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야자 시리즈] 후각으로 기억하는 열여덟의 초여름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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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2때 초여름의 교실은 서른 명 가까운 친구들이 내뿜는 땀 냄새와 폭풍처럼 용솟음치던 호르몬의 내음이 뒤섞여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 환경 속에서 십 분 정도가 지나면 다행스럽게도(!) 코가 실제로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몸에서 뿜어내던 냄새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꽃다운 열여덟 소년들이 모여 있는 교실은, 아이러니하게도 후각적으로는 절대 꽃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굳이 찾으라면 은행 열매 정도나 될까.

 긴 하루를 보내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 즈음이 되면, 하루 동안 생활하면서 우리들의 피부 표면에 누적된 마른 땀과 각종 분비물들이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 저녁 식사를 위해 교실을 떠났던 우리들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교실로 들어온다. 그리고 공부할 책을 꺼내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폼을 잡고 있노라면, 30명의 체취가 콧속으로 스며들면서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콧속에 스파크가 튄다. 그것은 후각 세포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 스파크 후에 콧속은 다시 평화를 되찾곤 했다. 누전을 감지하고 두꺼비집의 차단기가 통째로 내려가 버리듯, 그렇게 다급한 신호를 보내던 후각은 일시에 차단기를 내려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의 교실 구조는 좀 특이했다. 학교로는 드물게 교실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 중 몇몇은 발코니로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반대쪽, 교실 복도 쪽 벽엔 창문이 없었다. 앞문과 뒷문만 있고 그 사이 공간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거대한 벽이었다.

 내 생각에 교실 구조를 그렇게 설계한 사람은, 호르몬이 폭발하는 십대 후반 소년들의 냄새와 그것이 야기할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복도 쪽 창문을 없애면 냄새의 대부분은 자연스레 발코니 쪽 창문으로 향하게 된다. 복도로 나오는 냄새는 최소화되었다. 그로 인해 학교 전체가 거대한 후각의 무덤이 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사실 한쪽만 열린 구조이므로, 냄새가 밖으로도 잘 빠져나가진 못했다. 각 교실은 분리된 에어 포켓처럼 저마다의 고유한 냄새를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후신경만 희생하면, 교실 그 외의 공간은… 살아남는다.

 콧속에 스파크가 튀고 후각의 차단기가 내려가면 밝은 형광등 아래서 야간 자율 학습이 시작되었다. 작은 소음만이 교실을 떠돌았다. 복도 쪽 벽 옆에 앉은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책상을 벽에 닿게 바짝 붙이고는 몸 한 쪽을 벽에 기댄 채 책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각의 차단기가 내려간 후로 유지되던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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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명이 내뿜는 체취는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퍼져나갔다. 냄새는 밝은 형광등 불빛을 따라 창문 근처까지 와서 배회하던 모기들을 교실 안으로 유도했다. 그들의 탐욕스러운 식욕과 피에 대한 갈망이 폭발했다. 모기들은 교실 안으로 난입했다. 그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바로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쩍이는 흰 벽이었다. 교실을 비행하며 목표물을 찾던 그들은 흰 벽을 휴식처로 삼았다. 잠시 앉아 전열을 가다듬는 전초 기지 말이다. 문제는 많은 친구들이 흰 벽에 기대 있었다는 점이다. 모기는 우리를 시설물쯤으로 여긴 것 같다. 모기는 흰 벽에 사뿐히 달라붙는다. 우리의 손이 닿을 위치에 말이다. 모기는 우리가 몸을 움직이면 살짝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모기를 그냥 두지 않았다. 열여덟인 우리도 모기 못지않게 호전적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모기가 벽에 앉는 족족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면 모기의 내장과 진액이 흰 벽에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얼룩 주위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간이 흘러 여러 번의 대청소를 통해 벽에 물걸레가 지나갈 때마다 모기의 흔적은 조금씩 지워졌다. 하지만 모기를 잡은 친구들이 한껏 힘을 주어 그린 동그라미는 희미하게나마 벽에 남았다.

 평소 새하얀 벽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눈이 시릴 정도로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30cm가까이로 벽에 다가서면 죽음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모기들의 공동묘지였다. 모기들의 불행은 차단 스위치가 없이 지나치게 예민한 후각 탓인지도 모르겠다. 냄새에 이끌리어 들어왔다가 이름 없는 벽에서 비명횡사했지만 그 모기들은 다른 모기에 비하면 특별한 대우를 받은 건지도. 벽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페인트로 칠해졌을 것이고, 모기들의 공동묘지는 학교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그 벽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에 내 주변을 떠돌던 냄새의 문제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일주일 2~3번 빨래를 돌린다. 빨래는 그룹으로 분리해서 세탁하는데, 아이들의 속옷과 내복, 수건이 1그룹, 아이들의 겉옷과 아내의 겉옷이 2그룹, 나의 속옷과 겉옷, 양말을 통틀어 3그룹이다. 내 빨래는 다른 가족들의 빨래감과 철저히 분리된다. 아내는 내 옷을 빨고 나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남자들에게만 분비되는 호르몬이 옷에 베어든 탓일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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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빨래를 꺼내 거실 빨래 건조대에 널고 있으면, 아내는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당장에 바깥 베란다에 옮겨 널라고 한다. 난 서럽고 억울한 마음으로 빨래를 들고 베란다로 향한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말이다.

 훗날 내 몸 속을 흐르던 젊은 호르몬이 다 마르고, 이전엔 나지 않던 노년의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할 때, 아내는 우리가 함께 밤낮 아이를 기르던 젊은 날을 내 빨래 냄새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내 빨래 냄새를 조금은 그리워할지도.

 나의 꽃다운 열여덟의 삶 속에 비록 꽃향기는 없었지만, 후각의 차단기를 내리던 그 냄새는 그 시절의 땀과 성장을 상징하는 매혹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벽에서 폭사하던 모기들이 그 매혹을 먼저 알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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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열여덟살의 그 시절을, 체육 시간이 끝나고 에어컨 앞에서 겨드랑이를 한껏 들어올렸던 그 은행열매들이 아직도 후각에 선하네요.

ㅋㅋ 은행 열매들이 후두둑 떨어지곤 했죠. 다들 몸에 한 그루쯤은 키우고 있었더랬죠^^

ㅋㅋㅋ 솔메님이 이전 글에서 말씀하신 야간자율학습의 추억이 혹시 이 글일까요?
고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문/이과 인원배치상 합반이었던 덕에 그 냄새를 한 공간에서 맡았었죠. 그 냄새를 이리도 우아하게 표현하시다니 ㅋㅋㅋ

이 글 역시 원래 쓰려고 하던 야자의 추억에 조금 비껴간 글입니다. 야자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다보면 쓸거리가 많아서 뜻하지 않게 다른 주제를 써버리게 되네요.
남학생들의 체취를 제대로 맡으셨겠어요ㅋ
야자 시리즈로 쓸까도 생각하고 있어요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ur2002ks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fur2002ks님의 깊어가는 가을... 쌀쌀하네요!(뻘짓진행사항)

... cine sadmt soohyeongk susunhwa komodol mastertri zzing ksc kyslmatelee014278 docudai-jun hwa2ting woolgom smigol
저를 포함 102명이 참...

저 지금 지하철인데요..
하필 남학생의 옆자리에 앉아서 이 글을 4D로 읽었어욯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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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케ㅋㅋㅋ 4D 시스템 좋은데요!!!!! 누군가 이 글을 생생하게 읽고 싶다고 하면, 지하철로 가라고 조언하겠습니다ㅎㅎ 참 매혹적인 향을 느끼셨겠어요^^

그 땐 몰랐던... ㅎㅎㅎㅎㅎ

그 향,, 정말 몰랐다..구요?ㅋㅋㅋ

후각이 너무 둔했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

ㅎㅎㅎ 어쩌면 그게 행복이었을지도요ㅋ

생각만해도 코가 마비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제 아내는 제 냄새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ㅋㅋ 생각만으로 코가 마비되다니, 예민하시네요ㅋ
제 아내가 제 냄새를 싫어하는 건 아니..예요..
제 빨래 냄새를..;; (뭔가 변명같은 느낌이,,ㅋ)

앗ㅋㅋㅋㅋ 후각적 상상과 함께 넘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빨래 3그룹이시라니...!ㅋㅋㅋㅋㅋㅋ

아마 신농님은,, 이전엔 겪어보지 못한 후각적 경험일 듯 합니다ㅎㅎㅎ 4그룹으로 밀려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ㅠㅋㅋ

ㅋㅋㅋㅋ 머릿속에서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가 되는데요ㅋㅋㅋㅋㅋ 제 남편도 자주 씻어도 냄새가 나거든요...(잘때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구요.) 그런데 자꾸 팔베게를 해주려고 해요.......전 무척이나 괜찮은데.......ㅋㅋㅋㅋㅋㅋ 빨래는 제가 강력세제를 믿기때문에 함께 돌립니다.

혹시 이 글을 남편 분 옆에서 읽는다면, 4D로 글 묘사의 생생함을 더 잘 느끼실 수 있겠네요! ㅎㅎㅎ 전 정확히 말하자면,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아내만, 실체 없는 그 냄새를 맡는다는 거! ㅋㅋ
굳이 팔베게를 해주는 사랑, 그건 어떤 것일지 잠시 생각해봅니다.ㅎ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잠시 뇌리를 스쳐가네요.
그때도...

아마도 코가 기억하는 장면이겠죠? ㅎㅎ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첫 마디가 "창문 열어라."였죠. ㅎㅎㅎ
특히 더운 날, 아니면 점심 먹고난 후에.

ㅋㅋㅋ 선생님들도 살고자 한 것이겠죠~~ 창문 열었어도 후각의 차단기는 내려갔지 싶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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