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밤10시의 공기 속으로

in #kr6 years ago (edited)

밤공기.jpg


 1990년대 중반, 내가 보낸 고교 시절은 ‘저녁이 없는 삶’이었다. 학생들은 밤 10시까지 하는 야간 자율 학습(이하 ‘야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고2가 되자, 12시까지 남아서 야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저녁과 밤도 모자라서, 심야까지 싹싹 긁어서 내어놓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10시 이후의 시간만은 지키고 싶었다.

 난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함께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야자를 빼달라는 요청은,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명함도 못 내밀 일이었다. 내가 짠 전략은, 우리 동네를 애칭처럼 부르던 옛 이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옛날에 불리던 그 지명은 우리 동네 근처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잘 쓰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다. 공식적인 동 이름 대신, 그 이름을 사용하면 굉장히 먼 외곽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진짜로 먼 외곽에 사는 친구와 함께라면 선생님의 판단력을 흔들어 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심야 시간을 지키기 위해 꽤나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허술하기 그지없는 계획이었다. 선생님이 혹시 우리 동네의 세컨 네임을 알거나 내 얕은 수를 파악한다면, 내 의도는 질문 한 두 개로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난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내리시는 불도장을 받고 일 년 내내 괴로움 가운데 보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시도는 분명 모험이고, 위험이 예상되는 도전이었다.

 “무슨 일이고?”
 “선생님, 저희는 집이 멀어서 12시까지 야자하면 버스가 끊겨 집에 갈수가 없습니다.”
 “집이 어딘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친구가 먼저 대답했다. “모계입니다.” (지명은 바꾸었다.)

 친구의 단호한 목소리엔 어떤 두려움도,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실이 주는 당당함이었다. 학교 근처엔 친구 동네를 지나는 버스 노선이 없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타면 차로도 30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정류장2.jpg

 “음, 거긴 멀지. 부모님 허락은 받았재?”
 “네.” 친구는 가뿐히 통과. 이제 내 차례였다.
 “니는 어딘데?”
 “전 상전입니다.”
 “상전? 어디에 있는 거고? 처음 듣는데?”
 “모계 가기 전에 있습니다.”

 우리 동네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친구 동네를 끌어들인 건 나의 얕은 수이자, 유일한 전략이었다. 내 대답이 거짓말이었던 건 아니었다. 우리 동네는 모계가기 전에 있었고, 친구와 나의 동네는 같은 버스 노선이었다. 다만, 모계와 상전 사이엔 한 다스 정도의 정류장이 있을 뿐이었다. 운이 좋다면, 선생님은 우리 동네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는 대신, 우리 동네가 친구 동네만큼 먼 곳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받아들 것이었다.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셨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부모님은 허락하셨나?”
 “네.”

 됐다! 그렇게 나의 심야를 지켜냈다. 위험을 감수한 도전의 결과는 달콤했다. 야간 자율 학습의 1, 2부가 끝나는 오후 9시 50분에 종이 울리면, 나는 책가방을 싸서 친구와 함께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싸늘히 식어 청량감마저 들던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 날의 마지막 정력을 짜내어 3부 돌입을 준비할 때, 우린 오후 10시의 공기를 마셨던 것이다. 나와 친구는 20분을 함께 걸으며 대화를 즐겼고,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정류장에서 친구는 버스를 탔다. 나는 10분을 더 걸어 터덜터덜 집으로 왔다.

 오후 10시의 공기와 12시의 공기는 확실히 다를 것이었다. 오후 10시의 공기 속엔 소량이지만 자유의 향이 섞여 있었고, 아직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입김이 녹아 있었다. 그 공기엔 ‘휴머니즘’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개인사에서도 적용되는 말일 테지, 하고 생각한 건 최근이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난 10시 이후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10시의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아이를 제 시간에 재우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얕은 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의 심야 시간을 위해 내가 만약 딸아이에게 이른 퇴근을 다음처럼 요구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딸, 밤엔 아빠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 그래서 좀 일찍 자주면 어떨까 싶은데.”
 “아빠, 거기가 어디야?”
 “응. ‘글’이야. 읽든지 쓰든지 해. 가려면 꽤 먼 곳이거든. 12시엔 길이 끊겨서 못 갈 수도 있어.”
 “처음 듣는 곳인데. 근데 아빠 나 잠이 안 와. 냉장고에 가자. 맛있는 거 줘.”
 “일찍 자는 문제는 어떻게…….”
 “아, 몰라 잠이 안 와. 냉장고에 가자~”

 집이 먼 친구와 함께 가도, 나의 얕은 수는 딸에게 절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잠을 더 멀리 밀어낼 것이다. 그저 묵묵히 딸의 기력이 소진되길 바라면서 함께 놀며 1,2부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이 하늘에 닿으면, 하늘은 딸에게 잠을 선사하는 것이다.

 10시의 공기는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공기다. 그 공기 속엔 얼마간의 자유와,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아이의 입김의 녹아 있다. 20년 전의 그것처럼 ‘휴머니즘’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오늘도 난 10시의 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고, 긴 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글에 다다랐다.

밤공기2.jpg


P.S.

 어제 책을 읽다가 갑자기 야간 자율 학습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너무 쓰고 싶어져서 책을 덮고 도입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도입부가 점점 길어지더니 한 편의 글이 되었습니다. 그 글이 요 글입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야자' 이야기는 다음 번에 하려고 합니다.

영감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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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의 휴머니즘적 공기 덕에 우리가 좋은 글을 읽게 되는군요. 다음 야자의 추억 궁금합니다.

그 공기는 많은 걸 주죠ㅎ 다음 야자의 추억도 10시에 찾아가게 되겠네요^^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을 그것이 느껴지네요. 상황이 어떻던 살아가면서 현재진행형 일 것 같습니다. 어릴적 야자와의 싸움이 퇴근과의 싸움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는 1인이...^^

어떤 상황이든, 파도를 타듯 때론 이겨내면서 때론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게 삶인 거 같습니다.ㅎㅎ
다행히도 아이는 10시의 공기를 자주 들이마시게 해줍니다.^^

와 저희도 1학년 10시, 2학년 11시 3학년 12시까지의 자율학습이 있었어요! 그리고 2학년부터 착한 담임선생님덕분에 “자율학습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로도 뺄 수 있었죠. 저랑 제 친구 단 두명이었을겁니다. 그리고 매일 밤 9시에 충분한 잠을 잤죠.

맘에 와닿는 글을 읽기 위해 솔메님의 밤 10시를 응원합니다. 따님의 숙면도 응원합니다 ㅋ

고물님 학교는 뭔가 단계적인 자율학습 시스템을 운영했군요.ㅎㅎ 2학년부터 자율학습을 아예 안하셨다는 말씀이죠? 스고이~~^^ 9시까지 뭘 하셨는지 무척 궁금해지네요.ㅋ
저와 딸의 10시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밤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싶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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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 덕분에 뺏지 많아요ㅎ

제 여동생은 8시에 재우더군요 ㅋㅋㅋ 저도 고1은 9:30, 고2부터는 11:00에 끝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집이 먼 친구들은 심지어 하숙을 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지역격차는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참 크네요. 여하튼.. 아름다운 저녁시간을 위해~ 가즈앗!!! ㅋ

와우 8시면 꿈의 시간입니다. 8시의 공기는 10시와는 또다르겠어요!^^ 전 10시에 마쳐서 집에 30분이 걸려 걸어갔지만 친구와 함께 대화했던 기억이 아직 참 좋게 남아있어요.
조선생님도 매일 좋은 시간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ㅎ

li-li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i-li님의 평론가들의 도서리뷰 # 54 / 181010

... himapan 2 kyslmate/td> 4 kyunga 6 ...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하지만 저는 학교에서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스쿨버스밖에 없어서 그냥 야자를 하는 편이 편했을 것 같긴 해요.

아 스쿨버스! 집이 학교에서 꽤 멀었나보군요^^ 공부 열심히 하셨겠어요ㅎ

고등학교 때 야자하던 때가 떠오르네요. :)

ㅋㅋ 네 야자는 참 다양한 추억과 감정이 얽혀 있어요.ㅎ

ㅋㅋ넘 재밌어요 ㅋㅋ 한 다스의 정류장 차이라니ㅋㅋ
저도 고1땐 10시까지 고2-3은 11시까지 매일 야자했어요. 고등학교 때의 추억은 야자가 다인 것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쏠메님이 말씀해주신 그 때 그 밤 10시의 공기를 지금은 절대 똑같이 느낄 수 없겠다는 아련한 생각이 드네요 ㅎㅎ

보니까 다들 고교시절엔 야자의 터널을 지나오셨군요ㅎㅎ 우리나라의 특정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렇듯 공통의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ㅋㅋ
그 공기의 청량감, 지금도 가끔 떠오릅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야자라니.. 저는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던, 추석과 설날 당일만 면제일 뿐 달력의 색깔이 빨갈 때마다 하던 휴일자습이 생각나네요. 어느 휴일날, 프랑스혁명군처럼 등장한 친구의 선동에 힘입어 반 친구 전체가 칠판에 "선생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쓰고 도망가기로 했는데 한 친구만 남아서 제시간까지 자습을 다 하고 갔지요. 그는 아마도 홀로 교실에서 도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만끽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휴일 끝나고 그 친구의 엉덩이만 멍이 들지 않았던 건 번외로 치더라도.

아 휴일 자습,, 고3때는 저희도 시행했었죠.ㅎ 근데 그 많은 자습 시간에 진짜로 배운 것이 뭔지 좀 아리까리합니다ㅋ
반 전체의 발칙한 도발이었군요. 말씀대로 교실에 남은 친구는 홀로 교실에서 또다른 의미의 자유를 만끽했겠네요. 반면 나갔던 친구들 중 일부는 다음날의 걱정때문에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거구요. 지나고보면 다 즐건 추억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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