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과 두근두근 첫 만남-순간을 영원으로(#48)

in #kr6 years ago (edited)

중학교 밥꽃 강의.jpg

첫 만남이란? 설렘과 긴장이 함께 합니다. 오늘은 제가 마을교사로서 지역 아이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날입니다.

마을교사, 지난번에 썼듯이 아이들 교육을 마을 주민도 함께 하자는 뜻에서 이루어진 정책입니다.

그동안 저는 일반인과 고등학생까지는 수업을 해보았지만 중학생들과는 경험이 없습니다. 살짝 긴장도 되고, 은근한 설렘도 있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수업 그 자체는 물론 요즘 아이들 관심사에 대해서도 틈틈이 탐색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절 운동을 하는 데 역시나 잠시 뒤에 만날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논밭을 둘러 꼭 필요한 일을 한 뒤에 다시 집으로 와, 마저 준비를 합니다. 교재를 확인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영상을 점검하고, 프린트도 합니다. 면도도 깔끔하게 하고 샤워도 합니다. 입고 갈 옷도 이것저것 골라봅니다.

아침 2교시부터 수업. 예정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갔습니다. 담당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나눈 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이 도움말을 주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집중도 떨어지니까. 같이 논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하세요.”

근데 막상 수업을 진행하려고 기기를 점검하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준비한 PPT 속 동영상 재생이 다 안 된다고 하네요. 헉. 잽싸게 머리가 돌아갑니다. 현실에 맞게 마음을 빨리 바꾸어야 합니다. 그나마 다행한 건 따로 가져간 동영상 하나라도 볼 수 있으니까요. 일반인 강의라면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한 시간 이상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잘 살려보자며 수업에 임했습니다.

드디어 수업 시작. 담당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제가 인사를 하자, 30여명 아이들이 큰 소리로 환영을 해줍니다. 제가 ‘밥꽃’이 갖는 뜻을 설명을 한 다음,

“여러분들 벼꽃 동영상을 잘 보세요. 끝나면 퀴즈를 낼 건데 맞히면 선물이 있습니다.”
영상을 보는 아이들 모습이 대견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나 봅니다. 물론 관심이 없어 엎어지는 아이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집중해서 잘 봅니다.

“자, 본 소감이 어떤가요?”
“신기해요.”
“그럼, 퀴즈. 벼꽃의 암술과 수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저요, 저요”
“자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알려주세요.”

수술은 쉽게 맞추었지만 암술을 맞추는 데는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괄편집_밥꽃 밥상_13.jpg

가장 압권은 수업이 끝날 무렵에 보여준, 우리네 밥상에 핀 꽃입니다. 이 사진은 아이들한테는 밥상 사진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보여준 겁니다.

여러분도 한번 맞추어 보세요. 가운데 뚝배기에 든 꽃부터 그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죽~

이렇게 1교시가 끝났습니다. 쉬는 시간에 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해답 하나가 떠오릅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 있지 않아요?”
“아, 맞아요. 옥수수꽃도 있어요.”

한결 여유가 생깁니다. 이 참에 영상을 몇 개 더 올려야겠습니다. 우리 부부가 준비해둔 영상이 10개 정도 되거든요. 그동안은 이 영상을 토대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교육 책을 낼 계획이었거든요. 책이 완성되면 거기에 맞추어 동영상을 마저 올리겠다고 미루어 두었던 겁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비우고 틈나는 대로 준비한 영상을 올릴까 합니다. 저작권도 중요하지만 당장 제 자신이 어디가든 막힘없는 강의를 하자면 미리 서너 개 정도는 올려두는 게 좋겠더군요.

3교시는 두 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전 강의보다 잘 되었습니다. 3시간을 이어서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호흡을 잘 맞추어 준 거 같습니다.

근데 저는 두 가지 점에 살짝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나는 지금처럼 같은 내용을 여러 반을 돌아가면 할 필요가 있을까. 전체 반이 11개입니다. 비슷한 강의를 11번 한다. 저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늘 새로운 강의를 꿈꾸는 편이거든요. 그렇다면 학년마다 모아서 특강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담당 선생님이 고민을 해서 답을 주시겠답니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돈입니다. 시간당 3만 2000원.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제 강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적습니다. 보통 시간당 10만원. 먼 곳 출장 강의라면 20~30만원이 기본이거든요.

저로서는 제가 사는 지역이고, 가까운 우리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는 기쁨에 돈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막상 해보니 살짝 서운하긴 합니다. 불러준 게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욕심이 나네요. 그러니까 위 두 가지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건 학년마다 특강 식으로 해나가는 게 가장 좋은 안이 됩니다.

아무튼 ‘마을 교사’라는 제도가 우리 사회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고 있고, 이를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다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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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위의 꽃들을 보니 어쩌면 가장 아름다울때를 지나야 진정으로 영양가 있는 역할을 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고 혈기왕성할때도 중요하지만 연륜을 바탕으로 이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일 해주심에 제가 감사하네요^^

가장 아름다울 때를 지나야 진정으로 영양가 있는 역할을 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참 좋은 생각이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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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선생님 수고많으셨어요!
요즘 아이들 무섭다고 건들면 안 된다고 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닌가봐요^-^;;

시골 아이들이 아무래도 더 착한 거 같아요.
서울 서 가르치던 선생들이
시골 아이들 가르치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간당 3만2천원, 하루에 평균 10만원~15만원 정도가 되는 건가요?
좀 짜기는 하네요. ㅎ

교육 예산이 소프트쪽보다는
하드웨어에 많이 쏠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건물신축이나 교체...

중학생들과 수업하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강의였던 것 같군요.
수준높은 강의인데 강의료가 정말 짜네요.

마을 교사라는 정책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느 정도는 받쳐주어야 할 거 같아요

마을교사 참 필요한 제도 같습니다. 강의료는 정말 서운하군요.. 저기에다 세금도 공제할테니 아이들 아이스크림값도 안됩니다

아마 올해 끝날 때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ㅎ흐기분좋은 설레임~~~~ 광화님 세포가 한층 젊어지셨을거라 생각합니다!

@katiesa 님이 깨우는 세포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고마워요

마을 교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착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현실화가 필요하다고봅니다.

맞아요.
대우도 그렇고
마을 교사들의 질적 수준도 함께 높이는 정책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마을교사라니 정말 재밌고 보람있으셨겠어요~!

잘 정착해서
두루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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