노파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디 앨런이 이 영화에서 삶과 인생 전체의 펼쳐짐과 현상됨을 논하려고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파의 등장에서는 우디 앨런이 얼마나 인생과 삶에 대해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거장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노파는 자신이 크리스와 노라의 불륜에 왜 얽혀 들어서 죽어야만 하는지 그것은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그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필연이라고 말한다. 노라를 죽였다고 했을 때, 아무 무고한 사람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있어서 노파의 죽음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변명한다.
나는 일전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컨버세이션”에 대해서도 글을 적었다. 그 영화도 내 기억력 테스트의 일종의 기록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 그 영화에 대해서 기억 속에 남았으며, 무엇이 그 영화에 대해서 기억 속에서 증발되었는가? 에 대해서 말이다. “매치포인트” 역시 나에게 “컨버세이션”과 유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얽혀 들어간다는 점에서는 일치할 것이다.)
제임스 네스빗과 이완 브렘너라는 두 배우가 연기하는 수사관은 코엔 형제의 영화에 등장하는 무대 장치 위의 기계와 같은 경찰 인형과는 느낌이 다르다.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 모든 등장인물을 다 신경 쓴다. 제임스 네스빗이 연기하는 배너 형사는 문득 잠을 자는 순간에 몸을 일으켜 세우고, 범인을 알아차렸다며, 말한다. 크리스가 범인이라고. 그는 크리스의 의도를 완전히 간파한다. 그가 노파를 죽인 이유며, 노라가 올라 올 시간을 계산한 것이며, 크리스가 장인 집에서 구한 엽총 빼고는 다 알아차린다. 그런데 영화의 주제인 ‘운’은 크리스에게 기운다. 크리스가 노상강도로 위장하기 위해서 노파의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 때, 훔쳐온 노파의 반지가 있었다. 아마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을 것이다.
이 반지가 근처 엽총 사고가 발생된 범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이다. 물론 배너 형사는 크리스가 그 반지와 작물을 물에 던지려다가 반지가 땅에 떨어졌고, 그 반지를 우연히 그 노상강도 중에 한 명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까지 간파는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너무 과한 추론이자, 유추라고 후배 수사관이 그를 저지시킨다. 그리고 배너는 결과적으로 백기를 든다. 크리스는 의혹에서 풀려 난 것이다.
글쎄 또 이 영화를 보게 되면, 내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때 무엇이 남아 있을지도 궁금하다. 내 기억에 나는 이 영화를 집에서 아마 혼자 보았던 것 같다. 당시에 입대하기 몇 달 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혼자서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입대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때 이 영화를 보았다. 글쎄 나는 그 때의 나는 먼 옛날의 나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제는 아니지만 몇 달 전의 나인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 영화를 다시 보아서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 것 같다.

사족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이 영화의 살인 장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의 노파와 그녀의 이복 여동생을 죽이는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와 그녀의 이복 여동생을 죽이고, 그들의 집에 숨어 있는데, 그는 문을 안에서부터 잠그고, 빗장을 걸어 놓는다. 그 순간, 한 명의 전당포 손님이 가게로 올라온다. 그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데, 문은 밖에서는 열려 있는데, 안에서 닫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잠시 건물 밖으로 내려간다. 그 순간에 라스콜리니코프는 건물 밖으로 몸을 빼내게 된다. 그가 내려 갈 건물의 아마 한 층인지, 두 층 밑에 미장이 둘이 벽에 회벽을 바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당포 손님은 다시 건물의 노파의 가게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열려 있는 문과 함께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발견한다. 이 소설 속의 내용이 아마 영화 속에 그대로 맞물린다. 크리스가 문을 잠그고 있는 장면에서 한 명의 다른 입주자가 주인집 할머니의 집 앞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빗장이 아니라, 그대로 닫혀 있는 문이다 보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에서 살아났던 덜그덕 덜그덕 소리와 같은 직접적인 떨림은 덜하다. 게다가 현대의 시점으로 보면, 문이 닫혀 있다고 해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은 과한 추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파가 집안에만 있다는 가정이 있었다면, 문제는 없는 것이겠지만. 사족이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영화이니 못 보신 분들에게는 추천 드린다. 더불어 우디 앨런 코미디언이고, 코미디 영화의 거장이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다. 정색하고 있는 정극이다. 정극도 잘 만드시고, 희극도 잘 만드시는 거장 우디 앨런. 사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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