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음악이 쌓이는 나라(2nd)

in #kr6 years ago (edited)

소년동화.jpg


음악이 쌓이는 나라 (2nd)

   Soulmate's  동화  


2. 우리 세계



 이제 막 열두 번째 생일이 지난 결이는 주로 뒤 베란다를 방으로 만든 곳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은 바닥을 벽돌로 쌓고 그 위에 장판을 덮어 방으로 만든 곳이었습니다. 결이는 그곳의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하늘 풍경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석양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석양의 시간엔 방의 벽이 온통 주황빛으로 빛났고 결이의 얼굴도 귤처럼 변했습니다.

 결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방에 틀어박혔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았습니다. 숙모가 저녁밥을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결이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아, 이제 겨울이야. 그 방은 난방시설이 없어서 점점 더 추워질 거야. 이제 민우 방에서 같이 생활하렴.”

 숙모가 이렇게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결이는 계속 그 방에서 지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만 민우 방으로 들어가서 숙모가 펴놓은 이부자리에 쏙 들어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민우는 결이보다 한 살 적은 사촌 동생인데, 언제나 결이와 함께 놀고 싶어 했습니다.

  “형, 나랑 유튜브 보고 놀래? 새로운 종이접기 같이 배우자.”
  “응? 아니 난 좀 할 게 있어서…….”

 그렇게 말하고 결이는 뒤 베란다 방으로 슥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결이와 민우가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결이가 민우네 집에 함께 살기 전이었습니다. 그땐 서로를 늘 보고 싶어 했습니다.

 결이는 두터운 점퍼를 입고 뒤 베란다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어떤 뮤지컬에 나온 노래를 열두 번째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난 손안에 쥔 작은 돌을 가만히 보고 있죠.
내 주위 어느 곳이든 구할 수 있는 흔한 작은 돌
호수 너머로 던져 볼까 언덕 아래로 굴려 볼까
날이 추워서 주먹 쥘 때 내 손을 함께 잡는 돌
호수 너머로 던져 볼까 언덕 아래로 굴려 볼까
나를 제발 버리지 마요. 흔하지만 소중해요.
그 돌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입김
그 돌은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빛

 노래는 들을 때마다 다른 느낌과 감정을 줍니다. 결이는 자신이 어떤 돌을 쥐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니, 어떤 돌을 손에 쥘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어폰 너머에서 9시 뉴스데스크의 오프닝 음악이 들려옵니다. 거실에서 삼촌이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결이는 매일 그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확인합니다. 이제 9시가 되었습니다. 창 밖에 하얀 솜털 같은 것이 하나 둘 날립니다.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이는 까만 밤하늘을 타고 내리는 진눈깨비를 바라봅니다. 올해 첫 눈입니다.

 방문이 벌컥 열립니다. 민우입니다.

 “결이 형, 큰 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응?” 결이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고 되묻습니다.
 “큰 아버지한테 전화 왔다고. 국제 전화잖아. 얼른 받아.”
 “그래 알았어.”

 결이는 뒤 베란다 문을 열고 거실로 갔습니다. 삼촌이 결이에게 무선 전화기를 건네주었습니다. 결이는 전화기를 들고 민우의 방으로 갔습니다.

 “여보세요.”
 “결아, 어디 아픈데 없지?” 가까이에서 아빠가 얘기하는 것처럼 수화기 너머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네.”
 “아빠 두 달 뒤 2월 초에 한국 들어갈 거야. 엄마한테도 같이 가 봐야지.”
 “네.”
 “아빠하고 오랜만에 만날 건데, 좋지 않니? 아빠 안 보고 싶어?”
 “네.”
 “안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녀석 참. 건강하고 삼촌이랑 숙모 말씀 잘 들어라.”
 “네.”

 결이는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다시 거실로 들고 갔습니다. 충전기에 전화기를 꽂는데 소파에 기대어 뉴스를 보던 삼촌이 한 마디 합니다.

 “결아, 오랜만에 아빠 전화인데 그렇게 할 얘기가 없어?”

 결이는 대답대신 주머니에 있던 이어폰을 다시 찾아 귀에 꽂았습니다. 큰 방에서 숙모가 나옵니다. 아직 음악이 재생되지 않는 이어폰 너머로 숙모의 말이 들립니다.

 “아이 참 여보, 아빠가 보고 싶으니까 저러는 거지요. 엄마도 황망하게 떠나보냈는데 어떻게 애를 혼자 두고 외국에 갈 마음이 들 수 있는지 전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거 참, 또 그 얘기. 형이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형이 형수 그렇게 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거 당신 몰라요? 결이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고. 지금 형도 많이 좋아진 것 같으니까, 조만간 다시 들어오겠지요.”
 “어른이 그 정도면, 애 충격은 어느 정도겠어요? 결이 하는 것 좀 보세요. 그렇게 밝던 애가 맨날 틀어박혀서 멍하니 음악만 듣고, 학교에선 칭찬만 받던 애가 문제아 취급을 받고 있잖아요. 아주버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게 더 문제예요. 당신은 왜 결이 상황을 얘기 안 해요? 아주버님이 아셔야 할 부분이잖아요.”
 “나도 다 생각이 있어요. 형이 좀 더 좋아지면 얘기 꺼내야지, 지금 얘기하면 형도, 결이도 둘 다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니까.”

 결이는 뒤 베란다로 들어가서도 MP3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삼촌과 숙모의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결이는 삼촌과 숙모의 어떤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결이는 가쁜 숨을 쉬며 눈물을 다시 눈 밑으로 밀어 내리려고 애썼습니다.

 다시 MP3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음악이 순식간에 결이와 세계 사이에 가득 찼습니다. 결이는 음악에 둘러싸여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슬픔이 들이닥치려고 할 때 결이는 재빨리 햄버거 빵 사이에 두툼한 고기를 끼워 넣듯, 자신과 세계 사이에 음악을 채워 넣었습니다.

 창밖의 눈발은 아까보다 좀 더 거세졌습니다. 2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습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심해진 기침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기침이 떨어질 기색이 없어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산소마스크를 끼기 직전에 결이는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엄마, 감기라면서? 언제까지 병원에 있어야 해?”
 “응 감기인데… 좀 심하대.” 엄마는 말하는 중간 중간에 기침을 했습니다.
 “엄마 나 엄마가 만들어 주는 토스트 먹고 싶어. 빨리 집으로 와. 요새 학교에서 와도 간식도 없고.” 결이는 엄마에게 투정을 하며 입을 삐죽거렸습니다.
 “그래, 우리 결이. 엄마가 빨리 갈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한쪽 눈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엄마 많이 아파?”
 “아니, 결이 보니까 좋아서.”
 “엄마 아프면 이 노래 들어봐. 아픈 게 덜할 거야.” 결이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서 엄마의 귀에 꽂고 MP3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좋구나. 노래. 엄마도 앞으로 노래 자주 들어야겠다.”
 “응, 내가 좋은 노래 많이 들려줄게. 빨리 돌아오기나 해.”
 “고마워, 우리 결이.”

  고마워, 우리 결이. 그 말이 결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병원에선 세균이 엄마의 폐까지 너무 깊이 침투했다고 말했습니다. 결이가 엄마를 만나고 온지 이틀 만에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 결이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일, 두 달 후에 아빠를 공항에서 배웅한 일도 결이에겐 빨리 깨고 싶은 꿈과 같았습니다.

  낮엔 학교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회 조별 과제를 정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선생님, 조를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우리 조는 다른 조보다 한 사람이 적은데, 결이까지 있으면…….” 뒷자리에 앉은 민건이가 말했습니다.
  “민건이, 친구를 두고 그렇게 말하면 못써. 결이한테 그 말은 기분이 나쁠 거 같구나.”
  “죄송해요. 결이가 별로 참여를 안 하니까” 민건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주은이가 내일 체험학습에서 돌아오면 민건이 조에서 함께 하도록 해.”
  결이는 아무 말 없이 책만 쳐다보았습니다. 아까부터 같은 문장을 스무 번째 읽고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결이가 화장실에 다녀오자 민건이가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아 짜증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랑 같은 조라니!”
  결이는 못 들은 척하며 그냥 자리에 앉아서 책을 폈습니다.
  “야, 너 선생님한테 또 혼나겠다.” 결이 짝인 지연이의 말을 들은 민건이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결이는 삼촌의 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전학을 했는데, 그 학교에서 결이는 말 수 없는 아이로 통했습니다. 처음 전학을 왔을 때 많은 친구들이 결이와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왔습니다. 결이는 누구와 이야기하거나 놀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를 한꺼번에 떠나보낸 슬픔이 수시로 목구멍까지 차올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넘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결이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결이가 원래 그런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은 결이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결이도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꼭 해야 할 말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결이를 ‘묵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누군가가 ‘침묵’을 줄여서 그렇게 불렀는데,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결이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눈을 보면서 낮에 들었던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녀석!”
  그리고 예전에 들었던 그 말도 떠올렸습니다. “고마워, 우리 결이.”


To be continued. 3편에 계속.


대문이미지1.jpg
멋진 이미지 만들어 주신 @ceoooofm님 감사드립니다.

Sort: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제 0회 짱짱맨배 42일장]2주차 보상글추천, 1주차 보상지급을 발표합니다.(계속 리스팅 할 예정)
https://steemit.com/kr/@virus707/0-42-2-1
현재 1주차보상글이 8개로 완료, 2주차는 1개 리스팅되어있습니다!^^

2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짱짱맨!!

어린 시절 제가 생각나서 울뻔했어요! 전 반대로 떠들며 슬픔을 허공에 날렸지만요 ㅠㅠ

에빵님에게도 남모르는 슬픔이 있었나봅니다. 아이들이 슬플 때 안 그런척 하는 게 더 슬프던데요. ㅜ

결이의 이야기는 참 슬프네요.

마냥 즐거워 보이던 리내의 겹친나라와 달리 우리 세계에 있는 결이는 큰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 아이네요.
결이에게도 색색의 핌이 마구 쏟아져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제가 알던 학생이 자기방이 베란다라며 제게 자랑한 일이 있었는데,
자다가 눈을 뜨면 밤하늘의 별이 그대로 다 보여서 마치 우주에서 누워 자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ㅋ
그때 전 그 아이의 베란다방이 꽤나 부러웠었는데...^^

결이에게도 색색의 핌이 마구 쏟아져 내릴 예정이랍니다ㅋㅋ 슬픔이 아물어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이 이야기의 매력이 아니겠어요^^
어릴적 방 두칸 아파트에 살 때 동생이 자기 방은 없다면서 방 갖고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만든게 뒤 베란다방이었어요. 동생은 자기 방 생겼다며 기뻐하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숙제도 했던 기억이 있네요ㅎ

두 세계가 어떻게 음악으로 이어질지... 소재가 너무 좋아요..ㅎㅎ

감사합니다ㅎ 잘 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쏠메님 글에서는 슬픔에 싸인 아이들이 종종 나오네요. 슬퍼요.
그래도 음악이 결이에게 위안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

네 슬픔과 아픔은 성장의 씨앗이 되지요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ch1234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nch1234님의 [미운앙마's][정보] - 7월 한국 (kr, kr-) 태그 포스팅수 순위 - (7월 1일 ~ 7월 13일 오전 2시 30분 기준)

.../td> 4 869 kyslmate 4 870 ...

Coin Marketplace

STEEM 0.31
TRX 0.12
JST 0.034
BTC 64418.55
ETH 3157.64
USDT 1.00
SBD 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