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춘향이 그네를 타다-순간을 영원으로(#79)

in #kr6 years ago (edited)

-사람마다 그네에 대한 추억이 있지 싶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 동네 어른들이 그네 타는 걸 보곤 했다. 그때는 직접 새끼를 꼬아 만들었고, 마을 들머리에서 자라는 커다란 소나무에 매달았다. 어른들마다 솜씨를 겨루는 데 장관이었다. 그네가 워낙 높아, 아이들이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초등학교 그네는 누구나 경험이 있으리라. 이 역시 잘 타는 아이들은 달랐다. 그네 줄이 거의 수평 이상이 될 정도로 구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부러웠다. 이건 힘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에 그네를 설치했다. 문틀 사이에다가 간단히 고정하면 되는 그네다.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탈 수 있다. 요즘 이런 그네가 아주 다양하게 나온다. 좋은 세상이다.

-시골로 내려와서 아이들을 위해 그네를 손수 만들었다. 적당한 나무에다가 발판으로는 못 쓰는 타이어를 매달았다. 그네 타는 재미가 아주 좋았다. 변화무쌍한 그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타도 되고....

-그러다가 한번은 온 식구가 남원 광한루를 갔다. 그곳에 있는 춘향이 그네. 과연 내가 저걸 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했지만 대부분 처음 구르던 높이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 춘향이가 과연 저 그네를 탔을까.

온 힘을 다해서 밀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였다. 더 이상 낮아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게. 그러다가 차츰 그네에 적응이 된다. 그네 줄이 아주 길기에 힘을 거기에 맞추어 써야한다. 학교 그네처럼 타면 헛힘만 든다. 말하자면 학교 그네는 한번 구르는 데 드는 시간이 3초라면 춘향이 그네는 10초 이상을 죽 나아가야한다. 입에서 거의 거품이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배, 다리 힘으로 죽. 반대로 돌아 나오는 것 역시 긴 호흡으로 빼야한다. 이 호흡을 익히니 조금씩 올라간다. 둘레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다 처다 본다. 영웅 심리가 작용해서 더 악을 쓰며 그네를 탔다. 밀 때는 저절로 고함이 나오기도 한다. 바람이 귓전을 휙휙 지나간다. 높아질수록 짜릿함도 커진다. 자랄 때 동네 어른들이 타던 그네 모습이 겹친다.

그리고는 광한루를 한바퀴 돌고 나서 그냥 나오기가 아쉬워 한번 더 타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쌍그네로. 남녀가 마주보는 자세다. 무게감이 크니, 처음 오를 때 힘이 들지, 탄력이 붙으니 혼자 타는 것보다 잘 된다. 이 당시 사진이 없는 게 아쉽다.

-지난해 낙안읍성을 갔는데 그네가 있다. 광한루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큰 그네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몸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일괄편집_일괄편집_낙안읍성 춘향이 그네.JPG

-이렇게 춘향이 그네를 타면서 드는 생각 하나. 정말 이 그네를 춘향이가 탔을까. 어쩌면 절실했기에 탔으리라 본다. 그 당시 아가씨들이 세상 구경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네는 세상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전신 운동으로 최고가 아닐까 싶다. 특히 복근과 골반운동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춘향이 그네를 구를 정도 몸이라면 아이를 여럿 낳을 수 있으리라. 언제 기회가 되면 광한루에서 그네를 한번 더 타고 싶다. 짜릿한 그 전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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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구르니 나무 끝에 아련하고,
두번을 거듭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 김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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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 좋네요^^

한번 타보고 싶네요. 왠지 잘 탈것 같은 ㅋㅋ 춘향의 기를 쫙 받아서 말이죠 ㅋㅋㅋ 잘 지내셨죠?

아니, 이게 누구요?
그 집에 노크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답을 주시는군요.

잘 지내지요?
어서 포스팅 하세요.^^

에빵님은 춘향 그네 넘 잘 타실 듯 ㅎ

그네를 잘 타시나봅니다.
저는 어릴 때는 집에 그네가 있어 자주 탔는데
얼마전에 한 번 타보려고 했지만
조금 나가면서 무서워서 그만두었습니다.

나이를 잊고 살고 싶어서요^^

전통문화지만 거의 Extreme Sports 같습니다.

맞아요.
춘향 그네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깝네요

오늘 둥이들 그네를 1시간 넘게 밀어줬어요.
등이 너무 아픈데 좋아하는 웃음 소리를 들으니 안 밀 수가 없더라고요.
ㅎㅎ
날이 추워서 밖에 못 나가니 집에서라도 저렇게 재미있게 해줘야 해요.
광화님 건강 조심하세요!

조금 더 크면
둥이들 보고
엄마를 밀어달라고 하세요.
둘이서 밀면
엄마를 쉽게 밀어줄 수 있을 듯^^

놀이터에 보면 그네 타려고 줄서고 그랬죠. 요즘 애들은 상상을 못 할 거예요. ㅎㅎㅎㅎㅎ

줄서서 기다리는 맛^^
요즘은 놀이터에서도 아이들 보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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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복근을 그 어느 운동보다 익스트림하게 사용하는 것 같네요. 주변에 그네가 없네요 ㅜㅜ

남성도 좋지만 여성한테 참 좋을 거 같아요.
저도 아주 가끔 타요 ㅠ

저렇게 긴 그네는 의외로 높이 올라 무서워요.
민속촌 같은 곳에서 타봤는데 힘든 운동이긴 했어요.

그네를 잘 타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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