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꽃들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in #kr5 years ago (edited)

제비꽃다방-성운그림.jpg
제비꽃다방 / 성운 그림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시면
이것들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또한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과 함께 과수원은 잘랄루딘 루미 시인의 내가 좋아하는 버전이다. 여러 다른 버전으로 회자가 되고 있지만 향긋한 열매들이 달린, 농부들의 땀이 배인 넓은 과수원은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과일이 주렁 주렁 달린 수 많은 나무들 사이에 테이블과 의자를 펼쳐놓고 와인을 마시며 향기와 술에 취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안고있는 걱정과 근심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가까운 친구 K는 나에게 "나는 내 말로 너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너와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너의 세월의 결과물인 어떤 부분을 내 말로 건드리고 싶지 않아. 내 말이 뭐라고, 너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설사 너의 어떤 부분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난 너의 고유함을 좋아하니까. 그 부분을 빼고 다른 부분은 모든 에너지를 다해서 너와 소통하고 싶어" 라며 나와의 정확한 소통 지점을 이야기했다. 처음이였다. 어느정도 가까워지면 이내 서로의 인생을 통제하려고 하는 대다수의 관계맺음에서, 무관심이 아닌 존중으로 나에게 자리를 내주는 관계라니. -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미친 소용돌이 같던 20대의 불안한 관계 맺음 속에서 방황했던 나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비교적) 안정되고 전보다 편한 관계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 평화속에서도 조그만 가시들은 분명 존재한다. 아직도 내 안의 가부장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부모님과 지인들과도 종종 부딫히곤 하니까. 이것은 내면의 문제이기도 하고 공적인 문제이기도 하기에 계속해서 조우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그런 와중에 최근 알게된 몇몇 여성들의 직/간접적인 경험담과 조우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정말 많은 여성들이 정의 할 수 없는 '무언가'에 계속 아래로 당겨지고 있었고, 일상적인 폭력을 마주하고 있었다. 폭력성이란 어느 '기준'에 맞춰 확장되고 발현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우리를 여성이란 이유로 갖가지 다양한 폭력을 매일, 매시간 휘두르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순간 이것이 폭력임을 인지하거나 인지하지 못할때에도 우리는 늘 갈등한다. 주저한다. 그 상처를 저마다 각기 가지고 있기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목소리를 입 밖으로 소리 낼 수 있는, 차별과 폭력이 없어지는 세상을 꿈꾼다.


 천천히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나만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물과 인식에 대한 정의를 다시 그리고 올바르게 내리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난 정말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1도 모르겠다. 2주전의 나, 2달 전의 나, 2년전의 나와 비교해보자면 손톱만큼은 발전했겠지만 (그렇게 믿음) 아직도 툭하면 아는척을 멈추지 못하는 데다가 알것 같은 느낌만으로도 모른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용기따윈 요만큼도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자신에겐 솔직하지 못하며 훈수를 일삼는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서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참 스승이란 무엇일까. 누구일까? 누군가가 내게말했다. 나는 인생에 단 한명도 '스승'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존경할만한 '선배' 또한 없었어요. 그 말에 한참 생각에 빠졌다. '참' 스승. '참' 이란 무엇인가. 기준이 무엇인가. '스승' 이란 것은 절대적인가, 완벽함인가. 내가 여태 가르침을 받은것은 무엇이었을까?


 난 상대방의 좋은 점을 과하게 생각하고 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단점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 사람의 좋은 면, 희망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집중한다. 어쩌면 상대방도 나의 좋은 점을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고 전에 적은 것 같은데... 여태껏 내게 작든 크든, 어떠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스승이라고 생각해왔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중요치 않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던 늘 배움이 존재했다. 내가 배울것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보다.


 좋은 에너지가 나를 천천히 적시는 명상법을 시작하고 비교적 깊은 잠에 빠지기 시작한 후로 (그리고 태풍 때문에 집에 꼼짝없이 갇힌 동안) 며칠간 내리 잠을 잤다. 외롭지도 않고 마음이 힘들지도 않았다. 나의 어떠한 결정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내 몸에 꼭 알맞는 아늑한 집에 들어간 벌레처럼 꼼짝않고 잠을 잤다. 그러다 깨면 물을 마시고 명상을 했다. 음악을 틀고 호흡을 하며. 에너지란 참 신기한 것이구나 싶다.

 아무리 주위에서 칭찬하고 찬양을 해도 스스로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패배감은 반복된 실패 때문이였나. 결국 이렇게 되버린 현실에 또한 적응하지 못하는 이중적인 괴로움에 시달렸지만 어느면은 해소가 되고, 어느면은 반대로 사슬에 묶인다. 전의 나를 떠올려보면 애도의 방법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고 애써 좋은 것들을 취하지만 사실 속은 엉망진창이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이란 감정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인걸까.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이 좋은걸까. 뭐든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과 물체들로 그 정도는 달라지곤 한다. 그렇기에 외로울 때는 언젠가 또 찾아올 것이다. 질문에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순 없지만, 그럴 때면 망설이지 않고 이 제비꽃을 떠올리기로 했다. 언제고 열려있진 않겠지만, 지금 만큼은 위로가 되는 곳이기에.


Originally posted on 레일라의 쓰는여행. Steem blog powered by EN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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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비꽃이라니 낯설군요

제비꽃 얼마나 예쁜데요. ^^

제가 좋아하는 루미의 시에

내 말로 너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새기고 싶은 글이 가득한 글입니다.
성찰이 깊으시네요

저의 외로움은 .....^^

루미의 시를 올리면 꼭 좋아하시는 분들이 반갑게 댓글을 달아주시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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